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보트피플(Vietnamese Boat People) 역사와 규모, 특징, 이주요인, 해외이주정책, 언어, 주민, 용어 경제적 효과, 경영, 마케팅 조사분석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베트남 보트피플의 배경
2. 베트남 보트피플의 출신
3. 베트남 보트피플의 귀환
4. 분산된 보트피플(미국, 캄보디아)
5. 베트남 보트피플 출신 주요인물

본문내용

가운데에 똔레쌉(Tonlesap) 호수가 있다. 수위가 가장 낮은 건기 때도 2,5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우기에는 면적이 2배까지 늘어난다. 제주도의 면적이 약 1,850 ㎢이니, 건기 때도 최소한 제주도 총 면적보다 넓은 호수다.
똔레쌉 호수에는 약 4,000여 명의 사람들이 배 위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그들은 대부분 물고기를 잡거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거나 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똔레쌉 호수에서 수상가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이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고 베트남이 공산화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세계 여기저기로 흩어졌는데, 그 중 일부가 메콩 강을 따라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다. 소위 말 하는 베트남의 '보트피플 (Boat People)'이다.
이들은 다른 대부분의 보트피플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캄보디아 측에서는 상륙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청년이 노인이 될 만큼 오랜 세월을 배 위에서 살고 있다.
옛날에 죽기살기로 미국으로 건너갔던 일부 보트피플들은, 돈을 벌어서 최근에는 자국으로 금의환향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똔레쌉의 보트피플들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 국제단체에서 이들을 위해 학교나 기타 공공시설들을 세워주기도 한다.
똔레쌉 호수는 물이 탁하다. 각종 동물들과 사람의 배설물이 그대로 호수에 배출되는데, 그 물에서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이 물은 식수로도 쓰인다.
관광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내리는 식당가 쪽에는 아이들이 커다란 대야를 타고 빠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나무토막 등으로 노를 저어 호수 위를 둥둥 떠 다니며 관광객들이 보이면 빠른 속도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베트남 난민 출신 주요 인물
미해군 구축함장 ‘보트피플’ 출신 Cmdr. H.B. Le 함장
1975년 5세에 ‘보트피플’로 베트남을 떠났다가 34년 뒤 미해군 Arleigh Burke급 미사일 유도 구축함USS Lassen (DDG 82)함의 함장이 돼 고향에 돌아온 Hung BaLe 중령. 34년 전 떠날 땐 ‘보트피플’이었지만 돌아올 땐 미국 최신형 구축함의 함장이 돼 있었다. 베트남 항구도시 다낭에 정박한 미 해군 구축함Lassen (DDG 82)함 함장 Hung BaLe중령(39) 이야기이다.
레 함장의 아버지는 1975년 베트남 해군 고위 지휘관이었다. 그는 사이공이 함락되고 공산군이 밀려오자 작은 어선에 가족을 포함한 400여 명의 피란민을 가득 태우고 바다로 나섰다. 레 함장은 그때 다섯 살이었다. 정처 없는 항해였다. 다행히 어선은 3일 만에 미군 함정을 만나 구조됐고 필리핀 미 해군기지와 미 캘리포니아 주 난민캠프를 거쳐 버지니아 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슈퍼마켓 짐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고, 나중에 점장까지 승진할 정도로 억척스럽게 일했다. 그 와중에도 자식들에게 바다에 대한 꿈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 해군에 입대한 레 씨는 39세에 300여 해병을 거느린Lassen (DDG 82)함 함장이 됐다. 미 해군 7함대에 소속된 USS Lassen (DDG 82)함은 미해군 주력 이지스 구축함인 Arleigh Burke급 미사일 유도 구축함이다. 8억 달러가 넘는 비용으로 건조된 이구축함에서 내려 베트남 땅을 밟은 레 씨는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군 함장으로 금의환향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면서 “개인적으로 크나큰 영광”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많은 고난을 참고 헤쳐 온 아버지를 늘 닮고 싶었다”면서 아버지의 꿈을 마침내 자신이 이룬 데 대해 기쁨을 표했다. 서툴긴 하지만 베트남어로 “미국인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베트남의 전통 역시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베트남 입양아 출신 독일 정치인(보트피플은 아니지만 베트남전쟁당시 입양됨.)
‘생후 9개월 때 독일인 부부에게 입양→29세에 의사자격증 취득→36세에 아시아계 최초 독일 연방정부 보건장관→38세에 외국계 최초 자민당 당수 및 연방정부 부총리(예정)’.
독일 집권 연정의 파트너인 자유민주당(FDP)의 차기 당수로 사실상 확정된 베트남계 필립 뢰슬러 보건장관의 인생 역정이다.
자민당 전당대회에서 승인될 경우 그는 베스터벨레가 겸임하고 있는 연방정부 부총리직도 승계할 예정이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외국계 부총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뢰슬러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3년 베트남 남부 칸호아에서 태어났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는 생후 9개월 때 독일인 부부에게 입양됐다. 네 살 때 양부모가 이혼하며 직업군인이자 헬리콥터 조종사였던 아버지 손에 자랐다. 그는 장관 재직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는 나의 롤 모델”이라며 “아버지의 격려가 친구들과 다른 외모로 고민하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게 했다”고 회고했다.
하노버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2002년 의사가 됐으며 이듬해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19세 때인 92년부터 자민당 청년위원회에 몸담은 뢰슬러는 2006년 자민당 니더작센주의 대표로 뽑혔다. 2009년 기독교민주당(CDU)-기독교사회당(CSU)-자민당 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해 연립내각을 구성할 당시 16명의 장관 중 최연소로 보건장관이 됐다. 여전히 반대파들로부터 동양인을 깔보는 뜻의 ‘중국 녀석’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최근 실시한 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서 자민당 출신 정치인 중에서 2위에 오를 만큼 인기가 높다.
출처
베트남전 홈페이지-http://cafe3.ktdom.com/vietvet/vietwar/hist13.htm
‘보트피플’ 120만 미국 정착, 한겨레, 박찬수 2005.04.29
Viggen의 군사 무기사진 블로그-kr.blog.yahoo.com/shinecommerce/26105
베트남 전쟁 고아 출신 뢰슬러 독일 부총리 된다, 중앙일보, 남형석, 2011.04.07
베트남 바꾸는 '실용 리더십' (上) 보트피플 출신 만나 "조국 도와 달라", 중앙일보, 최형규, 2007.06.19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2.05.09
  • 저작시기201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429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