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세기 통치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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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6~18세기 통치자의 초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보다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절대 권력자의 위엄만을 과시한다. 위의 논문, 157쪽
조르조 바사리, <코시모 1세의 신격화>, 1555~1565
왼쪽: 프랑스와 제라르, <대관식 복장의 나폴레옹>,1806
오른쪽: 도미니크 앵그르, <옥좌 위의 나폴레옹>, 1806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옥좌 위의 나폴레옹>(1806)은 이보다 더욱 신격화된 이미지를 표현한다. 바닥의 양탄자에 새겨진 독수리와 쿠션의 번갯불 장식이 제우스를 상징하는 것을 알아차리기 이전에 옥좌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나폴레옹의 표정과 자세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딱딱하고 도식적이어서 그 어떤 인간적인 것도 초월하는 제우스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통치자와 미술
서양의 미술이 기독교의 영역에서 해방되는 정도에 따라서 정치 권력자들의 도구로 적극 이용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 미술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도 정치 권력자들은 자신을 신의 아들이자 제자로 여기게 만드는 예술 작품들을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6~18세기 유럽의 미술이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것이 새로운 이유는 통치자의 이익에 봉사한 것 자체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진 방식과 그에 따른 초상 미술의 발전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이 보고서에서 살펴본 코시모 1세와 나폴레옹은 르네상스 시기와 계몽주의의 시기라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각자의 통치 권력을 정당화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초상화를 이용하였다. 문화예술을 후원함으로써 가문의 정치적 입지를 키웠던 메디치가의 후계자로서 코시모 1세는 자신의 후계자적 정통성과 군주로서의 정당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초상미술 작품을 후원하였고, 나폴레옹은 계몽주의의 사실적인 초상화의 경향 속에서 자신의 업적과 지도자적 면모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들 통치자들의 주문에 따라 그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미술가들은 얼굴표정과 제스추어, 그림 속의 사물이나 글귀, 배색 등의 다양한 상징과 도상을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서 주문자의 요구와 예술적 성취를 동시에 이루고자 노력하면서 예술적으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두 권력자는 모두 권력의 최정점에서 신격화된 초상화를 원했는데, 이는 모든 권력자들이 궁극적으로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술적으로는 그만큼 '신'이라는 절대적이고 최상인 존재가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경지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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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28
  • 저작시기201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49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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