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 1
Ⅱ. 본론
1. 자기의 발명
---------------------------------- 1
2. 자가의 완성과 확산
----------------------------- 2
3. 청화백자의 개발
------------------------------- 3
5. 청화백자의 전파
------------------------------- 4
5. 유럽에서의 자기제작 시도 및 자기시장에서의 일본 등장
--------------------- 5
6. 유럽 자기의 제작
------------------------------ 7
Ⅲ. 결론
-------------------------------------- 10
--------------------------------------- 1
Ⅱ. 본론
1. 자기의 발명
---------------------------------- 1
2. 자가의 완성과 확산
----------------------------- 2
3. 청화백자의 개발
------------------------------- 3
5. 청화백자의 전파
------------------------------- 4
5. 유럽에서의 자기제작 시도 및 자기시장에서의 일본 등장
--------------------- 5
6. 유럽 자기의 제작
------------------------------ 7
Ⅲ. 결론
-------------------------------------- 10
본문내용
자기보다 2배나 높은 가격에 팔렸다. 하지만 마이센의 고가 상품은 일본 가께몽 자기의 모방품이었다. 그때 유럽시장에서 가께몽자기는 마이센 자기보다 비싼 값에 팔리는 유일한 자기였다. 마이센은 아직 자신들의 독창스런 문양을 만들지 못한 채 아시아의 양식을 모방하고 있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중국풍인 쉬누아즈리가 유행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역시 중국 자기의 애호가였다. 프랑스 왕실은 마이센이 선점한 자기 생산의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퐁파두르 부인. 루이 14세의 애인이었던 그는 프랑스 자기 생산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현재 3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 세계유일의 국립도자 제작소인 세브르 국립 도자 제작소를 설립하고 경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1년 만에 이들은 마이센에 견줄만한 수준에 올라섰다. 이 시기 프랑스는 화려한 금제 꽃 장식을 덧입혀 세브르 특유의 자기를 완성 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다양한 색채를 개발했다. 또한 세브르 자기에는 당시 중국이 만들 수 없었던 다양한 애나멜 물감과 채색 기법이 전해져 왔다.
웨지우드
1748년 로마 폼페이에서는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묻힌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 발굴이 있었다. 이 발굴은 유럽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800년대 유럽은 경제에서 중국과 대등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폼페이 발굴은 경제는 물론이고 문화에서도 아시아에 대한 오랜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사기공 웨지우드가 4년에 걸친 실험 끝에 새로운 도자 제작 기술을 개발해 내었다. 제스퍼 웨어라 불리게 된 이 신제품은 신고전주의 건축과 함께 발전했다. 고대 로마의 전통을 살린 제스퍼 웨어는 자기보다 늦은 온도에서 구워낸 도기다. 유럽 사람들은 오랫동안 빛나는 백색 자기를 동경해 왔지만 18세기 초 마이센에서 자기를 만든 뒤 자기애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더 자유롭게 유럽스런 양식을 만들어 나갔는데 제스퍼 웨어는 그 상징인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1782년 웨지우드는 증기기관을 도자제작에 도입하여 혁명스런 대량생산 체제가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산업 혁명은 유럽의 식탁도 바꾸었다. 불과 100년 전, 왕실과 귀족들만 쓰던 자기가 서민들의 식탁에도 오르게 되었다. 개인 접시가 등장했고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릇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유럽에서 자기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발명품이 본 차이나는 1750년 개발되어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본 차이나는 도자기의 재료로 소 뼛가루를 사용한다. 이것은 뵈트거가 고형토의 성분 비율을 조절했던 방식에서 나아가 재료 자체를 설계하는 재료공학의 시작이었다.
18세기 유럽과 아시아 문명은 명암이 크게 엇갈린다. 중국이 최고의 번영을 누린 명나라 이후 성장을 멈춘 사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영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은 해가 지지 않은 제국을 건설했다. 1851년 빅토리아 여왕은 런던에서 제 1회 만국 박람회를 개최했는데 이 박람회에서는 거의 모든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유럽의 공산품들이 출품되었다. 자기는 여전히 첨단 제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만국 박람회에 참가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아리타의 한 도자 제작사는 1876년 필라델피아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일본이 만국 박람회에 적극 참여한 것은 영주들의 지원 때문이다. 임진왜란 뒤 일본 자기의 주용 생산지가 된 큐슈의 영주들은 자기를 팔아 부국강병의 장금으로 삼고자 했다. 이때 벌어들인 자금으로 큐슈의 영주들은 메이지 유신의 주인공이 되었다. 중국의 자기 산업은 청나라 때 왕실의 지원이 끊기면서 몰락해 갔지만 일본은 17세기 고이마리 자기 이후 다시 한 번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후쿠사리를 포한한 일본의 판화가들이었다. 일본의 채색 목판화는 처음 도자기를 싸는 포장지로 유럽에 전해졌는데 이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던 유럽의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상파의 거장 반 고흐는 인도히로시게의 판화를 그대로 베낄 정도였다. 19세기 중엽 판화에서 시작된 열풍 자포니즘은 일본식 옷, 생활용품, 도자기로 이어졌다.
천 년 넘게 도자 종주국의 위치를 지켜온 중국은 명성을 잃었지만 그들의 전통은 생활 속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 헝가리의 한 도자 제작소는 중국 사람들이 지금도 즐겨 쓰는 전통 문양과 색깔을 빌려와 자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 청나라 양식의 찻잔이 중국과 유럽의 문명의 교류가 그대로 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자기를 가장 먼저 만들었고 그것은 대륙과 바다를 건너 다른 무명에 전해졌다. 자기는 가장 오랜 세계의 교역품이었고 하이테크 제품이었으며 동경의 대상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기술을 손에 넣으려고 전쟁을 일으켰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유럽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자기 제작에 성공했다. 유럽의 성공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나타난 마지막 문명이다. 미국은 유럽을 거쳐 모든 문명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다.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은 현대 도자 문명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유럽이 발전시킨 세라믹은 현대 모든 통신 수단의 중심 재료가 되었다. 특히 우주항공 분야에서 최첨단 소재로 사용되는 자기는 놀랍게도 현대 문명에서도 여전히 적용되는 하이테크 기술인 것이다.
Ⅲ. 결론
일상생활 중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자기는 중국에서 1700년 전 물을 흡수하지 않는 최초의 그릇으로 발명 된 것으로 산업혁명과 더불어 식탁을 바꾸었다. 오늘 날에 와서는 인류의 욕망과 그것을 현실로 만든 문명교류의 역사가 담겨 있는 자기는 과거에 제작된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에서 넘어서 우주항공 분야와 같은 최첨단 기술에도 꼭 필요한 하이테크 기술이 되었다. 이처럼 끊임없는 욕망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인류는 한걸음 한걸음씩 발전해 왔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정신적인 성숙이 곁든다면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명제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참 명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중국풍인 쉬누아즈리가 유행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역시 중국 자기의 애호가였다. 프랑스 왕실은 마이센이 선점한 자기 생산의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퐁파두르 부인. 루이 14세의 애인이었던 그는 프랑스 자기 생산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현재 3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 세계유일의 국립도자 제작소인 세브르 국립 도자 제작소를 설립하고 경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1년 만에 이들은 마이센에 견줄만한 수준에 올라섰다. 이 시기 프랑스는 화려한 금제 꽃 장식을 덧입혀 세브르 특유의 자기를 완성 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다양한 색채를 개발했다. 또한 세브르 자기에는 당시 중국이 만들 수 없었던 다양한 애나멜 물감과 채색 기법이 전해져 왔다.
웨지우드
1748년 로마 폼페이에서는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묻힌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 발굴이 있었다. 이 발굴은 유럽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800년대 유럽은 경제에서 중국과 대등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폼페이 발굴은 경제는 물론이고 문화에서도 아시아에 대한 오랜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사기공 웨지우드가 4년에 걸친 실험 끝에 새로운 도자 제작 기술을 개발해 내었다. 제스퍼 웨어라 불리게 된 이 신제품은 신고전주의 건축과 함께 발전했다. 고대 로마의 전통을 살린 제스퍼 웨어는 자기보다 늦은 온도에서 구워낸 도기다. 유럽 사람들은 오랫동안 빛나는 백색 자기를 동경해 왔지만 18세기 초 마이센에서 자기를 만든 뒤 자기애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더 자유롭게 유럽스런 양식을 만들어 나갔는데 제스퍼 웨어는 그 상징인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1782년 웨지우드는 증기기관을 도자제작에 도입하여 혁명스런 대량생산 체제가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산업 혁명은 유럽의 식탁도 바꾸었다. 불과 100년 전, 왕실과 귀족들만 쓰던 자기가 서민들의 식탁에도 오르게 되었다. 개인 접시가 등장했고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릇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유럽에서 자기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발명품이 본 차이나는 1750년 개발되어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본 차이나는 도자기의 재료로 소 뼛가루를 사용한다. 이것은 뵈트거가 고형토의 성분 비율을 조절했던 방식에서 나아가 재료 자체를 설계하는 재료공학의 시작이었다.
18세기 유럽과 아시아 문명은 명암이 크게 엇갈린다. 중국이 최고의 번영을 누린 명나라 이후 성장을 멈춘 사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영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은 해가 지지 않은 제국을 건설했다. 1851년 빅토리아 여왕은 런던에서 제 1회 만국 박람회를 개최했는데 이 박람회에서는 거의 모든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유럽의 공산품들이 출품되었다. 자기는 여전히 첨단 제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만국 박람회에 참가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아리타의 한 도자 제작사는 1876년 필라델피아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일본이 만국 박람회에 적극 참여한 것은 영주들의 지원 때문이다. 임진왜란 뒤 일본 자기의 주용 생산지가 된 큐슈의 영주들은 자기를 팔아 부국강병의 장금으로 삼고자 했다. 이때 벌어들인 자금으로 큐슈의 영주들은 메이지 유신의 주인공이 되었다. 중국의 자기 산업은 청나라 때 왕실의 지원이 끊기면서 몰락해 갔지만 일본은 17세기 고이마리 자기 이후 다시 한 번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후쿠사리를 포한한 일본의 판화가들이었다. 일본의 채색 목판화는 처음 도자기를 싸는 포장지로 유럽에 전해졌는데 이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던 유럽의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상파의 거장 반 고흐는 인도히로시게의 판화를 그대로 베낄 정도였다. 19세기 중엽 판화에서 시작된 열풍 자포니즘은 일본식 옷, 생활용품, 도자기로 이어졌다.
천 년 넘게 도자 종주국의 위치를 지켜온 중국은 명성을 잃었지만 그들의 전통은 생활 속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 헝가리의 한 도자 제작소는 중국 사람들이 지금도 즐겨 쓰는 전통 문양과 색깔을 빌려와 자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 청나라 양식의 찻잔이 중국과 유럽의 문명의 교류가 그대로 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자기를 가장 먼저 만들었고 그것은 대륙과 바다를 건너 다른 무명에 전해졌다. 자기는 가장 오랜 세계의 교역품이었고 하이테크 제품이었으며 동경의 대상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기술을 손에 넣으려고 전쟁을 일으켰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유럽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자기 제작에 성공했다. 유럽의 성공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나타난 마지막 문명이다. 미국은 유럽을 거쳐 모든 문명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다.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은 현대 도자 문명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유럽이 발전시킨 세라믹은 현대 모든 통신 수단의 중심 재료가 되었다. 특히 우주항공 분야에서 최첨단 소재로 사용되는 자기는 놀랍게도 현대 문명에서도 여전히 적용되는 하이테크 기술인 것이다.
Ⅲ. 결론
일상생활 중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자기는 중국에서 1700년 전 물을 흡수하지 않는 최초의 그릇으로 발명 된 것으로 산업혁명과 더불어 식탁을 바꾸었다. 오늘 날에 와서는 인류의 욕망과 그것을 현실로 만든 문명교류의 역사가 담겨 있는 자기는 과거에 제작된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에서 넘어서 우주항공 분야와 같은 최첨단 기술에도 꼭 필요한 하이테크 기술이 되었다. 이처럼 끊임없는 욕망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인류는 한걸음 한걸음씩 발전해 왔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정신적인 성숙이 곁든다면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명제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참 명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