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작가 연보
Ⅲ. 이규보 문학의 정신적 지향
1. 중용에 입각한 자기절제
2. 도덕성 추구
3. 개과(改過)와 자성(自省)
4. 순천(順天)과 유유자적(悠悠自適)
Ⅳ. 이규보의 작품세계
1. 시에 대한 열정과 각고의 수련
2. 시인의 사명감, 관인의 충성심
3. 정권에 대한 환멸, 농민에 대한 감사
Ⅴ. 이인로와의 비교
Ⅵ. 결론
※참고문헌※
Ⅱ. 작가 연보
Ⅲ. 이규보 문학의 정신적 지향
1. 중용에 입각한 자기절제
2. 도덕성 추구
3. 개과(改過)와 자성(自省)
4. 순천(順天)과 유유자적(悠悠自適)
Ⅳ. 이규보의 작품세계
1. 시에 대한 열정과 각고의 수련
2. 시인의 사명감, 관인의 충성심
3. 정권에 대한 환멸, 농민에 대한 감사
Ⅴ. 이인로와의 비교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볼만하다가 다시 보면 찢어버리고 싶네”라고 읊기도 하였다. 시에다 진실을 담아내려는 그의 노력은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의 나이 74세가 되던 7월에 병이 심해져 9월에 생을 마쳤다.
Ⅴ. 이인로와의 비교
이인로와 이규보는 고려 무신정권 시대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두 문인으로 시대를 풍미한 라이벌이었다. 둘의 라이벌 관계를 짐작하게 해주는 유명한 술판 장면 하나는 이 둘의 출신성분과 서로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무신난이 일어난 후 기존에 개경을 장악하고 있던 문벌귀족은 몰락하였고, 새롭게 등용된 이들은 신흥사대부였다. 그러므로 문벌귀족과 신진사대부가 같은 문인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무신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인로를 필두로 하여 오세재, 임춘, 황보항, 조통, 함순, 이담지 등 일곱의 강좌칠현은 스스로를 죽림칠현처럼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문벌귀족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에 대한 대단한 불만을 품고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무신난 이전의 옛 영화를 그리워하고 권력 지향적인 이중적인 모습도 지니고 있었다. 신흥사대부 출신의 젊은 이규보가 이중적인 기존의 문벌귀족들에 대해 적대의식을 가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규보는 강좌칠현에 들어오라는 그들의 요청에 대해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시를 남긴다.
이인로와 이규보는 시를 창작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였다. 당시 고려의 문단은 송나라 시문학을 모방하고 특히 소동파의 시를 전범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미 존재하는 명문(名文)의 표현이나 관련사실을 다시 쓸어다 쓰는 창작방식을 용사라고 하는데, 이인로를 비롯한 문벌귀족 출신은 대부분 용사를 중요시하였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신흥사대부 출신인 이규보는 말을 꾸미는 것보다는 시의 뜻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소동파의 문장을 따라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한 아홉 가지 문체’의 예를 들며 비판하였다. 그는 송의 시문과 문체를 따르는 것을 마치 도둑질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시 창작법이 후대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자부하였다. 이규보가 선택한 창작방식은 ‘용사’처럼 옛사람의 표현을 뒤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착상과 표현을 중요시하는 ‘신의’라는 창작방식이었다. 물론 한시라는 특성상 용사와 신의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원론적인 창작방법론이기는 하지만 둘 중 어느 것을 중요시하느냐는 결국 그들의 문학관 내지 세계관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용사를 주로 하던 문단의 흐름에서 이규보가 신의를 택한 것은 하나의 전복이기도 했다.
이인로와 이규보는 시를 지을 때 ‘물(物)’에 대한 관점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시인이 시를 짓게 되는 과정은 결국 어떠한 물체를 보고나서 그로 인해 감화 받거나 어떤 흥(興)이 일어난 감정과 소회를 적어내는 것이다. 이인로는 물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이나 본성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물(物)로 인해서 시인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어떠한 뜻을 마음에 품고서 시를 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창작방법을 ‘탁물우의’라고 하는데 이는 ‘물에 기대 뜻이 나타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시에 나타난 시인의 마음의 근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방법이다. 그에 비해 이규보는 ‘물 자체’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는 물이 단지 뜻을 기탁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뜻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시 창작방법을 ‘우흥촉물’이라고 하는데 이는 ‘흥이 깃들어 물과 부딪히다’라는 뜻으로 사물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촉물이라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인로는 시가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았고 이규보는 시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로 다른 문학관을 보였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그들을 대표하는 시화집에서도 나타나는데, 이인로의 『파한집』은 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더라도 현실의 모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이규보의 『백운소설』에서는 치열한 청년기의 갈등과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Ⅵ. 결론
이규보는 고려 무신집권기의 대표적 문인이다. 무신집권은 당시의 문인들을 얽맨 시대적 억압이었다. 무신의 반란과 함께 출생하여 최씨 무신정권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규보 역시 이러한 문제로 고통받은 인물이다. 입신을 최고의 가치로 추앙하는 시대에서 무신정권과 관계하며 형성된 그의 삶과 문학은 결국 시대와 곁고 튼 길항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규보의 문학에 나타난 사상적, 정신적 지향은 곧 당시 동일한 조건에 있던 모든 문인의 정신과 맞닿아 있을 것이며 그것으로 무신정권이라는 독특한 시대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무신집권기와 대몽항쟁의 시대를 관리자로, 도학자로 살아간 이규보는 당대의 문제를 다양한 주제로 문학작품 속에 반영하였다. 유불도 및 다양한 사상을 망라한 작품 속에는 새롭게 시대를 이끌어 가야했던 신흥사대부 이규보의 정신적 지향이 깃들여 있다. 문벌이나 가문의 위력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전형을 창조해야 했던 다각적인 고뇌의 흔적도 엿보인다. 인간으로서의 개인적 삶과, 벼슬아치로서의 공인적 삶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자기절제와 도덕성을 지향하며 살았고, 현실 너머의 진정한 이상향으로서 자연의 법칙과 흐름에 순응하며 유유자적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고전문학작가론」, 민족문학사연구소 고전문학분과, 소명출판.
김경수, 「이규보 시문학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6.
김진영,「고전작가의 풍모와 문학」,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4.
전형태,「이규보의 삶과 문학」, 홍익사, 1983.
하강진,「이규보의 문학이론과 작품세계」, 세종출판사, 2001.
<논문>
백순구, 「이규보 문학사상의 다층성과 그 상관성」, 부산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0.
서정화, 「이규보 산문 연구」, 고려대 대학원 박사논문, 2008.
송용은, 「이규보 문학 연구」, 전북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6.
오혜자, 「이규보 문학의 정신적 지향:문을 중심으로」, 충북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4.
Ⅴ. 이인로와의 비교
이인로와 이규보는 고려 무신정권 시대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두 문인으로 시대를 풍미한 라이벌이었다. 둘의 라이벌 관계를 짐작하게 해주는 유명한 술판 장면 하나는 이 둘의 출신성분과 서로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무신난이 일어난 후 기존에 개경을 장악하고 있던 문벌귀족은 몰락하였고, 새롭게 등용된 이들은 신흥사대부였다. 그러므로 문벌귀족과 신진사대부가 같은 문인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무신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인로를 필두로 하여 오세재, 임춘, 황보항, 조통, 함순, 이담지 등 일곱의 강좌칠현은 스스로를 죽림칠현처럼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문벌귀족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에 대한 대단한 불만을 품고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무신난 이전의 옛 영화를 그리워하고 권력 지향적인 이중적인 모습도 지니고 있었다. 신흥사대부 출신의 젊은 이규보가 이중적인 기존의 문벌귀족들에 대해 적대의식을 가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규보는 강좌칠현에 들어오라는 그들의 요청에 대해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시를 남긴다.
이인로와 이규보는 시를 창작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였다. 당시 고려의 문단은 송나라 시문학을 모방하고 특히 소동파의 시를 전범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미 존재하는 명문(名文)의 표현이나 관련사실을 다시 쓸어다 쓰는 창작방식을 용사라고 하는데, 이인로를 비롯한 문벌귀족 출신은 대부분 용사를 중요시하였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신흥사대부 출신인 이규보는 말을 꾸미는 것보다는 시의 뜻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소동파의 문장을 따라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한 아홉 가지 문체’의 예를 들며 비판하였다. 그는 송의 시문과 문체를 따르는 것을 마치 도둑질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시 창작법이 후대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자부하였다. 이규보가 선택한 창작방식은 ‘용사’처럼 옛사람의 표현을 뒤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착상과 표현을 중요시하는 ‘신의’라는 창작방식이었다. 물론 한시라는 특성상 용사와 신의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원론적인 창작방법론이기는 하지만 둘 중 어느 것을 중요시하느냐는 결국 그들의 문학관 내지 세계관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용사를 주로 하던 문단의 흐름에서 이규보가 신의를 택한 것은 하나의 전복이기도 했다.
이인로와 이규보는 시를 지을 때 ‘물(物)’에 대한 관점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시인이 시를 짓게 되는 과정은 결국 어떠한 물체를 보고나서 그로 인해 감화 받거나 어떤 흥(興)이 일어난 감정과 소회를 적어내는 것이다. 이인로는 물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이나 본성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물(物)로 인해서 시인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어떠한 뜻을 마음에 품고서 시를 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창작방법을 ‘탁물우의’라고 하는데 이는 ‘물에 기대 뜻이 나타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시에 나타난 시인의 마음의 근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방법이다. 그에 비해 이규보는 ‘물 자체’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는 물이 단지 뜻을 기탁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뜻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시 창작방법을 ‘우흥촉물’이라고 하는데 이는 ‘흥이 깃들어 물과 부딪히다’라는 뜻으로 사물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촉물이라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인로는 시가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았고 이규보는 시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로 다른 문학관을 보였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그들을 대표하는 시화집에서도 나타나는데, 이인로의 『파한집』은 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더라도 현실의 모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이규보의 『백운소설』에서는 치열한 청년기의 갈등과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Ⅵ. 결론
이규보는 고려 무신집권기의 대표적 문인이다. 무신집권은 당시의 문인들을 얽맨 시대적 억압이었다. 무신의 반란과 함께 출생하여 최씨 무신정권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규보 역시 이러한 문제로 고통받은 인물이다. 입신을 최고의 가치로 추앙하는 시대에서 무신정권과 관계하며 형성된 그의 삶과 문학은 결국 시대와 곁고 튼 길항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규보의 문학에 나타난 사상적, 정신적 지향은 곧 당시 동일한 조건에 있던 모든 문인의 정신과 맞닿아 있을 것이며 그것으로 무신정권이라는 독특한 시대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무신집권기와 대몽항쟁의 시대를 관리자로, 도학자로 살아간 이규보는 당대의 문제를 다양한 주제로 문학작품 속에 반영하였다. 유불도 및 다양한 사상을 망라한 작품 속에는 새롭게 시대를 이끌어 가야했던 신흥사대부 이규보의 정신적 지향이 깃들여 있다. 문벌이나 가문의 위력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전형을 창조해야 했던 다각적인 고뇌의 흔적도 엿보인다. 인간으로서의 개인적 삶과, 벼슬아치로서의 공인적 삶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자기절제와 도덕성을 지향하며 살았고, 현실 너머의 진정한 이상향으로서 자연의 법칙과 흐름에 순응하며 유유자적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고전문학작가론」, 민족문학사연구소 고전문학분과, 소명출판.
김경수, 「이규보 시문학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6.
김진영,「고전작가의 풍모와 문학」,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4.
전형태,「이규보의 삶과 문학」, 홍익사, 1983.
하강진,「이규보의 문학이론과 작품세계」, 세종출판사, 2001.
<논문>
백순구, 「이규보 문학사상의 다층성과 그 상관성」, 부산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0.
서정화, 「이규보 산문 연구」, 고려대 대학원 박사논문, 2008.
송용은, 「이규보 문학 연구」, 전북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6.
오혜자, 「이규보 문학의 정신적 지향:문을 중심으로」, 충북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