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키예프 러시아와 몽고의 지배
<키예프 러시아의 태동과 발전>
1. 키예프 루시의 성립 : 노르만 학설과 반(反)노르만 학설
가. 노르만 학설
나. 반(反)노르만 학설
2. 키예프 루시의 성장과 발전
가. 올레그와 이고리의 통치
나. 올가
다. 스뱌토슬라프
라. 블라디미르
마. 야로슬라프
3. 키예프 루시의 쇠락
<몽고-따따르의 지배>
1. 침입 당시의 러시아
2. 몽고 따따르의 지배
3. 몽고 따따르의 지배가 러시아에 미친 영향
<새로운 정치체의 성립>
** 모스크바 대공국 **
* 참고문헌 *
<키예프 러시아의 태동과 발전>
1. 키예프 루시의 성립 : 노르만 학설과 반(反)노르만 학설
가. 노르만 학설
나. 반(反)노르만 학설
2. 키예프 루시의 성장과 발전
가. 올레그와 이고리의 통치
나. 올가
다. 스뱌토슬라프
라. 블라디미르
마. 야로슬라프
3. 키예프 루시의 쇠락
<몽고-따따르의 지배>
1. 침입 당시의 러시아
2. 몽고 따따르의 지배
3. 몽고 따따르의 지배가 러시아에 미친 영향
<새로운 정치체의 성립>
** 모스크바 대공국 **
* 참고문헌 *
본문내용
의 실시, 그리고 그것을 통한 우편제의 실시 등을 러시아에서도 되풀이한 것 등이 러시아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한 부분이다. 또한 몽고의 군사제도, 특히 기마병 제도가 러시아에 수용되었다. 몽고 따따르의 지배가 남긴 절대주의와 군국주의의 전통이 제정러시아로 계승되었다.
** 모스크바 대공국 **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손자였던 이반 다닐로비치 모스크바 공후는 영리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공후였다. 그의 치세 중에 숲 속에 파묻혀 있던 작은 도시 모스크바와 7개의 더 작은 도시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4세기 중엽쯤에 이반 칼리타의 작은 도시였던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 땅들 가운데서 가장 크고 강한 공국이 될 정도로 성장했으며, 그리하여 모스크바는 부유하고 잘 방비된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킵차크 칸의 지배를 자신과 자신의 공국의 성장에 교묘히 이용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반 칼리타 시기에 킵차크한국의 통치자는 모스크바 공국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아니, 파견할 필요가 없도록 모스크바 공후가 알아서 잘 했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이반 칼리타는 조공을 정시에 바쳤을 뿐 아니라, 풍부한 선물도 바치곤 했다. 이 덕택에 꾀와 지혜가 많은 칼리타는 킵차크한국의 완전한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는 킵차크한국의 조공 징수원들이 추가로 많은 조공을 걷어 착복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루시 땅에서 조공을 징수하는 일을 루시인 지방 공후들에게 위임하도록 킵차크한국의 통치자를 설득하고 확신시켰다. 즉 킵차크한국의 조공 징수원에게는 그로 인한 수입이 생겼으며, 킵차크 칸에게는 그만큼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킵차크한국의 군주는 이반 칼리타의 이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사실 조공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더 거둬들이기 위해 대군을 파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병력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준비를 하기 위한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킵차크한국의 칸은 루시인으로 하여금 조공을 징수하여 킵차크한국에 운반해 오도록 하라는 이반 칼리타 모스크바 공후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그의 충성심을 신뢰한 칸은 이 역할에 모스크바 공후가 누구보다도 훨씬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이반 칼리타를 조공 징수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반 칼리타는 칸 국의 군대를 이끌고 불복종하는 루시 공후들을 대항하러 나설 때마다 이 충성심을 여러 번 증명했다. 그런 연유로 다른 공후들의 최상급자인 대공이 되었던 것이다.
이반 칼리타는 인정이나 동정을 보여주지 않고 잔인할 정도로 가차 없이 조공을 징수하였다. 그가 암시한 바와 같이 킵차크한국의 칸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난 조공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익이 많아졌다. 그러나 모스크바 공후 이반 칼리타는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몰래 자신의 것으로 남겨놓은 다음, 자신의 영토를 더욱 더 확장해가면서 이 돈으로 마을을 구입했으며, 심지어 공국을 구입하기도 했다. 따라서 해가 갈수록 모스크바 공국은 부유해졌으며, 이반 칼리타 대공은 더욱 강해지고 커다란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공국을 강화시키면서 다른 러시아 땅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이반 칼리타의 길을 방해하기 위해 일어나 그의 개인적 권력과 이익을 위협하기라도 할 경우에는 그는 마치 이웃 공후가 킵차크한국의 칸에 대항해 못된 짓을 꾸미기라도 한 것처럼 사건을 꾸며 버렸다. 그러면 곧 킵차크한국이 개입했으며, 불행한 그 이웃 공후의 땅은 이반 칼리타의 관리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약 100개의 마을과 도시를 자신의 아들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이반의 치세 때(1325-1340), 그동안 무서운 학살과 파괴, 약탈 등이 자행되어 왔던 킵차크한국의 침략이 중단되었다. 이 단기간의 중단 덕택에 루시는 외국 점령자들에게 결정적인 반격을 가하기 위한 힘을 축적할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반 칼리타는 자신의 공국을 확대하고 강화시키면서 모스크바 주위의 루시 땅을 통일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도 그의 이 통일 사업을 계승하였다.
* 참고문헌 *
문화로 본 러시아 (김형주, 두리, 1998)
러시아 문화의 이해 (허승철, 이항재, 이득재 공저, 대한교과서, 2004)
러시아학 입문 (강윤희, 이문영, 최아영, 황동하, 인간사랑)
러시아사 (김학준,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5)
이야기 러시아사 (김경묵 엮음, 청아출판사, 1990)
러시아 정치사상사 (박윤형, 문예림)
** 모스크바 대공국 **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손자였던 이반 다닐로비치 모스크바 공후는 영리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공후였다. 그의 치세 중에 숲 속에 파묻혀 있던 작은 도시 모스크바와 7개의 더 작은 도시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4세기 중엽쯤에 이반 칼리타의 작은 도시였던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 땅들 가운데서 가장 크고 강한 공국이 될 정도로 성장했으며, 그리하여 모스크바는 부유하고 잘 방비된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킵차크 칸의 지배를 자신과 자신의 공국의 성장에 교묘히 이용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반 칼리타 시기에 킵차크한국의 통치자는 모스크바 공국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아니, 파견할 필요가 없도록 모스크바 공후가 알아서 잘 했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이반 칼리타는 조공을 정시에 바쳤을 뿐 아니라, 풍부한 선물도 바치곤 했다. 이 덕택에 꾀와 지혜가 많은 칼리타는 킵차크한국의 완전한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는 킵차크한국의 조공 징수원들이 추가로 많은 조공을 걷어 착복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루시 땅에서 조공을 징수하는 일을 루시인 지방 공후들에게 위임하도록 킵차크한국의 통치자를 설득하고 확신시켰다. 즉 킵차크한국의 조공 징수원에게는 그로 인한 수입이 생겼으며, 킵차크 칸에게는 그만큼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킵차크한국의 군주는 이반 칼리타의 이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사실 조공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더 거둬들이기 위해 대군을 파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병력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준비를 하기 위한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킵차크한국의 칸은 루시인으로 하여금 조공을 징수하여 킵차크한국에 운반해 오도록 하라는 이반 칼리타 모스크바 공후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그의 충성심을 신뢰한 칸은 이 역할에 모스크바 공후가 누구보다도 훨씬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이반 칼리타를 조공 징수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반 칼리타는 칸 국의 군대를 이끌고 불복종하는 루시 공후들을 대항하러 나설 때마다 이 충성심을 여러 번 증명했다. 그런 연유로 다른 공후들의 최상급자인 대공이 되었던 것이다.
이반 칼리타는 인정이나 동정을 보여주지 않고 잔인할 정도로 가차 없이 조공을 징수하였다. 그가 암시한 바와 같이 킵차크한국의 칸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난 조공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익이 많아졌다. 그러나 모스크바 공후 이반 칼리타는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몰래 자신의 것으로 남겨놓은 다음, 자신의 영토를 더욱 더 확장해가면서 이 돈으로 마을을 구입했으며, 심지어 공국을 구입하기도 했다. 따라서 해가 갈수록 모스크바 공국은 부유해졌으며, 이반 칼리타 대공은 더욱 강해지고 커다란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공국을 강화시키면서 다른 러시아 땅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이반 칼리타의 길을 방해하기 위해 일어나 그의 개인적 권력과 이익을 위협하기라도 할 경우에는 그는 마치 이웃 공후가 킵차크한국의 칸에 대항해 못된 짓을 꾸미기라도 한 것처럼 사건을 꾸며 버렸다. 그러면 곧 킵차크한국이 개입했으며, 불행한 그 이웃 공후의 땅은 이반 칼리타의 관리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약 100개의 마을과 도시를 자신의 아들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이반의 치세 때(1325-1340), 그동안 무서운 학살과 파괴, 약탈 등이 자행되어 왔던 킵차크한국의 침략이 중단되었다. 이 단기간의 중단 덕택에 루시는 외국 점령자들에게 결정적인 반격을 가하기 위한 힘을 축적할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반 칼리타는 자신의 공국을 확대하고 강화시키면서 모스크바 주위의 루시 땅을 통일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도 그의 이 통일 사업을 계승하였다.
* 참고문헌 *
문화로 본 러시아 (김형주, 두리, 1998)
러시아 문화의 이해 (허승철, 이항재, 이득재 공저, 대한교과서, 2004)
러시아학 입문 (강윤희, 이문영, 최아영, 황동하, 인간사랑)
러시아사 (김학준,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5)
이야기 러시아사 (김경묵 엮음, 청아출판사, 1990)
러시아 정치사상사 (박윤형, 문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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