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공(反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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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 들어가며

Ⅱ . 적성과 동포애 : 남북한 관계의 이중성

Ⅲ . 반공의 기원―한국전쟁까지

Ⅳ . 나가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산주의자는 슬라브화된 족속”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이므로 죽여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반공이데올로기는 전쟁을 거치면서 목숨과 직결되는 윤리가 되면서 아동까지 포함한 전 사회의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백낙준은 그동안 안호상의 일민주의가 우회적으로 내세웠던 반공이데올로기 교육을 공식 교육과정으로 채택하여 반공 교육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이 당시의 반공교육은 ①적색교원 일소의 구체화, ②국민사상 지도원의 설치, ③교육공무원법 제정을 통한 법률적 통제, ④학생들의 정치활동 제지, ⑤라디오, 필름, 포스터, 팜플렛, 강연 등은 통한 사상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교과서도 전시용으로 대체되었다. 교과서는 생생한 전장 그 자체였다. 교과서를 통해 반공정신을 함양하는 정신단련과 함께 학생들은 군인 못지않은 ‘육체적 훈련’을 받았다. 한국전쟁시의 반공이데올로기는 이전에 이승만이 “파괴” “학살” 따위의 말들에 의해서 상상되는 관념에서의 강요가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과 직접 연결되었다. 수복이 된 후 반공교육은 더욱 강화되었다. 휴전 후, 이승만 정부는 언론과 교육을 통한 빈공이데올로기의 확대재생산에 몰두했다. 모든 출간물에는 ‘우리의 맹세’와 같은 반공문구가 실렸고 시골에서는 마을 단위로 멸공통학단이 조직되기도 했다.
Ⅳ . 나가며
‘뉴라이트’운동이라는 것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성 보수주의와 차별화를 선언하고 이른바 합리적인 보수를 외치며 언론의 많은 관심과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기본적인 이념은 반공이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보수와는 많은 차별을 가지지 않은 것 같다. 이와 같이 한국의 보수라고 일컬어지는 세력들의 기본적인 사유는 반공에 근거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통해 다시금 북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터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반공이데올로기는 다른 국가의 반공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 배타적인 의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그것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점,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에도 강하게 살아남은 점, 더 나아가 (그들이 규정한 바에 의하면)좌파정부에 대한 불만과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분명 한국의 반공은 특수한 사회적 현상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탈냉전시대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더디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평화 혹은 통일은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만큼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도 더욱 절실하다고 본다.
【참고문헌】
―강준만 김환표, 『희생양과 죄의식―대한민국 반공의 역사』(개마고원, 2004)
―강준만 外, 『레드 콤플렉스―광기가 남긴 아홉 개의 초상』(삼인, 1997)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남북한 관계론』(한울, 2005)
―김헌식, 『색깔논쟁』(새로운 사람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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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2.07
  • 저작시기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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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18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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