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 엘리아데, 암스트롱에게 묻다. 종교란? & 삶에 대한 성찰 - 시간과 진리 & 영원회귀의 신화와 축의 시대 & 고통과 악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엘리아데, 암스트롱에게 묻다. “종교란?”
 『영원회귀의 신화』와『축의 시대』를 통한 종교의식의 변화

종교가 줄 수 있는 해답은 무엇일까삶에 대한 성찰 - 시간과 진리

삶에 대한 성찰 - 시간과 진리
 1. 시간에 대하여 - 고대인의 존재론을 생각할 것
 2. 진리에 대하여 - 황금률의 원칙을 지키며 추구할 것

영원회귀의 신화와 축의 시대를 통한 나의 삶의 재조명
 1. 내 마음에도 봄이 오기를 !!(소제목)

고통과 악은 무엇일까?
 한 학기 동안의 고민: 고통과 악(惡)
 고통의 이중적인 속성
 고통과 악의 필요성
 고통과 악은 결정적인가

나의 종교
 1. 우리 가족과 나의 종교
 2. 고통을 통한 종교관의 변화
 3. 종교학 수업이 나에게 미친 영향

본문내용

있을 것이다. 결국 고통과 악은 둘 다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대척점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고통과 악은 결정적인가
물론 이와 같이 단순화 시킨 도식화-이분법-로 고통과 악의 존재를 설명해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뜻 악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가지는 상대적인 가치-선을 대척점으로 두어 그것을 부각시켜준다는-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악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악을 통해 부각되는 선의 가치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 악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제 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악이 필요했던 이유, 즉 선을 깨닫기 위함이라는 이유가 깨달아진 이후에는 더 이상 악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런 의미에서 고통과 악은 결정적이지 않다. 그것들이 항상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들이 가지는 긍정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들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에서 발견해내는 삶에 대한 통찰, 악에서 깨닫는 선의 소중함을 안다면 그것은 이제 고통과 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그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의미에서 나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고통과 악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한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그것들은 한때 필요했을 지라도 결코 본질상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고통과 악에 관해서 한 학기동안 들었던 고민들을 나름 정리해보고 하나의 보고서로 써 보았다. 생각의 흐름을 좋은 결로 표현해보고자 했지만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보람찼다. 약간은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
나의 종교
1. 우리 가족과 나의 종교
우리 집안의 종교 이야기를 하면 그 어느 누구 못 지 않게 특이하다. 친가 쪽으로는 현재 절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를 포함하여 아버지 형제 모두 불교를 믿는 집안이지만 정작 아버지의 종교는 불교, 기독교를 거쳐 현재 믿고 계신 신앙은 천도교류의 어떤 작은 규모의 단체를 다니신다. 흔히 말하는 사이비라면 사이비라고 할 만한 단체이지만 특별히 우리 가족들에게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고 터무니없는 액수의 금액을 요구하지도 않고 아버지 당신 혼자 마음의 안정을 느끼시며 잘 다니시므로 크게 문제되는 것은 없다. 이에 반해 외가 쪽을 보면 외할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앙을 갖고 계신데에 반해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시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갔지만 어머니는 석가탄신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다니시는 절에 계시느라 얼굴도 못 뵈었을 정도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각자의 신앙심 깊은 두 부모 사이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무신론자이다. 중학교 때 처음 과학, 기술에 흥미를 느끼고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한 이후로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분 뜻대로 흘러간다고 주장하는 종교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인류 진보를 위해 노력했던 수 많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능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내 일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의 스님에게 조언을 구하시는 것을 보면서 겉으로는 ‘네, 네’ 거리며 순종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21세기에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생각하곤 했다.
2. 고통을 통한 종교관의 변화
이렇듯 늘 인간의 힘에 대해서 자신만만하고 종교를 무시하던 내 태도는 올해 들어서 많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 대한 생각해 보는 시간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채로 지난 대학생활을 보내다 보니 진로, 학업, 인간관계 등 여러 부분에서 치이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이러던 와중에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겼고 이를 잘 극복을 못 하고 정신적으로 나약한 시기를 보냈다. 이러던 시기에 느낀 종교는 분명 이전과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접했던 불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등과는 다르게 절대적인 조물주를 숭상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내적으로 들어가 스스로 진리를 깨닳는 것이라는 것이 특히 와 닿았다. 사찰을 방문하여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한나절 앉아 있다 보면 나를 괴롭히는 고통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느낌이 늘 갖고 있었다. 이는 마치 엘리아데가 말하던 고대인들처럼 외부에서 오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과 유사했다고 생각한다.
3. 종교학 수업이 나에게 미친 영향
그러던 와중에 이번 학기부터는 전에 듣지 않던 종교 관련 수업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다. 처음에 내 생각은 종교학이라는 개념을 신과 그에 대한 복종을 주로 하는 신학과 정밀히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종교 관련 책을 읽고 인간이 어떻게 종교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종교학이라는 학문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내가 종교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의 변화 과정과 고대인들이 종교를 갖는 과정 사이를 비교해보는 것이 특히 와 닿았다. 단지 생각 뿐이 아니라 실제로 이번 학기 종교에 대해서 수업을 들으면서 내 생활 태도는 많이 변화가 있었는데 지난 5월 10일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조계사를 방문하였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끌려 강제로 방문한 것 이외에 내가 스스로의 결정으로 종교 기관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곳에서 깊은 사색을 즐겼다는 것은 당연히 과장이지만 분명 이전까지 느껴왔던 내 내적인 고통에 대해 어느 정도 덜어 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축의 시대 작가 암스트롱는 물었다. 불신론자, 무신론자, 종교에 대해서 그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 인간의 힘을 지나치게 광신하던 이전에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종교가 진보된 기술 속에서 사는 현대 인간들에게 더 이상 줄 수 있는 교훈이 없는지에 대해서. 과거에 나는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조심히 그렇다고 대답 했을 것이다.

키워드

종교,   엘리아데,   삶 성찰,   고통,   진리,   영원회귀,   ,   종교관
  • 가격2,3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04.21
  • 저작시기201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4171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