본문내용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즉 헌아식을 유아세례 못지 않게 교회에서 잘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세례 예식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명칭만 헌아식으로 하지말고, 나아가 헌신의 축제로 만들어 그 날은 가족 모두가 나와 사진촬영과 헌신의 고백,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하는 등의 고백을 대중 앞에서 하게 하는 것이다. 예식 후에는 축하 파티를 통해 그 날을 기념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헌아식의 근본 취지인 부모의 신앙에 의거 자녀를 말씀대로 키우겠다고는 약속이므로 격려와 축하를 부모에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7. 결론
이상과 같이 필자는 헌아식과 유아세례의 차이와 유용성을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비판과 방향제시를 했다. 단지 신자의 숫자만을 늘리기 위해 성경적이지도 못한 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현대가 진리를 버리고 그릇된 길로 흘러가 버리는 것과 동일하다 하겠다.
유아세례는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며, 고래(古來)로 이 예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신기할 정도이다. 우리는 여기서 헌아식의 성경적 근거를 통해 좀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예식으로 만들어 활용해야 할 것이다. 유야세례를 거행하는 교회들의 문제가 무엇이냐면 거룩한 예식을 너무 무의미하게 진행함으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헌아식을 발전시켜 좀더 의미를 확립시키고, 나아가 본래 취지를 교육하며, 축제의 예식으로 거룩하고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뜻 깊은 예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유아세례 못지 않게 교회에서 전도와 신앙교육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7. 결론
이상과 같이 필자는 헌아식과 유아세례의 차이와 유용성을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비판과 방향제시를 했다. 단지 신자의 숫자만을 늘리기 위해 성경적이지도 못한 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현대가 진리를 버리고 그릇된 길로 흘러가 버리는 것과 동일하다 하겠다.
유아세례는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며, 고래(古來)로 이 예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신기할 정도이다. 우리는 여기서 헌아식의 성경적 근거를 통해 좀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예식으로 만들어 활용해야 할 것이다. 유야세례를 거행하는 교회들의 문제가 무엇이냐면 거룩한 예식을 너무 무의미하게 진행함으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헌아식을 발전시켜 좀더 의미를 확립시키고, 나아가 본래 취지를 교육하며, 축제의 예식으로 거룩하고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뜻 깊은 예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유아세례 못지 않게 교회에서 전도와 신앙교육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