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배경
2. 노태우 정부의 통일 정책
2. 노태우 정부의 통일 정책
본문내용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후 북한과 교류나 회담 횟수가 증대된 것을 보면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노태우의 그런 생각은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 후 기자 회견 서두 연설에서 알 수 있다.
“…북방 정책은 이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굳건히 하려는 데 그 큰 목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평양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우리는 모스크바와 북경을 통해 평양으로 가는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금 택할 수 있는 차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정책은 소련 방문 후 1990년 12월 7일에 한 귀국 인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모스크바로 가는 넓은 길이 열린 이제 평양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평화를 향해… 통일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이 세계의 장애는 더 이상 없습니다. … 자유와 번영의 힘을 더욱 키워 평화와 통일의 길로 힘차게 나아갑시다.”
그러면서도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북방 정책은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를 이루고 북은 서방 국가와 관계를 이루어 평화 통일을 위한 국제 환경을 조성한다는데 큰 뜻이 있는 것입니다.…”
단지 북한의 개방을 통해 통일의 전기를 잡아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 후 기자 회견 서두 연설을 보자.
“…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개방된 세계로 나오도록, 그리고 우리와 대화교류협력하는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 안팎의 어려움을 맞고 있는 북한도 머지않아 폐쇄 노선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올 것입니다.…”
즉 북방 외교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그 개방의 과정 속에서 북한 내부 사정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후의 정책은 별다른 변화가 없이 북방 외교와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위주로 나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후에 핵문제 등으로 인해 남북 대화가 끊기고 우리 정부는 회유적인 입장을 버리고 다시 강경책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1991년 12월 18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볼 수 있다.
“…핵무기를 그대로 두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는 실현할 수 없습니다.”
또 이런 입장은 1991년 11월 7일 기자 회견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생각이 드러난다. 북한의 핵 의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이라크 정부가 핵무기를 갖는 것 부대 더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제 북한은 국제 핵사찰을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압력이 가해질 수록 북한의 고립은 더 심화될 것입니다.”
즉 핵문제에 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으며 핵 의혹이 풀리지 않는 한 남북 회담도 중지하겠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하지만 북한의 핵사찰 거부로 더 이상의 남북 관계 진전은 있기 힘들었고 오히려 전보다 퇴보하고 말았다.
노태우의 그런 생각은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 후 기자 회견 서두 연설에서 알 수 있다.
“…북방 정책은 이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굳건히 하려는 데 그 큰 목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평양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우리는 모스크바와 북경을 통해 평양으로 가는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금 택할 수 있는 차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정책은 소련 방문 후 1990년 12월 7일에 한 귀국 인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모스크바로 가는 넓은 길이 열린 이제 평양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평화를 향해… 통일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이 세계의 장애는 더 이상 없습니다. … 자유와 번영의 힘을 더욱 키워 평화와 통일의 길로 힘차게 나아갑시다.”
그러면서도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북방 정책은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를 이루고 북은 서방 국가와 관계를 이루어 평화 통일을 위한 국제 환경을 조성한다는데 큰 뜻이 있는 것입니다.…”
단지 북한의 개방을 통해 통일의 전기를 잡아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 후 기자 회견 서두 연설을 보자.
“…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개방된 세계로 나오도록, 그리고 우리와 대화교류협력하는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 안팎의 어려움을 맞고 있는 북한도 머지않아 폐쇄 노선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올 것입니다.…”
즉 북방 외교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그 개방의 과정 속에서 북한 내부 사정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후의 정책은 별다른 변화가 없이 북방 외교와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위주로 나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후에 핵문제 등으로 인해 남북 대화가 끊기고 우리 정부는 회유적인 입장을 버리고 다시 강경책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1991년 12월 18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볼 수 있다.
“…핵무기를 그대로 두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는 실현할 수 없습니다.”
또 이런 입장은 1991년 11월 7일 기자 회견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생각이 드러난다. 북한의 핵 의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이라크 정부가 핵무기를 갖는 것 부대 더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제 북한은 국제 핵사찰을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압력이 가해질 수록 북한의 고립은 더 심화될 것입니다.”
즉 핵문제에 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으며 핵 의혹이 풀리지 않는 한 남북 회담도 중지하겠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하지만 북한의 핵사찰 거부로 더 이상의 남북 관계 진전은 있기 힘들었고 오히려 전보다 퇴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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