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전쟁개요
II. 중공 참전배경
가. 모택동과 장개석의 대결
나. 국공내전이후 상황
III. 김일성, 스탈린 그리고 모택동의 협약
IV. 중공군의 개입
가. 1.4후퇴
나. 휴전
V. 맺음말
II. 중공 참전배경
가. 모택동과 장개석의 대결
나. 국공내전이후 상황
III. 김일성, 스탈린 그리고 모택동의 협약
IV. 중공군의 개입
가. 1.4후퇴
나. 휴전
V. 맺음말
본문내용
면서 모택동은 이제 이런 의문들이 풀렸기 때문에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며 1차로 9개 사단을 보내고 아울러 2차파병을 신속히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10월 16일 선발대가 투입되고 남한군과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한 19일에 본대가 압록강을 도하하였다. 중공군의 상당수는 내전에서 다져진 베테랑 병사들로, 중국공산당의 의용군은 인민의 지원과 게릴라전을 교리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군대였다.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주로 야간 이동을 하고, 요란한 악기 소리를 동원해 어둠을 틈 타 기습하는 등 지형지물을 정교하게 이용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던 UN군은 후퇴를 거듭해 중공군은 마침내 51년 1월 4일 다시 서울을 점령했다.
나. 휴전
1951년 6월 23일 소련 Malik 외상이 휴전회담의 의사를 표명했다. 릿지웨이장군이 원산항에 있는 네덜란드 병원선으로 회담장소를 제의하기는 했으나 회담은 개성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엇갈리는 양측의 포로송환문제 때문에 약 2년이 소요되었다. 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휴전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엇갈리는 의견 속에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V. 맺음말
오랜 전쟁의 끝에 모택동의 공산당이 승리한 중공은 정부를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에 대한 저항세력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이는 한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약화되었고 국공내전에서의 얻은 국민당군의 포로를 전쟁에 투입시켜 국내의 잠재적 반란모의를 해소하는 등 전인민의 동원 체제를 확립하면서 자신의 통치권기반을 쉽게 넓힐 수 있었다. 국내의 불만요소를 전쟁을 통해 밖으로 배출하여 힘을 하나로 모았고 전쟁으로 인해 확립된 강력한 통치권으로 반대파를 대거 숙청하였다. 전쟁말 북중소 삼각동맹과 UN군 두 진영 모두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두려워해 확전을 바라진 않았다. 휴전까진 얻어냈으나 양진영에 있어 비교적 좋은 성과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일단의 대처로 휴전을 하긴 했지만 불안정한 동북아의 질서는 아직도 확립되지 않았다. 어쨌든 조만간에 남북통일에 대한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참고문헌
고든 쿠굴루.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길산. 2005/06/11
위키피디아. 「국공내전」.
김학준. 「한국전쟁」. 박영사. 2003/06/30
이기동. 「남침야욕 노골화(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 서울신문.
6.25전쟁사 교재
나. 휴전
1951년 6월 23일 소련 Malik 외상이 휴전회담의 의사를 표명했다. 릿지웨이장군이 원산항에 있는 네덜란드 병원선으로 회담장소를 제의하기는 했으나 회담은 개성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엇갈리는 양측의 포로송환문제 때문에 약 2년이 소요되었다. 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휴전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엇갈리는 의견 속에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V. 맺음말
오랜 전쟁의 끝에 모택동의 공산당이 승리한 중공은 정부를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에 대한 저항세력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이는 한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약화되었고 국공내전에서의 얻은 국민당군의 포로를 전쟁에 투입시켜 국내의 잠재적 반란모의를 해소하는 등 전인민의 동원 체제를 확립하면서 자신의 통치권기반을 쉽게 넓힐 수 있었다. 국내의 불만요소를 전쟁을 통해 밖으로 배출하여 힘을 하나로 모았고 전쟁으로 인해 확립된 강력한 통치권으로 반대파를 대거 숙청하였다. 전쟁말 북중소 삼각동맹과 UN군 두 진영 모두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두려워해 확전을 바라진 않았다. 휴전까진 얻어냈으나 양진영에 있어 비교적 좋은 성과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일단의 대처로 휴전을 하긴 했지만 불안정한 동북아의 질서는 아직도 확립되지 않았다. 어쨌든 조만간에 남북통일에 대한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참고문헌
고든 쿠굴루.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길산. 2005/06/11
위키피디아. 「국공내전」.
김학준. 「한국전쟁」. 박영사. 2003/06/30
이기동. 「남침야욕 노골화(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 서울신문.
6.25전쟁사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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