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소말리아 국가정보
소말리아의 역사
소말리아 내전
소말리아 난민, 케냐로 대거 몰려
소말리아 난민 기아 위기
소말리아 난민 원인
소말리아의 역사
소말리아 내전
소말리아 난민, 케냐로 대거 몰려
소말리아 난민 기아 위기
소말리아 난민 원인
본문내용
발생하여, UNSOM2의 지휘부는 아이디드의 체포를 명령하였고, 미군은 아이디드파의 주요 거점 및 시설에 대한 폭격을 개시하였다. 아이디드의 체포를 둘러싸고 구속, 재판 등의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하여 결국 1993년까지 사망자 70명을 포함한 279명의 사상자를 내고 무위로 끝났다. UN은 자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사태가 해결 조짐을 보이지 않자 결국 UNSOM2의 활동을 실패라고 규정하고 1993년 12월부터 단계적인 철수를 개시하였다.
1995년 3월 2일 UN PKO(파키스탄군)과 1500명의 미 해병대는 철수를 완료하였고, 이에 따라 아이디드파는 수도권에 대한 제압을 개시하여 동년 5월에는 아이디드가 일방적으로 대통령 취임 및 신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다. 사태가 아이디드파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듯 보였으나 아이디드가 1996년 7월말 전투 중에 부상하여 8월 1일 사망하자 아이디드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고 전투의 지속을 발표하였다.
그후 반군간에 정전을 모색하는 회의가 수 차례 개최되었으나 매회 각 군벌간의 이해 상충으로 결렬되고 있다. 그러나 최대파인 마디파와 아이디드파가 주축이 되어 협의는 계속 진행 중에 있다. 1996년 10월 15일에는 케냐 대통령의 중개로 무장 3파(마디, 아이디드, 아토)는 즉시 정전에 합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동년 12월 14-15일 수도 남부에서 아이디드파와 민병대가 충돌하여 정전합의는 붕괴되었다. 1997년 1월 모가디시오에서 26당파와 4명의 간사에 의한 협의의 결과 국민구국평의회(CSN)의 결성하는데 합의하였으나 각 군벌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결렬되었다.
1997년 12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아이디드파와 마디파가 평화조약을 체결하였고, 1998년 2월 15일 각 군벌 및 부족 대표 450명이 참여하는 평화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대해 각 군벌의 입장은 달라 일부 파벌은 카이로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전투를 재개하였다. 1998년 1월 26개 파벌은 이디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아이디드파와 마디파가 합의한 내용을 검토하고 아이디드파에게 2월의 평화회의전까지 바이도아 지역을 반환하라고 촉구하였으나, 아이디드파는 이를 거부하였다.
한편 1998년 1월 31일 3대 파벌인 아이디드, 마디, 아토 등은 정전에 합의하고 공항 및 항구를 오픈하고, 연합군을 형성하기로 합의했다. 카이로 합의 이후 3대 주요 군벌은 정전에 합의를 하여 소말리아 분쟁 양상은 거대 군벌대 다수의 소수 군벌에 의한 투쟁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아이디드파는 바이도아 지역의 반환여부를 둘러싸고 Rahabwein 저항군과의 전투를 지속하고 있다.
2001년에도 군벌과 정부간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으며 소말리아는 이디오피아가 소말리아의 불안정을 의도적으로 도모하고 있다고 비난하나 이디오피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슴. 케냐는 소말리아로부터 무기밀수를 봉쇄하기 위해 국경상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였으며 미국 테러 사건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이 소말리아로 은신할 수 있다는 소문에 의해 유엔의 감시가 더 심해짐. 그러나 무력으로 인한 신변안전문제 때문에 한때 유엔직원들이 모두 대피하였으며 육로상으로의 수도 진입은 아직 개통이 안됨. 유엔직원들은 항공로 사용으로 수도에 왕래하고 있슴
▲ 의미 및 영향
소말리아 사태는 정권 쟁탈을 위한 군벌간의 경쟁에 따라 발발한 내전과 가뭄이라는 천재지변이 동시에 발발하여 전쟁에 의한 사상자와 기아에 의한 아사자가 1992년 한해에도 40만명이 발생하는 등 수십만명이 사망하고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한 인재이자 천재에 의한 비극적인 분쟁이다. 대규모 사상자의 발생과 인구의 과반수가 넘는 42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자 UN은 PKO와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을 파견하였으나 내전에 휘말려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3대 군벌들은 전투를 지속하여 결국 최대군벌인 아이디드의 사망이후 해결 국면에 접어들어 1998년 현재 3대 군벌간의 정전은 합의된 상태이나 소수 반군들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동 분쟁은 국제사회 및 주변국에 큰 영향을 미친 분쟁으로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과 난민 구조활동이 실시된 바 있다. 아국도 상록수 부대를 파견하여 인도적 차원에서의 PKO 활동을 실시한바 있다.
▲ 추후 전망
1999 전망: 1997년 이후 전 파벌이 참여하는 평화회의가 개최되고, 1998년 1월 3대 군벌간의 정전 등에 따라 동 분쟁은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비록 아이디드파에 반대하는 소규모 군벌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으나, 3대 군벌의 정전합의는 대규모 전투의 중단을 뜻하므로 대량 살상의 위험은 감소되었다. 그러나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3대 군벌을 비롯해 각 정파들이 충돌한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하여 불안정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2000 전망: 워낙 많은 파벌들로 나누어져 있는데다, 서로의 이해대립이 심하고 국제적 화해, 중재노력이나 평화유지 및 강제활동도 어려운 지역이라 앞으로 이른 시일내에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0년초 현재 이디오피아가 지원하는 RRA파와 최대 주도파벌인 Adid파간의 전투가 악화되고 있고, 해결을 위한 접점이나 그러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어서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2000년 회고 및 2001년 전망: 소말리아는 북부지역이 이디오피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에갈을 중심으로 전략적 요충지인 베르베라港을 수도로 소말리랜드로 독립을 선언하고 있는 상태이다.(북동지역은 Puntland가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기능을 수행 중). 지난 8월 지부티에서 부족원로들의 합의로 과도의회가 조직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여 내분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극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신정부의 핫산은 현재 무정부 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 직위를 각 부족에 골고루 분배하려고 노력하는 등 부족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이디드派가 신정부를 인정하고 있지 않고, 소말리랜드의 독립요구도 거세며, 신정부는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경찰력 및 군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내분양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1995년 3월 2일 UN PKO(파키스탄군)과 1500명의 미 해병대는 철수를 완료하였고, 이에 따라 아이디드파는 수도권에 대한 제압을 개시하여 동년 5월에는 아이디드가 일방적으로 대통령 취임 및 신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다. 사태가 아이디드파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듯 보였으나 아이디드가 1996년 7월말 전투 중에 부상하여 8월 1일 사망하자 아이디드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고 전투의 지속을 발표하였다.
그후 반군간에 정전을 모색하는 회의가 수 차례 개최되었으나 매회 각 군벌간의 이해 상충으로 결렬되고 있다. 그러나 최대파인 마디파와 아이디드파가 주축이 되어 협의는 계속 진행 중에 있다. 1996년 10월 15일에는 케냐 대통령의 중개로 무장 3파(마디, 아이디드, 아토)는 즉시 정전에 합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동년 12월 14-15일 수도 남부에서 아이디드파와 민병대가 충돌하여 정전합의는 붕괴되었다. 1997년 1월 모가디시오에서 26당파와 4명의 간사에 의한 협의의 결과 국민구국평의회(CSN)의 결성하는데 합의하였으나 각 군벌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결렬되었다.
1997년 12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아이디드파와 마디파가 평화조약을 체결하였고, 1998년 2월 15일 각 군벌 및 부족 대표 450명이 참여하는 평화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대해 각 군벌의 입장은 달라 일부 파벌은 카이로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전투를 재개하였다. 1998년 1월 26개 파벌은 이디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아이디드파와 마디파가 합의한 내용을 검토하고 아이디드파에게 2월의 평화회의전까지 바이도아 지역을 반환하라고 촉구하였으나, 아이디드파는 이를 거부하였다.
한편 1998년 1월 31일 3대 파벌인 아이디드, 마디, 아토 등은 정전에 합의하고 공항 및 항구를 오픈하고, 연합군을 형성하기로 합의했다. 카이로 합의 이후 3대 주요 군벌은 정전에 합의를 하여 소말리아 분쟁 양상은 거대 군벌대 다수의 소수 군벌에 의한 투쟁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아이디드파는 바이도아 지역의 반환여부를 둘러싸고 Rahabwein 저항군과의 전투를 지속하고 있다.
2001년에도 군벌과 정부간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으며 소말리아는 이디오피아가 소말리아의 불안정을 의도적으로 도모하고 있다고 비난하나 이디오피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슴. 케냐는 소말리아로부터 무기밀수를 봉쇄하기 위해 국경상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였으며 미국 테러 사건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이 소말리아로 은신할 수 있다는 소문에 의해 유엔의 감시가 더 심해짐. 그러나 무력으로 인한 신변안전문제 때문에 한때 유엔직원들이 모두 대피하였으며 육로상으로의 수도 진입은 아직 개통이 안됨. 유엔직원들은 항공로 사용으로 수도에 왕래하고 있슴
▲ 의미 및 영향
소말리아 사태는 정권 쟁탈을 위한 군벌간의 경쟁에 따라 발발한 내전과 가뭄이라는 천재지변이 동시에 발발하여 전쟁에 의한 사상자와 기아에 의한 아사자가 1992년 한해에도 40만명이 발생하는 등 수십만명이 사망하고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한 인재이자 천재에 의한 비극적인 분쟁이다. 대규모 사상자의 발생과 인구의 과반수가 넘는 42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자 UN은 PKO와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을 파견하였으나 내전에 휘말려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3대 군벌들은 전투를 지속하여 결국 최대군벌인 아이디드의 사망이후 해결 국면에 접어들어 1998년 현재 3대 군벌간의 정전은 합의된 상태이나 소수 반군들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동 분쟁은 국제사회 및 주변국에 큰 영향을 미친 분쟁으로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과 난민 구조활동이 실시된 바 있다. 아국도 상록수 부대를 파견하여 인도적 차원에서의 PKO 활동을 실시한바 있다.
▲ 추후 전망
1999 전망: 1997년 이후 전 파벌이 참여하는 평화회의가 개최되고, 1998년 1월 3대 군벌간의 정전 등에 따라 동 분쟁은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비록 아이디드파에 반대하는 소규모 군벌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으나, 3대 군벌의 정전합의는 대규모 전투의 중단을 뜻하므로 대량 살상의 위험은 감소되었다. 그러나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3대 군벌을 비롯해 각 정파들이 충돌한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하여 불안정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2000 전망: 워낙 많은 파벌들로 나누어져 있는데다, 서로의 이해대립이 심하고 국제적 화해, 중재노력이나 평화유지 및 강제활동도 어려운 지역이라 앞으로 이른 시일내에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0년초 현재 이디오피아가 지원하는 RRA파와 최대 주도파벌인 Adid파간의 전투가 악화되고 있고, 해결을 위한 접점이나 그러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어서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2000년 회고 및 2001년 전망: 소말리아는 북부지역이 이디오피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에갈을 중심으로 전략적 요충지인 베르베라港을 수도로 소말리랜드로 독립을 선언하고 있는 상태이다.(북동지역은 Puntland가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기능을 수행 중). 지난 8월 지부티에서 부족원로들의 합의로 과도의회가 조직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여 내분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극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신정부의 핫산은 현재 무정부 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 직위를 각 부족에 골고루 분배하려고 노력하는 등 부족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이디드派가 신정부를 인정하고 있지 않고, 소말리랜드의 독립요구도 거세며, 신정부는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경찰력 및 군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내분양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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