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진박사 이슬람 종교인가? 이데올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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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호진박사 이슬람 종교인가? 이데올로기인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세계선교의 상황
2. 기독교 선교의 도전
3. 중앙 아시아의 정치상황

본문내용

전통이나 문화들의 국가들은 그래도 권력 이양이 순조롭거나 혁명을 통하여 바꾸어지지만 이슬람의 중아는 상황이 다른 편이다.
중아 중 카자흐스탄은 비교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이지만 정치는 반쪽 민주주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자르바에프의 통치 역시 민주주의를 가장하지만 자기 중심의 정치권력을 행사함으로 저항을 받고 있다. 나자르바에프는 독립 후 이념적으로 변신한 대표적 정치가이다. 소련 통치 시절에는 정통 공산주의자였고 독립 후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로, 카자흐스탄 독립의 보호자 노릇을 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의 파수꾼인양 처세한다. 1990년에서 1991년 사이에 세계관의 혁명적 변화를 하는 인물이었다(Furman, 2005:198).
1994년 선거 후에 반대세력이 등장, 정치적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반대세력 중에는 구 소련의 정치를 모르는 60년대 출생의 젊은 정치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물론 이상론과 참신성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가 미지수이다. 반대파 세력인 Democratic Choice of Kazakhstan의 미래를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내부적 도전에도 볼구하고 나자르바에프는 러시아 보다 더 강력한 권력체제를 구축하면서도 시작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 경제성장을 향한 힘찬 전진을 한다. 그는 미국과 연계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주변 강대국 러시아, 중국, 인도와 함께 미국 세력의 견제에 동참한다. 이것은 물론 모든 중아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일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자원 개발을 위하여 러시아 보다 과감하게 외국 자본와 기술을 도입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보다 정치는 비극적이다. 정치적 안정을 내 세우는 정치권력은 반대를 철저히 분쇄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세력 역시 우즈베키를 이슬람 국가로 말들려고 시도하면서 정부를 괴롭히고 국제연합의 일본인 4명의 감시단원을 인질로 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들을 무시하고 도리어 아프간 전쟁에서 공군기지를 미국에 제공한다. 이것은 더욱 이슬람을 자극시킨다. 가리모프 대통령 역시 공산당에서 변신, 권력을 독점, 반대파를 숙청하면서 “새로운 집을 ...” 혹은 위대한 미래의 국가“라는 슬로간을 내걸고 점진적 개혁을 외치지만 국민들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자들이 많다. 그리고 새 이데올로기로 ”민족독립이념“을 강조한다(宇山智彦. 2005:206-209).
중아 중 가장 혼란한 나라는 타지키스탄 공화국이다. 이슬람 수니파의 이 나라는 친 러시아 노선의 공화국 정부와 킨 아프간 노선의 반정부 세력간의 전투가 1993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서 1998년 국제연합의 타지키스탄 감시단으로 활동하던 아키노 교수가 살해당할 정도로 혼미하였었다. 1997년 라흐모노프 대통령과 반정부 세력간에 국민화해협정이 케결되고 일단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불안한 평화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끈질기게 반정부군을 선동한다. 타지키스탄의 혼란은 먼저 정치권력이 책임을 져야 한다. 타지키스탄의 정부는 외자도입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경제에 투입된 된 것은 1/10에 불과하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로 막대한 외자가 개인주머니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욱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자극하여 내분의 원인이 된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주로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정부를 괴롭힌다. 여기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은근히 원리주의자들을 지원함으로 양국간의 대립관계를 형성한다.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수년간의 유혈사태로 무려 5만명이 사망하였다. 여기에 국제연합이 개입하는데, 일본의 국제정치학자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다가 원리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한다.
알렉산드리아 대왕이 탔다는 명마의 나라 투르크멘스탄 역시 독재와 부패정치는 예외가 아니다. 니야조프의 독재와 개인숭배는 이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그는 조실부모, 자수성가로 출세한 인물이다. 그 역시 공산당원으로 구 정권에서 신정권을 계승하였다. 전기, 수도 등을 서민들에게 무료 공급하여 인기를 얻었지만 반대파가 과감하게 대처하고 돈에는 자기 얼굴을 넣을 정도로 개인숭배를 조장한다. 번영을 자축하기 위하여 많은 축제일을 만든다. 그의 저서도 코란과 함께 읽히도록 한다(宇山智彦. 2005:214-218). 중아 중에서 민주화가 잘되는 나라로는 키르기즈스탄으로 민주주의의 모범생이라고도 한다. 90년대 전반에는 비키르기즈스탄인이 인구의 40%를 차지하여 아가에프 대통령은 과도한 민족주의를 억제하는데 신경을 쓴다. 이로인하여 아가에프는 비 키르기즈인들로부터도 인기가 높다. 그는 반대파도 과감하게 허용하였으나 90년대 후반 반대파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자 이슬람과격 게릴라들이 그를 괴롭힌다. 그 역시 장기집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인권과 민족공존 정책을 전개한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5개국가들은 이 지역에서 주도권 경쟁을 하는데, 도리어 미국과 협력을 시도한다. 카자흐스탄은 남은 핵무기 해체비용을 미국에 의존하려고 한다.
3) 중아의 이슬람 전파와 수난
중아의 이슬람 전파는 9세기에서 12세기이다. 당시는 물론 실크 로드에 약대가 다니는 시절이다. 중아역시 종교적 중립 지역은 아닌, 샤머니즘, 배화교, 심지어 기독교 등 종교가 있었지만 이슬람이 석권하고 말았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텡그리라는 하늘 신을 섬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중아가 이슬람화 된 것은 먼저 이슬람 자체의 문화적 매력이 크게 작용하였고, 둘째는 각 부족들의 지도차들이 솔선, 이슬람을 수용하여 위에서 밑으로 이슬람이 확산된 것이며 셋째는 이슬람의 공격이다. 특히 8세기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하자 대부분의 부족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된다(최한우, 2003:366).
탈라스 전쟁은 중국과 투르크멘족들의 중아 지배와 영향력에 대하여 불안한 아랍이 중국과 투르크멘 연합군과 전투,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이 전쟁 전에 이슬람은 중아의 서부로 침투하고 있었다. 다음은 실크로드를 이용, 중동의 물픔들이 동으로 수출되면서 이슬람 문명도 자연스럽게 수출되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몽골의 징기스칸 시대때는 도리어 이슬람이 수난을 당하는데, 이유는 바그다드까지 한때 점령하였든 몽골은 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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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7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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