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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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종교개혁의 발단

2. 개혁전의 개혁자들

3. 루터.뮌쳐.개혁파.재세례파의 활동과 개혁적 흐름속에 나타난 자유,정의,사랑의 관점에서 본 종교개혁 사회학

본문내용

게 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칭의에 대한 소망을 완전히 버리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즉, 행위를 전연 계산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의를 논의할 때에 율법을 일체 언급하지 않으며, 행위에 대한 고려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하나님의 자비만을 받아들이며, 우리 자신을 보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세째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 자체로서는 “무해 무익한” 외부적인 사물에 관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종교적 의무에도 매여있지 않고, 그런 사물을 때로는 이용하기도 하며 또 때로는 이용하지 않는 것은 전연 무방한 일이다. 그리고 이 자유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인데, 만일 모른다면 우리의 양심은 결코 평안히 쉴 수 없으며 미신도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전적으로 영적인 것임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이 자유의 힘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 떠는 양심을 진정시키는 데 있다. 이는 신자들의 양심이 죄의 용서에 대해서, 혹은 우리가 끝내지 못한 일이나, 우리의 육의 허물로 더러워진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해서, 혹은 무해 무익한 것들의 사용 문제에 대해서 불안과 동요와 고민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의 정욕대로 악용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이런 자기의 욕망을 변호하는 구실로 삼는 자들이나 자유는 사람들 앞에서 쓰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약한 형제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유를 행사하는 자들은 모두 자유를 왜곡되게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법칙은 다음과 같은 것인 줄로 알아야 한다. 즉, 바울과 함께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만족할 줄 알며 낮아질 줄도 알고 높아질 줄도 알며,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배부르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모든 형편에 대처할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자유를 얻은 것은 우리의 약한 이웃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니 사랑은 모든 일에서 우리를 그들의 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가 충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다음에 사람들과도 화목하게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어느 정도로 조절하며 어느 정도로 걸림의 댓가로 치뤄져야 하는 가에 대해서 바울은 교훈과 실천으로 가장 분명한 정의를 내렸다고 본다.
<4> 재세례파(초월적 급진 혁명)
루터주의와 칼빈주의와 시대를 같이하여 이 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다른 형태의 개혁주의가 있었다. 여기에는 여러 형태가 있어 위의 두 종파처럼 공통의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그러나 여기에 추종하는 사람들은 많은 공통점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성서와, 특히 신약을 그들의 권위로 간주했고, 이러한 기본적인 자료 수집원에서 찾을 수 없는 모든 것을 배격했다. 그들은 제 1세기의 원시적 기독교로 돌아가기 원했고, 이로 인해 루터파나 개혁주의보다 훨씬 더, 카톨릭교회를 통해 전해온 것을 배격하는 데 힘썼다. 그들은 전(全)공동체와 동일시될 수 없으며 새로운 탄생의 경험을 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모인”(gath ered) 교회를 신봉했다. 그들은 유아세례가 비성서적이라고 배척하면서, 의식적인 신자들에게 행해지는 세례만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재세례파”(Anabaptists)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국가와의 협동을 완전히 거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확신하고, 사회에서 퇴거하여 주위 세상에 오염받지 않는 그들 자체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조기 종말론을 믿었으며, 천년왕국을 건설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속히 재림하시리라고 믿었고 또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divinity)을 부정하고 단지 지도자요 모본으로 그를 간주했다. 그들은 ‘산상보훈’의 도덕기준에 완전히 일치하여 살려고 노력했다. 재세례파들은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에서 완전을 구함에 있어 수도사와 유사하나, 그들은 결혼했다.
대개 재세례파들은 다른 개신교도나 로마 카톨릭교도들에 의해 심한 핍박을 받았는데, 그것은 이들이 기존질서를 파괴하는 위험한 반동세력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종교개혁 이전 세기에 이교도라고 간주되던 사람들과 연대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에 대한 폭력은 대륙에서 그들을 근절시키지 못했다. 몇 사람이 살아 남았고 이들은 영국에서의 운동들, 주로 독립파(Independents), 침례파(Baptists), 퀘이커파(Quakers)의 발전에 기여했다. 처음 두 운동을 통해 재세례파는 제 18세기와 특히 제19, 20세기의 기독교에 심오하고 증대(增大)하는 영향을 끼쳤다.
그들에게 있어서 참 신앙은(그릇된 역사관과 기독교생활관에의해 기도된)혁명적 열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영적인 자유란 변함없이 모든 정치 경제 사회의 예속상태로부터 즉각적으로 해방대는데로 끌어가는 것처럼 간주된다.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등극은 그의 결정적 완성과 혼동되고 공동체안에 하나님나라의 도래는 사회적, 교회적, 정치적 구조들의 급진적 폐기를 암시한다.
한편 재세례파는 사회적 정치적생활로까지 이 무정부상태를 연장하고 모든 권위의 폐기를 요구한다.
종교개혁 급진파의 사회학은 실로 Imitatio Christi의 사회학이다. 다시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메세지(특히 산상설교)를 개인적, 신학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사회학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비폭력, 절대 평화주의, 나아가 비능력(non-puissance)은 십자가의 신학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Imitatio Christi 사회학의 절정이다.
급진파들이 볼때,인간의 정의 실현이란,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의 정의에 기초를 둔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정의를 위반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정의를 그래도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할 수 밖에 없는) 정전(just war) 신학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이들은 폭력은 언제나 악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결코 선으로 여겨질 수없고 찬양될 수 없다. 전쟁에 의뢰해야할 때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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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1.16
  • 저작시기20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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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1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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