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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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에게 솔직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2. 초월(超越)의 하나님에서
3. 느낀점과 비평
4. 나오면서

본문내용

때문에, 저자는 신의 인격성을 고려하여 모든 존재의 깊이가 되는 신이 곧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러한 실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정의 했다(p.61). 로빈슨은 틸리히의 신학을 빌어 초자연주의적 초월적 신관을 초월적인 ‘깊이’와 ‘기반’의 신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서 인격적인 한 존재로서의 신을 ‘존재 자체’로서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실체로서 묘사 했다. 이 주장은 한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을 존재 자체로 보편화 시켰기 때문에, 신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가장 뛰어난 분이라는 상대주의적인 신개념을 벗어날 수 있다.
4) 남을 위한 인간
여기에서는 전통적 기독론에 문제를 제기한다. 전통적 기독론은 초자연주의의 틀을 이용했는데, 대중종교는 이를 신화적으로 묘사하고 전문 신학은 이것을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요, 완전한 인간’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성적 회의를 제기하고 에수님의 정체성을 ‘전적으로 남을 위한 인간’이라 하여, 예수는 남을 위한 인간, 사랑에 완전히 사로 잡힌 사람, 자기 존재의 기반과 완전히 통하며 하나가 된 사람이라고 정의 한다(p.95).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란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신의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정의 되며, 현실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실천이 강조되는 사람들이다. 요즘과 같이 이성은 충만하나 실천이 부족한 교회에는 이 주장이 유익한 정의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술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요, 이 땅에 살다가신 그리스도이시지 다시 오실 그리스도로 언급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어쩌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심판 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부정하는 기독론은 아닐런지....
5) 세속적인 거룩함
이 장에서는 ‘종교가 전혀없는 곳에서 예배와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세속적인 대답을 하고 있다. 여기서 거룩한 것이란 ‘통속적인 것의 깊이’이며 예배는 ‘통속적인 것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통속적인 것의 피상성을 꿰뚫고 그것을 이탈상태에서 구속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를 향하여 자기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라고 정의 한다. 그리고 기도라는 것도 ‘우리 존재의 기반 앞에 자기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라고 말한다(p.127). 이 장에서 말하는 예배와 기도는 ‘존재의 기반과의 만남의 행위’로서, 그 예배의 의식과 장소는 상황에 의해서 자유롭게 규정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도 논리전개의 기본 구조가 복음과 종교적 테두리를 구별 짓고 종교적 테두리를 해체함으로써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을 드러 내려고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복음과 종교적 테두리를 엄격하게 구분해줄 기준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종교적 테두리로 일컬어지는 많은 부분들이 이미 복음을 내포한 상징 언어와 상징 행위로 구성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상징적 표현을 과거 세계관에 근거한 종교적 틀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통속적인 것 속에서 존재의 기반을 만나는 것이 예배라면, 복음이란 종교적 테두리와 구별되는 그 무엇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 테두리를 포함하는 것이리라.
6) 새로운 윤리
이 장에서는 종교가 전혀 없는 곳에서의 진정한 기독교의 결과로서 윤리를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을 가지고 종교의 테두리에 해당되는 개체적인 일에 대해서 실존적이고 상황에 맞는 행위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사랑 이외에는 아무 것도 법규화 하지 않는 철저한 상황윤리’라고 기술한다(p.145). 여기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은 완전히 사랑에 근거한 윤리가 실현 된다고 할지라도, 이 윤리가 기독교에 근거하지 않은 그 무엇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 자체가 기독교의 결과일 수는 없다.
7) 틀을 개조하는 일
본서는 본회퍼의 주장을 인용하여 ‘종교의 패턴’으로서의 기독교와 복음을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여겨지는 복음을 제외한 부분인 종교적 테두리들을 이성으로 납득 가능한 것으로 해체하고 있다. 불트만이 말한 ‘신화론적인 것’, 틸리히의 ‘초자연주의 적인 것’, 본회퍼가 ‘종교적’이라고 묘사한 것이 바로 종교적 테두리에 해당되는 것이다. 비 종교적 세상에서 종교적 테두리는 적합성이 적기 때문에 해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본질로서의 복음이 더욱더 뚜렷이 드러나게 되고, 이 복음을 시대적으로 적합한 테두리를 통해서 실천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미 교리화되고 종교적 틀로서 규정된 기독교의 많은 부분이 해체되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종교적 틀들을 상대화 함으로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변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신학의 분화와 공동체의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는 신학의 한 모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4. 나오면서
이상에서 종교적인 기독교를 비종교적인 시대에 변증하려고 노력했던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를 요약하고 비평해 보았다. 로빈슨의 문제 제기는 이 시대에 마땅히 우리가 고민해야 할 신학적 문제이며, 진지한 자세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 기독교인의 의무감을 생각게 한다. 로빈슨은 ‘이 시대 사람들이 왜 신에 대하여 무관심해졌는가’에 대한 답변으로서 기독교의 종교적 테두리가 이 시대 사람들의 사고와 접합점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을 폈다. 그리고 이 ‘종교적’이고 ‘초자연주의적’이며 ‘신화론적인 것’을 해체하고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 자체로서의 복음을 실천, 적용하여 진리로서의 기독교를 변증하려고 하였다. 로빈슨의 주장은 현 시대의 시대정신으로서 복음을 재해석하여 기독교의 진리됨을 변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과 종교적 테두리로서의 기독교를 분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서 언어들을 신화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인간 이성에 기준을 둔 과학적 용어로 해체할 경우 예수는 구속자, 심판자라기 보다는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모델로 인식되는 부족함이 드러난다.

키워드

  • 가격3,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6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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