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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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자연을 이용한 시계
3. 우리나라의 시계의 역사

본문내용

(普信閣)을 만들어 전각을 지어 걸어두고 새벽저녁으로 종을 울려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려주었다. 당시 시계는 많은 백성들이 가질 만큼 휴대성이 강하지도 않았으며 백성들은 대부분 농사를 하였기에 시계보다는 절기가 더 중요하였다.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려주는 것은 종이였으며, 백성들 역시 종이 울려주는 시계로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세종(世宗) 때는 과학을 중요시 하여 장영실 등 과학자들이 시계 등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 중 해시계와 물시계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림> 보신각
①조선시대의 해시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로는 앙부일구(仰釜日晷). 현주일구(懸珠日晷). 천평일구(天平日晷).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양부일구는 중국 원나라의 천문학자 곽수경이 만든 여러 가지 천문기구들의 영향을 받아서 세종 때 제작된 것이다. 양부일구는 궁궐이나 관공서, 그리고 때로는 양반들의 집에서까지 해시계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해시계는 정원에 설치해 놓고 시간을 측정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시간을 알고 싶을 때 측정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림> 양부일구 <그림> 휴대용양부일구 <그림> 현주일구
해시계와 물시계 이외에도 세종 때 만든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가 있다. 이것은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시계로 작동하게 만든 시계였다. 주로 군사적인 요충지인 함경도, 평안도 변경의 함흥, 영변 북청, 경원 등에 설치되었다. 서양식 해시계로 서 조선시대에 유입된 시계는 1636년(인조 14) 명나라의 이천경(李天經)이 만든 대리석제의 신법지평일구(新法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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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1.09.07
  • 저작시기2011.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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