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8월 15일을 보는 좌 · 우익의 시각 -미디어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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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우익이 본 1946년 8월 15일

3. 좌익이 본 1946년 8월 15일

4. 나가며

본문내용

한 유인물의 구호는 더욱 과격하거니와 미군정 및 우익에 대한 좌익의 강경한 노선은 그리 멀지않은 시기에 일어날 ‘9월 총파업’과 ‘10월 투쟁’과 같은 물리적 충돌의 양상을 예견케 하기에 충분했다.
4. 나가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에 일부 사람들은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기념일’로 고쳐 부를 것을 주장했고, 이에 대하여 상호간에 약간은 멸시가 섞인 언쟁이 오가곤 했었다. 그렇게 보면 8·15에 담긴 이데올로기적이고도 헤게모니적인 의미를 둘러싼 논쟁은 1946년부터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다.
1946년 8월 15일, 아직 해방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연대기적 시간의 의미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으로 급속도로 변질되어 갔다. 좌우합작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우익은 우익대로 좌익은 좌익대로 분단을 향하여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확립되어가는 냉전체제는 그러한 움직임을 튼튼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으로서의 8·15는 1947년 8·15를 전후해서 좌익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해에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사실상 마무리를 지었고, 그 결과는 결국 분단으로 귀결되었다.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8·15라는 연대기적 표상에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편, 『한·중·일 3국의 8·15의 기억』,역사비평사, 2005년
이정 박헌영 전집편집위원회 편, 『이정 박헌영 전집』,역사비평사, 2004년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역사비평사, 1996년

키워드

8.15,   광복,   좌익,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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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1.12.07
  • 저작시기2011.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18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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