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신비주의의 정의와 이해
2. 신비주의자들의 주장
3. 기독교 신비주의의 역사
4. 신비주의의 사상과 삶
5. 평가
<<참 고 문 헌>>
2. 신비주의자들의 주장
3. 기독교 신비주의의 역사
4. 신비주의의 사상과 삶
5. 평가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제하는 경향이 있으나 공공연하게 나타나서 그 일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신비주의자인지 알 수가 없는 부류를 의미한다. 반대로 과격파 신비주의자들은 “피안의 의식”(sense of beyond)과 초자연적 신념이 광희와 환상으로 바뀌면서 “신경조직의 균형이 불안정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격렬한 종교적 인물들을 의미한다.
통상적인 과격파 신비주의자들은 주로 세 가지 분야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첫 째, 성령론의 분야에서이다. 그들은 “하늘에서 불덩어리 같은 것”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도 하고, 신유의 능력을 받아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둘째, 종말론의 분야에서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비밀휴거의 시일에 관한 예언을 서슴없이 하고, 교회의 신도들로 하여금 예언에 날짜에 휴거될 수 있도록 직장과 주거를 정리하고 교회에 모여서 휴거를 위한 예비 집회에만 참석하도록 만드는 일을 하기도 한다.
셋째, 내세론의 분야에서이다. 그들은 꿈과 환상 중에 바울처럼 천국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책으로 내기도 하고 강연을 다니기도 한다.
상기에 기술된 세 가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비주의는 기독교인의 영성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와 그것을 개발하는 일에 역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영성의 결과들을 시청각적으로 또는 오관적으로 전시하는 일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영성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이해와 그 이해에 입각한 영성개발의 작업이 없이 영성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 혜택을 보겠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달라고”하는 성급하고 경솔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싱크래어 훼그손 교수에 따르면, 기독교의 영성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무엇을 이미 하셨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히 성화된 유일한 인물로써,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갔다(시 2:3-6).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성산에 오르는 등반대의 대장으로써, 그를 좇는 우리들에게 당신님의 거룩함을 전달하신다(고전 1:30).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삶과 인격 속에서 거룩함과 영성을 개발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신비주의는 그것이 “온건한 신비주의”이건 “과격한 신비주의”이건 간에 기독교인의 영성과 “거룩한 삶”을 달성하는 일을 기도의 골방이나 황량한 광야 길에서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묵시를 받고 환상을 보는 가운데 추구하려고 했다. 이는 사람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의존하는 공로적인 구원관에 입각하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이신득의의 구원관과 배치된다. 물론 성경에는 많은 신비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들이 기독교 신비주의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증명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현실적으로 신비주의의 모습들이 지난 2,000년간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감화를 주고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금식과 고행 중에 묵시와 환상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연합을 시도하는 그 일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구원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음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추구하여 그리스도의 영성과 성결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소유하는 작업으로 확연히 바꾸어 버리지 않는 한 기독교 신비주의는 성경의 원리 가운데 설 자리가 없으며, 역사적인 정통개혁 신학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박아론, 1993, 신비주의에 대한 고찰과 연구, 신학지남, pp7-37
김영수, 2004, 신비주의의 역사적 흐름과 그 평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pp232-255
통상적인 과격파 신비주의자들은 주로 세 가지 분야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첫 째, 성령론의 분야에서이다. 그들은 “하늘에서 불덩어리 같은 것”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도 하고, 신유의 능력을 받아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둘째, 종말론의 분야에서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비밀휴거의 시일에 관한 예언을 서슴없이 하고, 교회의 신도들로 하여금 예언에 날짜에 휴거될 수 있도록 직장과 주거를 정리하고 교회에 모여서 휴거를 위한 예비 집회에만 참석하도록 만드는 일을 하기도 한다.
셋째, 내세론의 분야에서이다. 그들은 꿈과 환상 중에 바울처럼 천국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책으로 내기도 하고 강연을 다니기도 한다.
상기에 기술된 세 가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비주의는 기독교인의 영성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와 그것을 개발하는 일에 역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영성의 결과들을 시청각적으로 또는 오관적으로 전시하는 일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영성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이해와 그 이해에 입각한 영성개발의 작업이 없이 영성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 혜택을 보겠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달라고”하는 성급하고 경솔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싱크래어 훼그손 교수에 따르면, 기독교의 영성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무엇을 이미 하셨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히 성화된 유일한 인물로써,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갔다(시 2:3-6).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성산에 오르는 등반대의 대장으로써, 그를 좇는 우리들에게 당신님의 거룩함을 전달하신다(고전 1:30).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삶과 인격 속에서 거룩함과 영성을 개발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신비주의는 그것이 “온건한 신비주의”이건 “과격한 신비주의”이건 간에 기독교인의 영성과 “거룩한 삶”을 달성하는 일을 기도의 골방이나 황량한 광야 길에서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묵시를 받고 환상을 보는 가운데 추구하려고 했다. 이는 사람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의존하는 공로적인 구원관에 입각하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이신득의의 구원관과 배치된다. 물론 성경에는 많은 신비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들이 기독교 신비주의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증명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현실적으로 신비주의의 모습들이 지난 2,000년간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감화를 주고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금식과 고행 중에 묵시와 환상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연합을 시도하는 그 일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구원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음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추구하여 그리스도의 영성과 성결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소유하는 작업으로 확연히 바꾸어 버리지 않는 한 기독교 신비주의는 성경의 원리 가운데 설 자리가 없으며, 역사적인 정통개혁 신학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박아론, 1993, 신비주의에 대한 고찰과 연구, 신학지남, pp7-37
김영수, 2004, 신비주의의 역사적 흐름과 그 평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pp23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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