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의 노래를 통해 본 중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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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롤랑의 노래를 통해 본 중세사회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게 되는데, <롤랑의 노래>에서는 이를 사라센인의 군대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서에서는 이것을 바스크족의 군대였다고 쓰여 있다. 상식적으로 후자의 설명이 맞는 것이고 그것이 좀 더 사실임은 이론이 없다고 본다.
12세기와 13세기 중에 유사한 주제들을 바탕으로 써진 수없이 많은 시들 속에서도 마찬가지의 대조현상이 나타난다. 이 시들 속에는 지어낸 이야기가 많은데 이 장르의 작품들 수가 늘어나면서 시의 주제를 참신하게 하기 위해서는 허구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따라서 이러한 지어낸 이야기는 점점 더 판을 치게 되었다. 당시 이러한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음유시인들은 직업 시인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편작에는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삽화 격으로 슬쩍 끼여든 인물이나 오래 전부터 그 존재가 잊혀졌다고 믿어도 좋은 성채 따위를 묘사한 부분이 예상도 못했을 만큼 정확한 기억을 담아 전해준다든가 하는 것을 거의 언제나 감지할 수 있다.
무훈시는 원칙적으로 눈으로 강독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낭독하기 위해서 또는 읊기 위해 만들어 졌는데, 이것은 성(城)에서 성으로, 공공의 장소에서 공공의 장소로 음유시인들에 의해 퍼뜨려졌다. 음유시인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들끼리 경쟁을 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편작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최초의 창작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들의 능력으로 이러한 노래를 전부 엮어낸다는 것은 당시 그들의 교육수준으로는 불가능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재미나게 엮어내는 능력은 있었다. 당시에 역사적 사료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은 사제나 성직자 계층이었다. 매일같이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지겨워진 성직자들은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한마디라도 더 해서 알려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점이 당시의 무훈시 등이 역사적 사실을 담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객관적인 전달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의도적이지 않게 왜곡을 할 경우에는 음유시인들은 사리분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직자 계층은 당시의 지식층이라고는 하나, 그들은 역사가도 아닐뿐더러 대다수의 성직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수도원 같은 곳은 수많은 여행자들이 다녀가고 수많은 기념물들에 옛날의 이야기가 서려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전설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음유시인들은 이러한 전설적 요소를 또다시 자신들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7. 마치며
<롤랑의 노래>를 통해 본 중세 사회는 기사도 정신의 번영이 아닌 쇠퇴하는 시기로 당시 기사들의 내적 도덕기준과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변화하는 통치체제와 맞물려 새로운 시대상이 요구되던 시대였다. 따라서 서사시, 서정시 등과 함께 개인적 욕구의 표출이 대두되던 시기로 분석 할 수 있다. 또한 무훈시 분석을 통해서 당시의 민중적 기록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 봄으로써 사학과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문학사적 측면에 한걸음 가까워 진 것 같은 의미있는 레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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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3.05.29
  • 저작시기201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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