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의한 인간의 창조가 된다. 시적 언어는 인간의 역설적인 조건, 즉 타자성을 드러내며, 그럼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실현시킨다. 인간에게 존립 근거를 주는 것은 종교의 경전이 아니라 시적 언어다. 인간을 세우고 인간 스스로를 드러내주는 행동은 시다. 다시 말해, 종교적 경험과 시적 경험은 공통된 기원을 갖고 그 역사적 표현 - 시, 신화, 기도문, 주문, 찬가, 연극 공연, 제의 등- 은 종종 구별 불가능하다. 결국 양자는 우리를 구성하는 ‘타자성’에 대한 경험이다. 그러나 종교는 신학 안에서 영감을 해석, 재단, 체계화하고 그러한 결과들을 독점한다. 이와 달리 시는 모든 생명의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시는 인간을 재창조하며,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분열적인 모습이 아니라 백열(白熱)의 단 한 순간에 삶과 죽음이 총체가 되는 인간의 진실한 조건을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한다.
*생각해 볼 문제*
종교에서 찬송가나 불경을 이용한 신에 대한 숭배가 있다면 시에서는 독자를 위한 시를 쓰는 것이 독자를 위한 것인데 이것 또한 독자를 향한 숭배의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 이 두 가지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
종교에서 찬송가나 불경을 이용한 신에 대한 숭배가 있다면 시에서는 독자를 위한 시를 쓰는 것이 독자를 위한 것인데 이것 또한 독자를 향한 숭배의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 이 두 가지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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