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_천황제_이데올로기_레쥼(진짜완성)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근대_천황제_이데올로기_레쥼(진짜완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메이지 이전의 천황
Ⅲ. 메이지 시대의 천황제 형성
ⅰ. 막부말기 천황의 표면화
ⅱ. 천황제의 성립
ⅲ. 천황제의 확립
Ⅳ. 메이지 시대 천황제 이데올로기
ⅰ. 천황 권위의 정치적 이용
ⅱ)천황제이데올로기의 정착
(1)메이지헌법과 천황의 지위
(2)교육칙어, 가족국가관, 국가신도
(3) 천황의 시각화 - 전국순행
Ⅴ. 근대 천황제 비판
Ⅵ. 맺음말

본문내용

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권이라는 것도 실상 천황 혼자서 독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료집단의 동의를 얻은 합의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유신지사들은 천황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많은 정치제도의 개혁은 물론 다양한 방면에서 사상도 주입시켰다. 신도국교화와 전국순행, 그리고 교육칙어와 가족국가관의 강요와 같은 일련의 행적들은 천황의 신성성을 민중에게 주입시키고 강요하기 위한 것이었다. 천황이 가진 신성성, 절대적 권위는 이러한 개혁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천황제가 스스로 성립되지 못하고 유신지사들, 이후의 관료집단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천황제가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다. 진정 천황이 일본민의 대표자라면 모든 일본 국민들을 굽어 살펴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천황제의 강화는 사실상 농민들이나 하급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천황제의 강화과정에서 폐번치현과 위로부터의 자본주의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폐번치현의 경우 개별 영주들이 가진 토지를 모두 조정에 귀속시킨 것으로 실질적으로 농민들은 땅의 주인이 바뀐 것일 뿐,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의 자본축적 과정은 상공인과 정계의 유착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졌으므로 농민과 노동자들은 더욱 빈곤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반면 통치기구의 재편과 관료집단의 형성은 유신지사들을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특권계층을 만들어냈고, 자본주의화 과정에서는 일부의 상공업자들만이 정치와 결탁하여 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천황제 형성의 과정들은 그것을 주도하는 특권계층에 이익을 가져다 준 것 일뿐, 전체 국민들의 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또한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천황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근대가 가지는 이중성, 양면성, 혹은 모순들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천황제의 형성과정에서 일본은 자유민권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정부는 때로는 강압정책을 때로는 회유정책을 쓰면서 운동 세력들을 분열시켰다. 또한 군사권을 강화하여 보다 더 철저하게 개개의 민중들을 관리하려 들었다. 결국 군국주의로 이행하기 직전까지 민권운동은 그 모습을 감추었고, 근대를 대표하는 자유와 시민의 모습은 일본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천황을 내세우기 위해 강요된 신도국교화는 신도, 곧 천황이자, 고대부터 지속된 주술적인 요소들을 대거 받아들이는 요인이 되었다. 신도에 관련된 다양한 주술적 요소들이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정경유착, 가부장적 사상의 강화, 그리고 내적으로는 전제군주적인 정치형태 등도 근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아직도 일본 사회 내에 남아있으며 일본적인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형성은 외면적으로는 근대를 설정하였지만, 실상은 특권 계급계층에 의해 이루어진 변혁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천황을 내세워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확립시키고 그에 알맞은 방식으로 근대적 요소들을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근대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결국 천황제는 일본의 ‘근대화’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Ⅵ. 맺음 말.
천황제는 유신지은 파편화된 민중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정치적 군주, 서구 문명에 대항하여 이를 초월사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메이지 유신의 시기는 근대 천황의 이미지 메이킹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유신지사들, 그리고 나아가 메이지 정부는 불평등한 조약을 개정하고, 서구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하는 ‘전통 카리스마’로서 개화 정책을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몽매’한 민중을 개화의 영역으로 선도할 수 있는 문명개화의 군주, 그리고 강력한 군사권을 보유하고 지휘할 수 있는 군주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신성성과 절대적 권위를 가진 천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천황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여러 과정,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거쳐 이루어졌다. 폐번치현에서부터 메이지 헌법에 이르는 많은 개혁정책들과 신도국교화에서 천황의 전국순행에 이르는 많은 사상적 강요들이 그 역할을 해냈다. 저항하였던 민중들은 민권운동의 좌절과 함께 서서히 정부가 만든 천황상에 익숙해져갔고, 동화되어갔다. 결국에는 이에 동조하여 전제적인 군주를 당연시 여기게 되었으며 군국주의로 나아가게 되었다.
오랜 전통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사실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내재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본의 천황제를 들여다보며 알 수 있다. 우리는 ‘만들어진 전통’이라 해서 그 전통을 부정하여 들지는 않는다. 그것이 만들어진 이후로 내면화 된 이상 그것은 전통이라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들어진 전통’을 맹목적인 신앙의 대상 혹은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만들어진 정확한 맥락을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본의 천황제 역시 신앙의 차원, 절대적 진리의 차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 맥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러한 천황제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곧 일본의 역사는 물론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고토 야스시, 이남희 역, 『천황의 나라 일본』, 예문서원, 2006.
박진우, 『근대 일본 형성기의 국가와 민중』, 제이앤씨, 2004.
아시아문화연구소, 『천황과 일본문화』, 한림대학교출판부, 2004.
야스마루 요시오, 박진우 역, 『근대 천황상의 형성』, 논형, 2008.
조용래, 『천황제 코드』, 논형, 2009.
박진우, 「근대 천황제와 일본 군국주의」,『역사비평』 2000년 봄호, 역사비평사, 2000.
탁재형, 「일본천황제와 정치의식:천황권력의 본질과 정치적 이용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국제대학원, 2005.
서현섭, 『일본인과 천황』, 고려원, 1997.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12.28
  • 저작시기201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346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