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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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편의 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시편집의 최종 형태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시 1-2편으로부터, 심지어 더욱 엄밀하게 시편집의 첫 번째 단어 "복: Happy(NRSV)"으로부터 시편 신학의 고찰을 시작하는 것은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나머지 시편들은 인간의 행복에 관한 모습을 묘사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행복의 정의(定義)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시편 전체에 걸쳐 명확하다. '복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끊임없이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시 1:2; NIV와 NRSV, "법law") 요컨대, 행복은 하나님의 교훈에 대한 끊임없는 개방을 포함하여 철저하게 삶을 하나님에게로 향하게 하는데서 비롯된다. 시 1:2은 독자들로 하여금 시편서의 나머지 부분들을 경전으로서 그리고 "구원의 신적 질서에 관한 신학적 연구의 교본"으로서 접근하도록 방향설정에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시 1:2은 또한 핵심적인 개념 즉, 행복을 소개해주며 철저하게 그 개념에 신 중심적 정의(定義)를 제공해주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복"(asre)에 해당하는 단어는 시 2편의 결론을 포함하여 시편 1권(BookⅠ)과 시편서의 나머지 부분 전체에 걸쳐 드러난다(또한 시 32:1-2; 33:12; 34:8; 40:4; 41:4; 65:4; 84:4-5, 12; 89:15; 94:12; 106:3; 112:1; 119:1-2; 127:5; 128:1; 137:8-9; 144:15; 146:5을 보라).
복 있는 사람의 초상은 시2:12부터 선명해지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핵심어 즉, BookⅠ과 시편서의 나머지 부분 전체에 걸쳐서 또한 드러나게 되는 용어를 소개함으로서 그렇게 된다. 그 용어가 바로 "피신(refuge)" 이다( hasa; 시 5:11; 7:1; 11:1; 14:6; 16:1; 18:30; 25:20; 31:1; 19; 34:8, 22; 36:7; 37:40; 46:1; 57:1; 61:3-4; 62:7-8; 64:10; 71:1, 17; 73:28; 91:2, 4, 9; 94:22; 118:8-9;

본문내용

중요하다. NRSV의 "자비로운(Merciful"( rahum)은 "자궁( rhm)"을 의미하는 명사와 같은 뿌리에서 왔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모성적 연민을 보여준다(시 25:6; 40:11; 51:1; 69:16; 79:8; 106:45; 111:4). "은혜로운(gracious)"( hanun)이라는 단어는 규칙적으로 "자비로운"(rahum)이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고, 그 어근의 또 다른 형태는 하나님의 은총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청하기 위한 기초가 됨을 나타낸다(예를 들어 시편 4:1; 6:2의 "자비로운"을 보라). "신실하심"( emet)과 "변함없는 사랑"은 빈번하게 출애굽기의 34:6과 같이 짝을 지어 나온다(시 25:!0; 36:5; 40:10-11; 57:3; 61:7; 85:10; 89:14; 117:2을 보라). "신실함"이라는 단어는 홀로 잘 나오기도(시편 54:5; 71:22; 91:4; 143:1)하지만, 헤세드는 더 빈번하게 나타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해를 한 단어로 요약함으로서 도움을 준다.
하나님이 근복적으로 연민적이시고, 은혜롭고 신실하고 사랑이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어울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시편서는 하나님의 분노를 지각했다(시 2:5,12을 보라). 시편기자들은 그들의 적들에 맞서서 하나님의 분노에 호소한다(시 56:7; 59:13을 보라),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경험하기에 이른다(시 6:1; 38:1; 78:59,62; 88:7,16; 89:38,46; 90:7,9,11). 또 다시 헤세드로서(6절)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일어난 출애굽 34장과 일치한 이 그림은 하나님은 처벌받지 않은 죄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진술로서 밀접하게 이어진다(7절 NIV).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하면서도 분노할 수 있으며, 어떻게 은혜로우시고 정의로우시며, 용서하시면서 벌을 주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는 대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또는 하나님에게도!- 실제로, 이런 딜레마는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리고 이것은 약해지는 하나님의 의지와 사랑을 위해 고통을 당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징벌은 명백하게 기계론적 계획처럼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상(Reward)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진정한 삶의 경험이며, 처벌은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으려는 선택의 필연적인 산출물이다. 시편의 책은 악(惡)은 끝까지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확언한다(시편1을 보라). 그러나 자신의 죄성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각(시편 32;51;78;106;130을 보라)과 모든 인간의 죄성을 보면(1-2;14;143을 보라), 우리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정의는 궁극적으로 사랑으로서 표현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기독교인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된 통치의 신비함에 대한 시편서의 소개(presentation)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명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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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7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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