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종류의 인간적 자격이 일반적인 영적 교육과 언어 및 역사에 대한 지식 등과 함께 바람직한 요건이다. 그러므로 제2 헬베틱 신앙고백은 정확한 성격 석의를 보증하는 표지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리는 (물론 기록된 언어의 정신에 따라서 상황에 맞는가 판단하고 그것과 유사하거나 상반되는 듯한 여러 분명한 성구들에 비추어 주해함으로서) 성경 자체에서 끌어낸 진정하고 정통적인 해석이 신앙과 사랑의 법칙과 일치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탁월하게 작용함을 인정한다."(II.2) 볼렙은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는 방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빈번한 기도, 언어에 대한 지식, 자료 조사, 주제와 범위의 고려, 단순한 표현과 비유적 표현의 구별, 원인과 환경, 선행하는 것과 결과하는 것의 논리적 분석, 보다 명백한 것과 보다 모호한 것, 유사한 것들 끼리와 다른 것들 끼리의 비교, 그리고 신앙의 유비."(7)
22.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자격요건은 성령과 교제하는 믿음과 삶이다. 성령은 심지어 성경가운데 모순같이 보이는 것에서도 우리에게 성경 내용의 완전한 조화를 깨닫도록 가르친다. 개혁파 교의학자들은 성경에 모순은 없어도 모순같이 보이는 것이 있음을 시인하고, 그런 구절을 하나 하나 해결하는데 힘쓴다. 벤델린을 참조하라: "나는 모순같이 보이는 것이 있음은 시인하지만 모순은 없다고 확신한다. 나는 하나님의 뜻안에 진정한 의미의 모순이 있음을 부인하며, 모순으로 보이는 것은 시인하지만 그런 것들은 오경에서 발견되는 두가지 예에서 보는대로 서로 조화된다. 창 22.2 (이삭을 바치는 결말), 출 9.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듣지 아니하셨으니), 10.20-27 참조."(Exercit.theol., 1) 하이덱거는 말한다: "소수의 모순같이 보이는 것이나 풀기 어려운 것은 아무 장애도 되지 못한다. 이것들은 그 기반으로서의 성경과 조화의 도구인 올바른 이성에 의하여 조정될 수 있다."(Modull.theol., II.12)
23. 성령은 믿는 마음으로 오로지 그분에 의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든 사람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 신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성경의 진정한 이해를 실제로 주시리라는, 그리고 말씀의 진정한 진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돌보심에 의해 지상에 영원히 유지되리라는 위안을 받는다. 우르신은 말한다: 흔히 발생하는 논란에서,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선포하시는 성령 그분을 판결자로 인정한다."(Loci, 453-4) 교회는 단지 무오한 성령의 판결을 중재하고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묻고, 보이고, 알린다"). 물론 신자는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항상 성경의 증언을 교묘히 얼버무리는 궤변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양심을 거슬려 reclamante conscientia!" 행하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성령의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 다른 판결자를 찾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 한편, 신자는 이렇게 위로받아야 한다. 만일 (1) 믿는 마음으로 성경을 추구하고 신앙의 유비 analogia fidei와 문맥을 고려하면, (2) 그뿐 아니라 그가 교부들의 순수한 저작들에 담겨진 세계교회의 합의 consensus ecclesiae catholica와 비교하면, 그리고 (3) 끊임없이 하나님의 조명을 간구하면, 성경의 올바른 이해가 그에게 분명히 주어질 것이다. "신앙에 대한 분쟁에 있어서, 이것은 경건한 개인들의 양심을 강화하는데 충분하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시대를 막론하고 올바른 성경 이해에 도달한다는 확실성은 오로지 신앙안에 존재하는 위로이다. 그러므로 레이든 신학통론은 이렇게 선언한다: "결론적으로 여기에서 우리의 유일한 충고는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과 말씀으로 그의 진정한 교회에 항상 임재하기 때문에, 교회나 그 활동적인 회원은 최소한 신앙과 윤리에 필수적인 근본 진리들에 있어서 결코 파멸에 이르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 되기를 중단할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약속과 상반된다. 마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V.39) 코케이우스는 말한다: "성경이 그 자체안에 다른 도구나 도움없이도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명료성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으로 성경이 올바로 해석되고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마치 우리가 탈무드와 그 해석자들로부터 유대인의 의미를, 코란으로부터 터키인의 의미를, 그리고 고대인의 무덤으로부터 다른 민족들의 완전히 죽은 견해를 찾도록 강요나 받는 것처럼) 더 이상 성경으로부터 이상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진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선지자들과 그리스도,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 형성된 교회를 세상 끝까지 전파함으로서, 그리고 교회가 진리의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안에 진리를 보존함으로서 (사 59.21,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복음이 세상 끝날까지 전 세계에 전파되도록, 모든 사람이 거룩한 문헌과 함께 길을 가도록, 그리고 성경이 진리를 배우고 확인하는 지름길이 되도록 만드셨다."(Summa Theol., VI.64-5)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점이 주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 성령의 도움 없이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도 없고 거기에 복종할 수도 없음을 가르친다."(리쎈, I.10) 독일 개혁교회 일반 신앙고백도 유사하게 고백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조명해 주지 않는 한,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믿는다."(헤페, Bekenntnisschriften, 265 참조)
22.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자격요건은 성령과 교제하는 믿음과 삶이다. 성령은 심지어 성경가운데 모순같이 보이는 것에서도 우리에게 성경 내용의 완전한 조화를 깨닫도록 가르친다. 개혁파 교의학자들은 성경에 모순은 없어도 모순같이 보이는 것이 있음을 시인하고, 그런 구절을 하나 하나 해결하는데 힘쓴다. 벤델린을 참조하라: "나는 모순같이 보이는 것이 있음은 시인하지만 모순은 없다고 확신한다. 나는 하나님의 뜻안에 진정한 의미의 모순이 있음을 부인하며, 모순으로 보이는 것은 시인하지만 그런 것들은 오경에서 발견되는 두가지 예에서 보는대로 서로 조화된다. 창 22.2 (이삭을 바치는 결말), 출 9.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듣지 아니하셨으니), 10.20-27 참조."(Exercit.theol., 1) 하이덱거는 말한다: "소수의 모순같이 보이는 것이나 풀기 어려운 것은 아무 장애도 되지 못한다. 이것들은 그 기반으로서의 성경과 조화의 도구인 올바른 이성에 의하여 조정될 수 있다."(Modull.theol., II.12)
23. 성령은 믿는 마음으로 오로지 그분에 의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든 사람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 신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성경의 진정한 이해를 실제로 주시리라는, 그리고 말씀의 진정한 진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돌보심에 의해 지상에 영원히 유지되리라는 위안을 받는다. 우르신은 말한다: 흔히 발생하는 논란에서,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선포하시는 성령 그분을 판결자로 인정한다."(Loci, 453-4) 교회는 단지 무오한 성령의 판결을 중재하고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묻고, 보이고, 알린다"). 물론 신자는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항상 성경의 증언을 교묘히 얼버무리는 궤변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양심을 거슬려 reclamante conscientia!" 행하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성령의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 다른 판결자를 찾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 한편, 신자는 이렇게 위로받아야 한다. 만일 (1) 믿는 마음으로 성경을 추구하고 신앙의 유비 analogia fidei와 문맥을 고려하면, (2) 그뿐 아니라 그가 교부들의 순수한 저작들에 담겨진 세계교회의 합의 consensus ecclesiae catholica와 비교하면, 그리고 (3) 끊임없이 하나님의 조명을 간구하면, 성경의 올바른 이해가 그에게 분명히 주어질 것이다. "신앙에 대한 분쟁에 있어서, 이것은 경건한 개인들의 양심을 강화하는데 충분하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시대를 막론하고 올바른 성경 이해에 도달한다는 확실성은 오로지 신앙안에 존재하는 위로이다. 그러므로 레이든 신학통론은 이렇게 선언한다: "결론적으로 여기에서 우리의 유일한 충고는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과 말씀으로 그의 진정한 교회에 항상 임재하기 때문에, 교회나 그 활동적인 회원은 최소한 신앙과 윤리에 필수적인 근본 진리들에 있어서 결코 파멸에 이르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 되기를 중단할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약속과 상반된다. 마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V.39) 코케이우스는 말한다: "성경이 그 자체안에 다른 도구나 도움없이도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명료성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으로 성경이 올바로 해석되고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마치 우리가 탈무드와 그 해석자들로부터 유대인의 의미를, 코란으로부터 터키인의 의미를, 그리고 고대인의 무덤으로부터 다른 민족들의 완전히 죽은 견해를 찾도록 강요나 받는 것처럼) 더 이상 성경으로부터 이상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진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선지자들과 그리스도,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 형성된 교회를 세상 끝까지 전파함으로서, 그리고 교회가 진리의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안에 진리를 보존함으로서 (사 59.21,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복음이 세상 끝날까지 전 세계에 전파되도록, 모든 사람이 거룩한 문헌과 함께 길을 가도록, 그리고 성경이 진리를 배우고 확인하는 지름길이 되도록 만드셨다."(Summa Theol., VI.64-5)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점이 주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 성령의 도움 없이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도 없고 거기에 복종할 수도 없음을 가르친다."(리쎈, I.10) 독일 개혁교회 일반 신앙고백도 유사하게 고백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조명해 주지 않는 한,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믿는다."(헤페, Bekenntnisschriften, 26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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