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1부 신체형
1장 수형자의 신체 - 서론
2장 신체형의 호화로움 - 신체형의 과시적 성격
2부 처벌
1장 일반화된 처벌 - 사회 수호적 차원의 처벌
2장 유순해진 형벌 - 정신적인 형벌로서의 감옥
3부 규율
1장 순종적인 신체
1) 분할의 기술 - 규율의 공간적 특징
2) 활동의 통제 - 규율의 시간적 특징
3) 규율 발생의 구조
4) 힘의 조립을 통한 효율성
2장 효과적인 훈육방법
1) 위계질서적 감시 - 시선에 의한 권력의 효과
2) 규범화한 제재
3) 시험
3장 판옵티콘 감시체제
1) 판옵티곤의 원리
2) 감시의 사회
3) 규율의 특성
결론
1부 신체형
1장 수형자의 신체 - 서론
2장 신체형의 호화로움 - 신체형의 과시적 성격
2부 처벌
1장 일반화된 처벌 - 사회 수호적 차원의 처벌
2장 유순해진 형벌 - 정신적인 형벌로서의 감옥
3부 규율
1장 순종적인 신체
1) 분할의 기술 - 규율의 공간적 특징
2) 활동의 통제 - 규율의 시간적 특징
3) 규율 발생의 구조
4) 힘의 조립을 통한 효율성
2장 효과적인 훈육방법
1) 위계질서적 감시 - 시선에 의한 권력의 효과
2) 규범화한 제재
3) 시험
3장 판옵티콘 감시체제
1) 판옵티곤의 원리
2) 감시의 사회
3) 규율의 특성
결론
본문내용
변질될 위험이 없다. 규율의 장치는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다. 권력을 계획 정비하고, 그것을 한층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사회의 여러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현실적으로는 군주라는 존재의 힘을 빌지 않고서도 권력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여러 가지 신체와 힘의 예속 방안을 규정하는 것이다. 규율에 대해서 사람들은 개개인의 효용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적극적인 역할을 원하게 된다. 18세기를 통하여, 규율 기관의 수효가 증가하고 기존의 각종 장치를 규율화하는 이중적 경향이 발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2) 감시의 사회
폐쇄된 장치가 자신의 내적이며 특유한 기능에 외적인 감시의 역할을 첨가해서, 주변에 측면적인 통제의 여유를 확대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찰 권력은 ‘발생하는 모든 것을’ 대상화해야 한다. 이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려면, 지속적이고 철저하며 어디에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감시수단을 감추어야 한다. 그것은 조직의 틈 사이로 파고드는 규율인 동시에 메타 규율인 것이다. 군주는 영리한 경찰에 의해서 민중을 질서와 복종에 익숙하게 한다. 정리하자면 고대는 다수의 인간으로 하여금 소수의 대상을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근대는 극소수가, 혹은 단 한사람이 대다수 집단의 모습을 순식간에 볼 수 있게 한다. 현대 사회는 거창한 구경거리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이다. 사회질서 속에서 힘과 신체에 관한 전술에 의거하여 개인은 세밀한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3) 규율의 특성
규율의 특성은 권력의 행사를 가능한 한 경비가 들지 않게 할 것, 사회적 권력의 효과가 최대한의 힘으로 파급되도록 가능한 한 멀리 확산되도록 할 것, 권력의 이러한 경제적인 증대와 권력이 행사되는 기관의 성과를 결부시킬 것 등이다. 규율은 다수의 인간과 생산 장치의 다양화를 조정할 수 있는 기술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된 집단 다수의 구성으로부터 형성되는 모든 힘을 통제해야 한다. 즉 폭동, 반란, 동맹 등 수평적인 결합에 해당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집단 다수를 효용증대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광채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는 권력 대신에 권력이 적용되는 대상을 교묘한 방식으로 객체화하는 그러한 권력이 들어선 것이다. 규율은 신체의 힘을 가장 값싼 비용의 정치적인 힘으로 환원시키고, 또한 유용한 힘으로서 극대화시키는 단일화한 기술 과정이다. 계약이 법과 정치권력의 이상적인 기초로 생각될 수 있었다면, 판옵티콘 감시체제는 보편적으로 확산된 강제권의 기술방법을 만들어 놓았다.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 ‘계몽주의 시대’는 또한 규율을 발명한 시대였다.
처벌하는 권력을 널리 보급시키는 것은 개별적인 법적 주체 안에서 법에 대한 보편적 의식이 아니라, 판옵티콘의 규칙적인 확산이자 무한히 빈틈없이 만들어진 조직이다. 병원부터 학교, 공장 등의 기관들은 규율 덕분으로, 권력의 모든 확대가 가능한 한 모든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러한 기구가 되어버렸다. 앙시앵 레짐 아래서 가장 큰 죄를 범한 범죄자의 신체에 대한 철저한 파괴가 중죄의 진실을 밝히는 일처럼 됨으로써, 그만큼 가장 강한 권력을 나타낼 수 있었다. 반면 오늘날 인간을 ‘관찰 상태’에 두는 방법은 당연히, 규율의 방법과 시험의 방법이 널리 침투해 들어간 재판의 연장이다. 감옥이 공장이나 학교, 군대나 병원과 흡사하고, 이러한 모든 기관이 감옥과 닮은 것이라 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이겠는가? 3부 <규율>을 끝으로 <감시와 처벌>의 요약을 마치기로 한다. 뒤의 4부 <감옥>에서는 3부의 ‘판옵티콘 감시체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과 사례를 들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요약을 중단하더라도 충분히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결론
우리는 2011년에 읽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의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곧 규율에서 벗어난 각 개인의 독립성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결국 제도가 만들어낸 감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인가? 아도르노에게서 발견했던 ‘계몽은 곧 신화다’라는 명제에서 인식의 차이를 통해 변질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던 것과는 달리, 푸코의 ‘계몽은 곧 규율이다’라는 명제는 더욱 비관적인 문장으로 다가왔다. 유럽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한국의 군부독재, 중국이나 북한의 사회주의 등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살펴보는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은 1980년대의 엄격한 규율체제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푸코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들은 일상의 규율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우리 사회에 학교와 병원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리고 시험에 따라 자신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통제당하고 있는 객체인 것이다.
이처럼 규율과 감시는 복잡한 사회가 별다른 반동 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규율을 감시하는 자는 확인할 수 없으며 실체도 없다. 판옵티콘 체제에 의하면 감시자는 반드시 이름이 있는 권력자일 필요가 없다. 내 가족일 수도 있고, 심지어 감시자가 없을 수도 있다. 왜 우리는 병원이나 학교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가?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규범화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푸코는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들을 밝히면서 사회를 단순히 비관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계보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새로운 상황에 도달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쉽게 하기가 어렵다. 스스로를 생각해봤을 때도 철저히 규율에 맞춰진 인간이기 때문에 고차원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인식의 전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앞으로 우리 모두가 더 많은 노력을 통해서 규율과 감시를 벗어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단, 그것은 단순히 진보적 관점에 의거한 계몽을 상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감시의 사회
폐쇄된 장치가 자신의 내적이며 특유한 기능에 외적인 감시의 역할을 첨가해서, 주변에 측면적인 통제의 여유를 확대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찰 권력은 ‘발생하는 모든 것을’ 대상화해야 한다. 이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려면, 지속적이고 철저하며 어디에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감시수단을 감추어야 한다. 그것은 조직의 틈 사이로 파고드는 규율인 동시에 메타 규율인 것이다. 군주는 영리한 경찰에 의해서 민중을 질서와 복종에 익숙하게 한다. 정리하자면 고대는 다수의 인간으로 하여금 소수의 대상을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근대는 극소수가, 혹은 단 한사람이 대다수 집단의 모습을 순식간에 볼 수 있게 한다. 현대 사회는 거창한 구경거리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이다. 사회질서 속에서 힘과 신체에 관한 전술에 의거하여 개인은 세밀한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3) 규율의 특성
규율의 특성은 권력의 행사를 가능한 한 경비가 들지 않게 할 것, 사회적 권력의 효과가 최대한의 힘으로 파급되도록 가능한 한 멀리 확산되도록 할 것, 권력의 이러한 경제적인 증대와 권력이 행사되는 기관의 성과를 결부시킬 것 등이다. 규율은 다수의 인간과 생산 장치의 다양화를 조정할 수 있는 기술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된 집단 다수의 구성으로부터 형성되는 모든 힘을 통제해야 한다. 즉 폭동, 반란, 동맹 등 수평적인 결합에 해당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집단 다수를 효용증대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광채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는 권력 대신에 권력이 적용되는 대상을 교묘한 방식으로 객체화하는 그러한 권력이 들어선 것이다. 규율은 신체의 힘을 가장 값싼 비용의 정치적인 힘으로 환원시키고, 또한 유용한 힘으로서 극대화시키는 단일화한 기술 과정이다. 계약이 법과 정치권력의 이상적인 기초로 생각될 수 있었다면, 판옵티콘 감시체제는 보편적으로 확산된 강제권의 기술방법을 만들어 놓았다.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 ‘계몽주의 시대’는 또한 규율을 발명한 시대였다.
처벌하는 권력을 널리 보급시키는 것은 개별적인 법적 주체 안에서 법에 대한 보편적 의식이 아니라, 판옵티콘의 규칙적인 확산이자 무한히 빈틈없이 만들어진 조직이다. 병원부터 학교, 공장 등의 기관들은 규율 덕분으로, 권력의 모든 확대가 가능한 한 모든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러한 기구가 되어버렸다. 앙시앵 레짐 아래서 가장 큰 죄를 범한 범죄자의 신체에 대한 철저한 파괴가 중죄의 진실을 밝히는 일처럼 됨으로써, 그만큼 가장 강한 권력을 나타낼 수 있었다. 반면 오늘날 인간을 ‘관찰 상태’에 두는 방법은 당연히, 규율의 방법과 시험의 방법이 널리 침투해 들어간 재판의 연장이다. 감옥이 공장이나 학교, 군대나 병원과 흡사하고, 이러한 모든 기관이 감옥과 닮은 것이라 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이겠는가? 3부 <규율>을 끝으로 <감시와 처벌>의 요약을 마치기로 한다. 뒤의 4부 <감옥>에서는 3부의 ‘판옵티콘 감시체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과 사례를 들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요약을 중단하더라도 충분히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결론
우리는 2011년에 읽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의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곧 규율에서 벗어난 각 개인의 독립성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결국 제도가 만들어낸 감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인가? 아도르노에게서 발견했던 ‘계몽은 곧 신화다’라는 명제에서 인식의 차이를 통해 변질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던 것과는 달리, 푸코의 ‘계몽은 곧 규율이다’라는 명제는 더욱 비관적인 문장으로 다가왔다. 유럽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한국의 군부독재, 중국이나 북한의 사회주의 등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살펴보는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은 1980년대의 엄격한 규율체제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푸코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들은 일상의 규율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우리 사회에 학교와 병원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리고 시험에 따라 자신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통제당하고 있는 객체인 것이다.
이처럼 규율과 감시는 복잡한 사회가 별다른 반동 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규율을 감시하는 자는 확인할 수 없으며 실체도 없다. 판옵티콘 체제에 의하면 감시자는 반드시 이름이 있는 권력자일 필요가 없다. 내 가족일 수도 있고, 심지어 감시자가 없을 수도 있다. 왜 우리는 병원이나 학교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가?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규범화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푸코는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들을 밝히면서 사회를 단순히 비관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계보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새로운 상황에 도달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쉽게 하기가 어렵다. 스스로를 생각해봤을 때도 철저히 규율에 맞춰진 인간이기 때문에 고차원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인식의 전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앞으로 우리 모두가 더 많은 노력을 통해서 규율과 감시를 벗어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단, 그것은 단순히 진보적 관점에 의거한 계몽을 상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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