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참상에 대한 책임을 엘리사에게 전가시키는 심히 악한 격분이었다.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 '굵은 베'는 회개, 슬픔을 표시할 때 입는 거친
옷이다(19:1;창 37:34;삼하 3:31;대상 21:16;에 4:1;욥 16:15;사 15:3;단 9:3;욘 3:8;
마 11:21;계11:3).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공식적인 왕복(王服)속에 이 굵은 베
옷을 걸쳐 입었다는 것은 사마리아 성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회개하는 행동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여 겸손해진 행위라기보다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경문(經文)을 넓게 하여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재난의 원인을 엘리사에게로 돌리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31절). 그리고 혹자가 말한 것처럼 왕은 이런 형식적인 옷차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Bahr). 그러나 진실된 회개의 신앙이 없이 슬
픔과 회개의 표시로만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외식적으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
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딤전 4: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외식을 회개하지 않아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律)에 처해짐 같이(막 7:1-27), 여호람
왕도 결국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외식하는 자 뿐 아니
라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모든 자에게도 해당된다(마5:20).
=====6:31
여기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은 8-23절의 사건과 24절에서 벤하닷이 재 침
입한 서건을 서로 연관시켜서 이해할 때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카일(Keil)이나
기타 다른 신학자들(Bahr,Rawlinson)은 이 두 기사를 서로 연관시키지 않고해석하기
때문에 약간의 억지스런 추측을 했다. 즉 그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항복하지 말고 여호
와를 의지할 것을 묵시적으로 권고했기 때문에 왕이 엘리사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
러나 벤하닷은 엘리사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못해서 사마리아를 다시 공격했고 이스라
엘 왕은 그때 아람 군대를 죽이지않고(22절) 놓아 보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T.R. Hobbs). 그래서 여호람 왕은 엘리사를 저주
한 것이다. 또한 왕이 엘리사에게 저주를 한 직접적인 이유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
렀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일언 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여호와의도움을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8-23절의 사건과 24절의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왕이 엘리사의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은 율법의 어느 곳에
도 그러한 행위를 용납한 곳은 없으나(Pulpit Commentary) 애굽과 바벨론과 앗수르 등
의 이방에서는 흔히 행하던 참형(斬刑)이다.
=====6: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 엘리사의 거처에 대해서는 여러 곳이 언급되었
지만 여기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본래의 집으로 추측된다.
장로들이 - 이들은 성의 관리들(Lange Commentary)이라기 보다는 사마리아 성에 있
는 백성들의 대표자들이다. 한편 그레이(Gray)처럼 여기에 언급된 모임을 정규적인 또
는 습관적인 모임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사마리아 성이 직면
해 있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백성의 대표자들과 상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Hobbs).
사람들 보내었더니 -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신하 중 한 사람
(왕상 10:8;단 1:4,5)을 여호람은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살인한 자의 자식 - 이것은 물론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의 나쁜 의도를 파악했기 때
문에 한 말이다. 그래서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표현이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가리킨
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호람이야말로 혈통적으로나 기질면에서나 광폭한 살인자 아합
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왕상 21:19). 그러나 본문의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말은
족보상의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살인자와 같은 인간',
'포악한 인간'등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삼상 20:30). 비근한 예로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이때 예수께서
그들에 대하여 '마귀' 즉, '살인한 자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다(요 8:44).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호람 왕이 엘
리사를 죽이기 위해 사자를 보낸 성급한 행위를 후회하고 즉시 사자를 뒤따라 왔다고
본다(G.Rawlinson, Keil & Delitzsch, Wycliffe). 그래서 엘리사는 문을 닫게 하고 왕
이 도착할 때까지 사자들을 들이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33절에
기록된 말을 왕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한글 개역 성경도
왕의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학자는 이것을 왕이 뒤따라 온 것이 아니
라 왕이 보낸 사자의 발소리라고 한다(T.R.Hobbs).
=====6:33
왕이 가로되 - 원문에는 '와요메르'(* )로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
명히 나타나 있다. 즉그것은혹자가주장하는 것처럼 왕의사자가말한 것
(T.R.Hobbs)이 아니라 '왕자신'이 와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역 성경 RSV와 NEB
는 말하는 주어를 왕으로 간주해서 번역한 것이다. 한편 KJV는 그 주체를 왕의 사자로
번역해서 그 뜻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어찌 더...기다리리요 - 이 모든 재앙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시인하는 여호람 왕은
이제 여호와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가 왜 이처럼 갑자기 변했는
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왕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바른 길로 돌
아왔던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p.329-330; Wycliffe). 한편 7장 1절부터는
여호와의 재앙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 '굵은 베'는 회개, 슬픔을 표시할 때 입는 거친
옷이다(19:1;창 37:34;삼하 3:31;대상 21:16;에 4:1;욥 16:15;사 15:3;단 9:3;욘 3:8;
마 11:21;계11:3).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공식적인 왕복(王服)속에 이 굵은 베
옷을 걸쳐 입었다는 것은 사마리아 성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회개하는 행동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여 겸손해진 행위라기보다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경문(經文)을 넓게 하여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재난의 원인을 엘리사에게로 돌리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31절). 그리고 혹자가 말한 것처럼 왕은 이런 형식적인 옷차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Bahr). 그러나 진실된 회개의 신앙이 없이 슬
픔과 회개의 표시로만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외식적으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
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딤전 4: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외식을 회개하지 않아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律)에 처해짐 같이(막 7:1-27), 여호람
왕도 결국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외식하는 자 뿐 아니
라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모든 자에게도 해당된다(마5:20).
=====6:31
여기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은 8-23절의 사건과 24절에서 벤하닷이 재 침
입한 서건을 서로 연관시켜서 이해할 때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카일(Keil)이나
기타 다른 신학자들(Bahr,Rawlinson)은 이 두 기사를 서로 연관시키지 않고해석하기
때문에 약간의 억지스런 추측을 했다. 즉 그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항복하지 말고 여호
와를 의지할 것을 묵시적으로 권고했기 때문에 왕이 엘리사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
러나 벤하닷은 엘리사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못해서 사마리아를 다시 공격했고 이스라
엘 왕은 그때 아람 군대를 죽이지않고(22절) 놓아 보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T.R. Hobbs). 그래서 여호람 왕은 엘리사를 저주
한 것이다. 또한 왕이 엘리사에게 저주를 한 직접적인 이유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
렀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일언 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여호와의도움을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8-23절의 사건과 24절의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왕이 엘리사의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은 율법의 어느 곳에
도 그러한 행위를 용납한 곳은 없으나(Pulpit Commentary) 애굽과 바벨론과 앗수르 등
의 이방에서는 흔히 행하던 참형(斬刑)이다.
=====6: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 엘리사의 거처에 대해서는 여러 곳이 언급되었
지만 여기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본래의 집으로 추측된다.
장로들이 - 이들은 성의 관리들(Lange Commentary)이라기 보다는 사마리아 성에 있
는 백성들의 대표자들이다. 한편 그레이(Gray)처럼 여기에 언급된 모임을 정규적인 또
는 습관적인 모임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사마리아 성이 직면
해 있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백성의 대표자들과 상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Hobbs).
사람들 보내었더니 -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신하 중 한 사람
(왕상 10:8;단 1:4,5)을 여호람은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살인한 자의 자식 - 이것은 물론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의 나쁜 의도를 파악했기 때
문에 한 말이다. 그래서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표현이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가리킨
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호람이야말로 혈통적으로나 기질면에서나 광폭한 살인자 아합
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왕상 21:19). 그러나 본문의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말은
족보상의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살인자와 같은 인간',
'포악한 인간'등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삼상 20:30). 비근한 예로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이때 예수께서
그들에 대하여 '마귀' 즉, '살인한 자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다(요 8:44).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호람 왕이 엘
리사를 죽이기 위해 사자를 보낸 성급한 행위를 후회하고 즉시 사자를 뒤따라 왔다고
본다(G.Rawlinson, Keil & Delitzsch, Wycliffe). 그래서 엘리사는 문을 닫게 하고 왕
이 도착할 때까지 사자들을 들이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33절에
기록된 말을 왕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한글 개역 성경도
왕의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학자는 이것을 왕이 뒤따라 온 것이 아니
라 왕이 보낸 사자의 발소리라고 한다(T.R.Hobbs).
=====6:33
왕이 가로되 - 원문에는 '와요메르'(* )로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
명히 나타나 있다. 즉그것은혹자가주장하는 것처럼 왕의사자가말한 것
(T.R.Hobbs)이 아니라 '왕자신'이 와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역 성경 RSV와 NEB
는 말하는 주어를 왕으로 간주해서 번역한 것이다. 한편 KJV는 그 주체를 왕의 사자로
번역해서 그 뜻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어찌 더...기다리리요 - 이 모든 재앙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시인하는 여호람 왕은
이제 여호와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가 왜 이처럼 갑자기 변했는
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왕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바른 길로 돌
아왔던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p.329-330; Wycliffe). 한편 7장 1절부터는
여호와의 재앙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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