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의 의의와 그 과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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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4.19 혁명의 의의와 그 과제에 대해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4.19는 혁명인가?

1. 4 19혁명의 시대적 배경
 1) 정치적 상황
 2) 경제적 상황

2. 4. 19혁명의 발생원인
 1) 간접적 원인
 2) 직접적 원인

3. 4.19의 발생과 전개 과정
 1) 4.19의 발생
 2) 4.19의 전개

5. 과도정부의 성립과 한계

6. 장면 정권과 4. 19
 1) 장면 정권의 수립
 2) 혁신 세력의 침체
 3) 장면 정권의 한계

7. 결론

# 논쟁 #
논쟁
◉ 4.19의 주체세력 - 학생 vs 민중
◉ 4.19의 성격 - 혁명 vs 항쟁

참고문헌

본문내용

15일 이후 시민의 대대적인 참여가 있었다. 이것은 419가 가지는 여러의미를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시위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사회적 모순의 최대의 피해자로서 잠재적 혁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 419가 가지는 현대사에서의 역사적 의의를 고려하였을 때에도 한 계층의 주도라기보다는 민중을 주체세력으로 보는 것이 옳다.
A1
- 민중이 주체세력이다.
→ “민중” 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가.
일반적 정의에서의 민중은 노동자, 농민, 도시하층이다.
이들이 419를 주도할 만큼의 역량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전적 정의에서의 민중은 대다수의 피지배계급으로서 일반 대중이다.
이들이 참여한 의도는 낭만적 경향이 강하였는데 이러한 모든 이들을
주체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
B2
- “민중”의 정의를 노동자, 농민, 도시하층으로 구분하거나 확대된다면 일반대중이다.
→ 당시의 상황에서 피해자 또는 소외자 희생자 등 넓은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
→ 사회의 불만을 가진 많은 이들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 낭만적 경향이 강한 이들이 많다.
→ 단순히 낭만적 경향만을 가지고 확산된 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것들이 계기로 인하여 폭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노동자, 농민 등은 419의 주체세력이 될 만한 역량이 되지 못했다.
→ 419이전에도 노동운동, 농민운동의 모습으로 그 역량이 확인된다.
역량이 있다고 밝힌 학생역시 노동자, 농민의 역량과 큰 차이가 없었다.
“촉발적 사전”이기 보다는 민중 전체의 운동으로 파악해야 한다.
A2
- 민중전체에 포함되는 다른 세력도 노동운동, 농민운동으로 역량이 확인된다.
→ 419이후 운동모습의 변화를 보면 모습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운동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 넓은 의미로서의 민중을 파악하여 그들의 참여를 간과해선 안된다.
→ 넓은 의미에서의 민중인 어린이나 어린노동자들의 참여도 주체세력으로
보아야 하는가. 민중의 참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을 주체세력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4.19의 성격 - 혁명 vs 항쟁
(혁명)
A1
혁명이란 사회경제적 모순을 어떤·체제로 급격히 변화시키는 일련의 움직임
-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인 장면을 세워 정권을 교체시켰다.
- 4.19로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활발한 사회변혁이 일어났다.
B1
- 자유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의 교체가 있었다.
→ 이승만의 자유당과 장면의 민주당은 성격의 차이가 없는 정당이므로 독재정권이 무 너졌어도 정권의 교체라고 할 수 없다
→.민주당은 혁명의 주도세력이 아니었으며,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한 정당이 아니다.
- 활발한 사회변혁이 일어났다.
→ 4.19 혁명의 정신은 5.16 쿠데타로 인해 그 맥이 이어지지 못한다.
→ 4.19가 일어난 후에도 지금까지 정치,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변화가 미비하다.
A2
-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만으로 혁명이라고 할 수 없다.
→ 419는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민중에 요구에 의해 이승만 정권을 퇴진시킨 역사적 사 실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 4.19 이후의 사회변혁이 미비하다
→ 교원노조의 설립 등 노동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 학생운동의 방향도 민족통일연맹을 결성하는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중심으 로 학생운동을 이끌어 가려고 하였다.
B2
- 이승만 정권의 퇴진이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다.
→ 4.19는 이승만 정권의 퇴임만을 원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정권의 부정부패, 경찰의 폭압, 불안정한 경제 등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바꾸 는 것이 4.19의 목표이므로 4.19 이후에 이러한 것들이 해결되지 않은 것은 혁명이라 고 할 수 없는 것이다.
- 활발히 일어난 노동운동, 학생운동이 사회변혁의 움직임이다.
→ 50년대부터 노조나 사회운동에 대한 움직임이 존재했다. 그리고 양적으로 팽창했다 고 해서 반드시 질적으로도 함께 성장했다고 볼 수 없다.
(419 항쟁이다)
B1
- 항쟁의 의미 “맞서 싸움” 이다. 뜻처럼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419의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 당시 사회적으로 419를 항쟁이라고 평가하였다.
항쟁으로서 커다란 결과물을 가진 전례로 평가한 것이다.
A1
- 정권붕괴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따라서 항쟁이다.
→ 자유당 정권후 같은 보수당인 민주당으로 넘어간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을 보고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저 싸운 항쟁이라고 보는 것은 그 결과를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 또한 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후 419를 계승하는 여러 운동들의 정신이
바래질 수 있다.
- 당시 사회적으로 419를 항쟁이라고 평가하였다.
→ 역사는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후손이 평가하는 것이다.
B2
- 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419를 계승하는 여러 운동들의 정신이 바래질 수 있다.
→ 항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바래지고 혁명이라고 해서 계승될 수 있고 하는 것은 아니다.
- 역사는 이후 후손이 평가하는 것이다.
→ 이후 후손이 “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이유를 바라보자.
A2
- 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이후 세력이 419의 혁명적 분위기를 부각시키고자 사용한 것이다.
→ 419가 가지는 혁명적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 것으로 이어지는 운동에서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권. 2004. 인물과 사상사.
김인걸외. 한국현대사 강의. 1998. 돌베개.
동아일보사.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제3권. 1990. 동아일보사
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제2권. 2001. 돌베개
박현채.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 -1945~1991-. 1993. 소나무.
이재오. 해방후 한국 학생운동사. 1984. 형성사.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한국현대사2. 1991. 풀빛.
한국현대정치사. 『제3장 4월혁명과 장면정권』한국정치외교사논총, 15권, 단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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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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