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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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탁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록>

Ⅰ. 머리말
Ⅱ. 이탁오(李卓吾)의 생애
Ⅲ. 이탁오(李卓吾)의 주요 저서
1. 유교 공격의 시작, 『초담집(初潭集)』
2. 유교 공격의 전면전, 『분서(焚書)』
3. 자유 이념의 실현, 『장서(藏書)』
Ⅳ. 『장서(藏書)』를 통해 본 이탁오(李卓吾)의 역사세계
Ⅴ. 결론 - 이탁오(李卓吾), 21세기를 다시 살다.

본문내용

미를 갖는다. 이것은 바로 이탁오의 순환사관과도 관계되는데 사회와 역사의 발전에 변화가 매우 중요하며 숙명적인 성격이 있음을 주장한다.
어쨌든 그가 전통과 형식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역사평가를 강조한 것은 매우 값있는 사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평가나 가치표준의 한계라는 어려운 과제를 남겨놓기도 하였다. 이것은 바로 양명학에서 중요시하는 정감과 주관성의 문제가 객관적인 사회윤리와 어떻게 합리적인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도학에 대한 그의 태도도 바로 여기에 연결되며 시비의 겉과 속이라는 양면을 이루고 있다.
이탁오 사관의 또 다른 특징은 형식적 윤리보다는 역사적 공적에 대해 더 높은 찬양과 평가를 하고 있는 점이다. 평범한 남녀들의 일생과 동양의 유교문화권에서 외면적으로 크게 경시된 개인과 개인 소유가 바로 도(道)이며, 참된 사회윤리라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사관은 당시로서는 아주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서 선진시대의 법가사상가나 진시황의 통일사업, 진승(陳勝)항우 등의 활약, 탁문군의 자유결혼, 풍도의 12군왕에 대한 충성이 설자리를 확보하게 된다. 신경철,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자유인-이탁오』, 지식산업사, 2006, p281.
이탁오는 확실히 타고난 열정의 자유인이었다. 이러한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사상에 바탕을 둔 그의 역사관 역시 매우 객관적이었으며, 아울러 합리적이었다. 이것은 전통으로부터의 것이건, 공자나 주자로부터 왔건 정해진 논의에 근거를 두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객관적이고 자유로운 비판과 사상은 바로 그의 역사관 속에 흐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Ⅴ. 결론 - 이탁오(李卓吾), 21세기를 다시 살다.
최초의 대저서로서 유교 공격의 포문을 열었던 초담집을 시작으로 공격과 비판이 열화 같은 분서나 역사와 역사인물에 대한 총평가서인 장서를 통해 그의 비판과 평가는 집대성되었다. 그것은 자유의 이념이었고, 개혁의 정신으로 가득 찬 ‘시대정신’, 즉 그 시대의 ‘지도이념’이기도 하였다.
한 시대와 전통을 상대로 무모할 만큼 격렬하게 투쟁했던 그는 특히 비평가로서 예리하고 독창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은 낡은 시대에 대한 역사의 비판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그는 300여년 뒤 54신문화운동 시기 이르러 크게 영향을 주었다.이러한 시대정신과 지도이념은 반(反)도학과 반유교, 즉 위선과 경직된 형식의 파괴였고, 새로운 관점으로 자유롭게 시비를 평가하는 새로운 ‘저울과 거울’이었다. 이것이 뒷날 그가 ‘한 시대의 으뜸가는 스승(一代宗師)’으로 평가받게 된 이유이다.
※ 참고문헌 ※
신경철,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자유인-이탁오』, 지식산업사, 2006,
유동환, 「이지(李贄)의 동심설(童心設) 연구」,『중국철학』, 중국철학회, 2000.
신용철, 「한국에 있어서 이탁오」,『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회, 1993.
김춘희, 「이지(李贄)에 대한 재평가(再評價)-도덕성(道德性)을 중심으로-」,『명청사연구』, 명청사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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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2.28
  • 저작시기201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3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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