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이야기의 제 개념
Ⅱ. 이야기의 어원
Ⅲ. 이야기의 제의적 특성
Ⅳ. 이야기의 이론적 내용
참고문헌
Ⅱ. 이야기의 어원
Ⅲ. 이야기의 제의적 특성
Ⅳ. 이야기의 이론적 내용
참고문헌
본문내용
알았는데 혈육지간인 것으로 드러난다거나 하는 일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모두 예비되어 왔던 것으로 수긍되면서 청중들로 하여금 연민과 공포의 감정에 휩싸이게 하며 정화(카타르시스)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 때의 결정적인 ‘때’는 단지 연속으로서의 시간, 일이 벌어지는 배경으로서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극적 구성에 있어 분규의 과정과 해결의 과정을 날카롭게 가르는 때로서, 희랍인들이 ‘카이로스(Chairos)’라는 단어로 뜻했던 바의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학적 시간으로서의 ‘때’를 넘어서는 것, 그것이 과학의 논리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은, 그것이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한, 이 카이로스에 이루어진다. 익어온 뉴튼의 사과가 떨어지는 ‘때’가 있는 것이다.
‘좋음’과 ‘시간’을 두개의 축으로 하는 이야기의 실재구성에 대한 이상의 논의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논의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좋음의 존재론이 아닌, 악의 존재론이 이야기의 실재구성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떤 선택을 정당화하는 방식들 중에 전형적인 것은 그 선택이 선과 악 사이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쪽으로 틀 지움으로써 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는 악에 의해(한) 유혹을 물리치며 선을 향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의 역사는 선악 투쟁의 역사이다. ‘좋음 자체’를 향하는 이야기는 이런 선과 악의 국면적 대립, 혹은 역사적 조건 속에서의 대립을 통일한다. 왜냐하면, 악은 ‘좋음 자체’에 도달하지 못한 좋음이 때로 악으로 드러나는 때의 악이기 때문이고 인간의 선악 사이의 분열은 그러한 때의 분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음 자체는 이런 악을 ‘이성의 간지’로서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형이상학을 뒤집어, ‘나쁨 자체’의 형이상학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악을 향하고, 악 자체에 도달하지 못한 악은 때로 선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지는 좋음으로 향하지, 나쁨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지 자체가 전제하는 바가, 그것의 대상으로서, 좋음이라는 점에서, 이런 악의 형이상학은 이야기의 형이상학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이야기가 성립하는 화용론적 맥락, 인간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화톳불 가장자리로 모여드는 그러한 공간을 성립시킬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 듣기를 불가능하게 하고, 따라서 이야기하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이야기의 당사자들이 좋음을 공유한다는, 적어도 그것에의 지향을 공유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실로, 이런 좋음의 공유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도, 거짓말, 속임의 경우에도 이야기의 좋음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악도 그것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면, 좋음을 향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현실의 형이상학은 나쁨의 형이상학일 수 있지만, 그것이 형이상학이라는 이야기, 담론의 구성을 갖게 되는 순간, 이미 좋음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사실, 앞의 문장들에서 선과 악, 참과 거짓, 설득과 속임을 바꾸어 놓아도 문장들은 성립한다. 그러나 그렇게 대치가능 한 존재로서 괄호 속에 들어가는 그 무엇은 전제되어야 하고,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그것은 청자와 화자 공동의 열망에 기반 한 존재인 한에서 좋음이라 불림직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좋음의 이데아가 이야기의 지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지반이고, 이야기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그것은 이야기를 넘어 실재의 형이상학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플라톤의 국가 6권은 아이러니의 태도를 보이며 슬그머니 물러선다. 좋음이라는 태양이 이 모든 사물의 탐구를 가능케하는 지반이자 생명의 근원이라는 신화적 그림--따라서 어린아이한테나 들려줄 이야기의 꼴을 가진 세계 이해--에 대해 우스운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이는 글라우콘에게 소크라테스는 변명한다. “자네 잘못이야, 자네가 나를 이런 이야기를 하도록 떠밀었쟎나(509c).\"
참고문헌
강내희(1992), 담론의 안팎: 몇 가지 담론이론에 관한 소고, 인문학 연구 17집, 중앙대 인문과학 연구소
다이안 맥도넬, 임상훈 역(1992), 담론이란 무엇인가, 한울
덕화 역(1999), 서사란 무엇인가, 서울: 문예출판사
베델하임, 김옥순·주옥 역(1998), 옛이야기의 매력1·2, 시공주니어
우한용 외(2001), 서사교육론, 동아시아
임경순(2003), 서사교육론, 한국문화사
‘좋음’과 ‘시간’을 두개의 축으로 하는 이야기의 실재구성에 대한 이상의 논의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논의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좋음의 존재론이 아닌, 악의 존재론이 이야기의 실재구성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떤 선택을 정당화하는 방식들 중에 전형적인 것은 그 선택이 선과 악 사이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쪽으로 틀 지움으로써 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는 악에 의해(한) 유혹을 물리치며 선을 향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의 역사는 선악 투쟁의 역사이다. ‘좋음 자체’를 향하는 이야기는 이런 선과 악의 국면적 대립, 혹은 역사적 조건 속에서의 대립을 통일한다. 왜냐하면, 악은 ‘좋음 자체’에 도달하지 못한 좋음이 때로 악으로 드러나는 때의 악이기 때문이고 인간의 선악 사이의 분열은 그러한 때의 분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음 자체는 이런 악을 ‘이성의 간지’로서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형이상학을 뒤집어, ‘나쁨 자체’의 형이상학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악을 향하고, 악 자체에 도달하지 못한 악은 때로 선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지는 좋음으로 향하지, 나쁨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지 자체가 전제하는 바가, 그것의 대상으로서, 좋음이라는 점에서, 이런 악의 형이상학은 이야기의 형이상학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이야기가 성립하는 화용론적 맥락, 인간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화톳불 가장자리로 모여드는 그러한 공간을 성립시킬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 듣기를 불가능하게 하고, 따라서 이야기하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이야기의 당사자들이 좋음을 공유한다는, 적어도 그것에의 지향을 공유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실로, 이런 좋음의 공유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도, 거짓말, 속임의 경우에도 이야기의 좋음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악도 그것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면, 좋음을 향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현실의 형이상학은 나쁨의 형이상학일 수 있지만, 그것이 형이상학이라는 이야기, 담론의 구성을 갖게 되는 순간, 이미 좋음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사실, 앞의 문장들에서 선과 악, 참과 거짓, 설득과 속임을 바꾸어 놓아도 문장들은 성립한다. 그러나 그렇게 대치가능 한 존재로서 괄호 속에 들어가는 그 무엇은 전제되어야 하고,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그것은 청자와 화자 공동의 열망에 기반 한 존재인 한에서 좋음이라 불림직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좋음의 이데아가 이야기의 지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지반이고, 이야기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그것은 이야기를 넘어 실재의 형이상학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플라톤의 국가 6권은 아이러니의 태도를 보이며 슬그머니 물러선다. 좋음이라는 태양이 이 모든 사물의 탐구를 가능케하는 지반이자 생명의 근원이라는 신화적 그림--따라서 어린아이한테나 들려줄 이야기의 꼴을 가진 세계 이해--에 대해 우스운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이는 글라우콘에게 소크라테스는 변명한다. “자네 잘못이야, 자네가 나를 이런 이야기를 하도록 떠밀었쟎나(509c).\"
참고문헌
강내희(1992), 담론의 안팎: 몇 가지 담론이론에 관한 소고, 인문학 연구 17집, 중앙대 인문과학 연구소
다이안 맥도넬, 임상훈 역(1992), 담론이란 무엇인가, 한울
덕화 역(1999), 서사란 무엇인가, 서울: 문예출판사
베델하임, 김옥순·주옥 역(1998), 옛이야기의 매력1·2, 시공주니어
우한용 외(2001), 서사교육론, 동아시아
임경순(2003), 서사교육론,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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