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척사파의 대가 開派, 화서 이항로와 守派의 중암 김평묵 그리고 또 다른 개파조사 노사 기정진그리고 또 다른 개파조사 노사 기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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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위정척사파의 대가 開派, 화서 이항로와 守派의 중암 김평묵 그리고 또 다른 개파조사 노사 기정진그리고 또 다른 개파조사 노사 기정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척사론의 전개
1) 18세기 후반 노론 척사론의 양 계열
2) 19세기 초반의 척사론 - 노론의 주도
3) 19세기 중반 노론 척사론의 전개

3. 생애
1) 이항로
2) 김평묵
3) 기정진

4. 이기론
1) 이항로 - 理主氣客論
2) 김평묵 - 華西心說補充
3) 기정진 - 理一分殊論

5. 척사론
1) 이항로 - 斥和主戰論
2) 김평묵 - 倭洋一體論
3) 기정진 - 洋物禁斷論

6. 사회개혁론
1) 이항로
2) 김평묵
3) 기정진

7.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관록이 후하지 못하고 서리(胥吏)에게 녹봉을 지급하지 않아서 간사함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사창이라고 폐단이 없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는 분전과 녹봉제도가 아래로 서리에게까지 미치게 함으로써, 가사와 양육에 충분하도록 해주어 폐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各道에서 해결 할 것을 주장한다.
이외에도 그는 소의 도살금지, 술, 엿, 담배의 소비를 금지하며, 잡기를 금지할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3) 기정진
그는 먼저 유가 전통의 민본이념을 재천명 하면서 군주의 행실을 중시한다.
“군왕과 백성이 서로 기다리는 것은 천하의 저의가. 군왕은 양민으로 덕을 삼고, 백성은 군왕에게 충성함으로써 업을 삼는다”
고 하여 내수의 근본으로서 군민일체를 강조한다. 그는 당시 봉건체제의 위기 원인을 정치를 농단하며 도덕적 타락과 민중의 단결력을 저해하는 당시 집권세력이라 파악하고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거론하며 지배층을 비판한다. 그가 먼저 지적하는 것은 田制의 폐단이다. 토지가 민생의 근본이라 규정하고, 대토지 사유화에 따른 공전제 이념의 붕괴를 비판했다. 두 번째 지적한 폐단은 군포의 폐단이다. 군포의 폐단에 대해서도 그는 군역과 군포의 불평등문제가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경제에 문제가 발생함을 지적하였다. 세 번째로 지적되는 폐단은 서원과 이에 기생하는 유생의 민폐문제이다. 네 번째는 분배의 불공정과 사치의 기풍이다. 그는 재물에는 일정 한도가 있어 한쪽이 차면 한쪽은 비는 것이라 하여 사치를 금하고 사방의 백성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과거제도의 모순에 따른 부패와 낭비문제를 지적하였다.
이러한 기정진의 사회개혁론에서의 그 특징을 살펴보면 개혁의 대상이 당시 집권세력으로 몰려있음을 알 수 있고, 개혁의 가치 중심이 경제적인 측면에 맞추어진 점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성리학자인 기정진에게 있어 현실 개혁은 유가 전통의 민본정치를 지향하면서 安民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자신의 계급적 기반인 양반지배계급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모순의 분석과 대안 제시는 종래의 사변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의 논리가 비록 근왕적 정치질서의 구조적 변혁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권계급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민중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 의지는 특기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7. 맺음말
지금까지 18세기 후반에서 시작된 척사론이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과정과 함께 19세기 중반 이후 시작된 서구 열강의 침략을 위정척사의 논리로 막아내려는 위정척사파의 거두 세 사람에 대해 알아보았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이기론이나 척사의 논리는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일본이나 서양세력의 외세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애국적 사상이 근본이며 반침략 · 반외세의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 위정척사운동은 이후 한말 나타나는 항일 의병운동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선왕조 중심의 전제적 정치체제의 정치체제를 고수하려 했다는 점과 양반중심의 차별적 사회 체제의 유지, 성리학적 질서 유일 사상체제를 유지하며 당시 정부의 개화정책 추진에 장애물이 되었고, 그만큼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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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1.07
  • 저작시기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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