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1. 에피쿠로스 학파
(1)시대적 상황
(2)인식론적 측면에서의 인생론
(3)존재론적 측면에서의 실천과 행복
2. 쇼펜하우어
(1)시대적 상황
(2)인식론적 인생론과 존재론적 실천
(2)쇼펜하우어의 행복론
3.결론
<참고 문헌>
본론
1. 에피쿠로스 학파
(1)시대적 상황
(2)인식론적 측면에서의 인생론
(3)존재론적 측면에서의 실천과 행복
2. 쇼펜하우어
(1)시대적 상황
(2)인식론적 인생론과 존재론적 실천
(2)쇼펜하우어의 행복론
3.결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복에 있어 두 가지 적은 고통과 권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감수성과 관련이 깊다. 감수성의 정도와 권태는 반비례한다. 정신력이 둔한 사람은 감수성의 결여로 모든 종류의 고뇌와 우울을 덜 느낀다. 정신력이 풍부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는 권태에서 벗어날 정열이라는 격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를 괴롭히는 고통이 없는 편안하며 한가한 생활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학문으로 가는 길>에서 쇼펜하우어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지은 인간의 세 가지 행복을 변용하고 있다. 첫째, 참된 자아, 즉 넓은 의미의 인격으로 그 사람의 건강, 외모, 기질, 도덕성, 지성, 교양 등을 포함한다. 둘째, 물질적 자아, 인간이 지닌 재산이다. 셋째, 사회적 자아, 지위나 명성 따위이다. 이 중에서 가장 행복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자아인 인격과 개성으로, 이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작용하는 것이며 두 번째 요소처럼 운명에 굴복되거나 하지 않으며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세 번째 요소와 비교했을 때에도 단연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쇼펜하우어 지음, 조 인 옮김, <학문으로 가는 길>, 열린지성사, 1995년 P.90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인생의 온작 존재양식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거기에서 기인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내적인 요소인 감각, 의욕, 사고의 작용으로 나타난 결과이며, 외적인 요소는 간접적으로밖에는 작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개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반쯤은 동물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신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아무리 애쓴다 해도 평범한 인간의 행복과 쾌락의 한계를 넘어서게 할 수는 없다.
3.결론
에피쿠로스 철학과 윤리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연학에서는 유물론을 표방하고 있고, 윤리학에서는 신체적인 면에 기초한 강한 현실성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인 내면의 행복, 영혼을 돌봄, 그리고 절제되고 검소한 삶의 양식 등이 윤리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명 ‘의지 철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철학에 있어서 의지를 중요시 했던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으로 보았으며, 이에 벗어나기 위해서 주관적인 자아(개인)를 중시하며 검소를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이 두 철학자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사유를 비교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서로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서로 전혀 상반되는 현실 인식 속에서 철학적 구상과 스스로의 논리를 펼쳐나가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쇼펜하우어는 놀랍게도 존재론적 실천의 영역인 도덕과 행복론에 있어서는 많은 일치를 보이고 있다. 에피쿠로스의 경우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진리 파악보다 인간의 존재론적 실천(도덕)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그에게서는 현실 비판이라든가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설명을 듣기는 어렵다. 반면 그는 개인을 중심으로 철저히 그의 사상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인간의 삶과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것으로 ‘의지’라는 것을 설정한 쇼펜하우어 역시 이러한 논리적 전개에 따라 도출된 ‘인생은 고통’이라는 명제 속에서 주관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개인, 즉 자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전개시켜 나간다. 에피쿠로스의 개인과 쇼펜하우어의 개인은 그 의미 설정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성 능력에 대한 신뢰, 개인적인 검소를 행복의 궁극적 실천방안으로 본 점 등에서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삶에 대한 근본은 에피쿠로스학파 시절이나 쇼펜하우어 시대나 지금 우리의 시대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철학에서도 바로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듯이 철학사에서 이에 대한 인식론적 구상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어떠한 ‘절대적’인 철학적 설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종교처럼 도그마화 되는 것은 철학 본연의 의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존재론적 기반을 더듬을 때 이러한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 임의적으로 구성된 인식론적 기반이 현실과 존재론을 선행하거나 압도해 버리는 현상을 지양해야 한다.
모든 철학적 논리적 담론은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치밀한 ‘상상력의 구성’이다. 인간은 어떠한 것이 세계라는 ‘진리’는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이 단순한 상상력에서 끝나지 않고 그 빛나는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성 있고 바람직하게 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있다. 에피쿠로스나 쇼펜하우어도 그들 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인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법’에 대한 고찰이었다. 당시 전반적인 사회 인식에 순응하여 무조건 쾌락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원자론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긍정적인 수긍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쾌락을 다룰 것을 주장한 에피쿠로스학파와 관념으로 치닫는 현실의 이성만능, 중심주의를 경계하며 의지와 표상의 세계라는 비판적 설정을 한 쇼펜하우어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세계관의 의의는 이러한 철학적 구상이 도그마화 되는 것을 막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고민해 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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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에드워드 젤러 지음, 이창대 옮김, <희랍 철학사>, 이론과 실천 ,1991년
*앤소니 롱 지음, 이경직 옮김, <헬레니즘 철학>, 서광사, 2000년
*프리도 릭켄, 김성진 옮김, <고대 그리스 철학>, 서광사, 2000년
*한석환 지음, <에피쿠로스와 진리의 기준>,서양고전학 연구 17권, 시작쪽수 71p
*쇼펜하우어 지음, 조 인 옮김, <학문으로 가는 길>, 열린지성사, 1995년
*발터 아벤트로트 지음, 이안희 옮김,<쇼펜하우어>, 한길사, 1998년
*이서규 지음, <쇼펜하우어의 철학>, 이문출판사, 2004년
*류명걸 지음, <쇼펜하우어와 니체>, 용성출판사, 2004년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인생의 온작 존재양식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거기에서 기인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내적인 요소인 감각, 의욕, 사고의 작용으로 나타난 결과이며, 외적인 요소는 간접적으로밖에는 작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개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반쯤은 동물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신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아무리 애쓴다 해도 평범한 인간의 행복과 쾌락의 한계를 넘어서게 할 수는 없다.
3.결론
에피쿠로스 철학과 윤리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연학에서는 유물론을 표방하고 있고, 윤리학에서는 신체적인 면에 기초한 강한 현실성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인 내면의 행복, 영혼을 돌봄, 그리고 절제되고 검소한 삶의 양식 등이 윤리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명 ‘의지 철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철학에 있어서 의지를 중요시 했던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으로 보았으며, 이에 벗어나기 위해서 주관적인 자아(개인)를 중시하며 검소를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이 두 철학자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사유를 비교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서로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서로 전혀 상반되는 현실 인식 속에서 철학적 구상과 스스로의 논리를 펼쳐나가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쇼펜하우어는 놀랍게도 존재론적 실천의 영역인 도덕과 행복론에 있어서는 많은 일치를 보이고 있다. 에피쿠로스의 경우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진리 파악보다 인간의 존재론적 실천(도덕)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그에게서는 현실 비판이라든가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설명을 듣기는 어렵다. 반면 그는 개인을 중심으로 철저히 그의 사상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인간의 삶과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것으로 ‘의지’라는 것을 설정한 쇼펜하우어 역시 이러한 논리적 전개에 따라 도출된 ‘인생은 고통’이라는 명제 속에서 주관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개인, 즉 자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전개시켜 나간다. 에피쿠로스의 개인과 쇼펜하우어의 개인은 그 의미 설정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성 능력에 대한 신뢰, 개인적인 검소를 행복의 궁극적 실천방안으로 본 점 등에서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삶에 대한 근본은 에피쿠로스학파 시절이나 쇼펜하우어 시대나 지금 우리의 시대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철학에서도 바로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듯이 철학사에서 이에 대한 인식론적 구상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어떠한 ‘절대적’인 철학적 설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종교처럼 도그마화 되는 것은 철학 본연의 의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존재론적 기반을 더듬을 때 이러한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 임의적으로 구성된 인식론적 기반이 현실과 존재론을 선행하거나 압도해 버리는 현상을 지양해야 한다.
모든 철학적 논리적 담론은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치밀한 ‘상상력의 구성’이다. 인간은 어떠한 것이 세계라는 ‘진리’는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이 단순한 상상력에서 끝나지 않고 그 빛나는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성 있고 바람직하게 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있다. 에피쿠로스나 쇼펜하우어도 그들 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인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법’에 대한 고찰이었다. 당시 전반적인 사회 인식에 순응하여 무조건 쾌락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원자론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긍정적인 수긍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쾌락을 다룰 것을 주장한 에피쿠로스학파와 관념으로 치닫는 현실의 이성만능, 중심주의를 경계하며 의지와 표상의 세계라는 비판적 설정을 한 쇼펜하우어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세계관의 의의는 이러한 철학적 구상이 도그마화 되는 것을 막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고민해 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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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에드워드 젤러 지음, 이창대 옮김, <희랍 철학사>, 이론과 실천 ,1991년
*앤소니 롱 지음, 이경직 옮김, <헬레니즘 철학>, 서광사, 2000년
*프리도 릭켄, 김성진 옮김, <고대 그리스 철학>, 서광사, 2000년
*한석환 지음, <에피쿠로스와 진리의 기준>,서양고전학 연구 17권, 시작쪽수 71p
*쇼펜하우어 지음, 조 인 옮김, <학문으로 가는 길>, 열린지성사, 1995년
*발터 아벤트로트 지음, 이안희 옮김,<쇼펜하우어>, 한길사, 1998년
*이서규 지음, <쇼펜하우어의 철학>, 이문출판사, 2004년
*류명걸 지음, <쇼펜하우어와 니체>, 용성출판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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