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책
문제는 야나기를 평화주의자로 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연구들이 무언가 야나기에 대한 균형잡힌 충분한 연구를 거치지 않고 나온 것이 아닌가라는 데에 있다.
필자는 야나기 연구에 있어서 무언가 감추고 싶어하는 일종의 ‘상처’가 바로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나기에 있어서 ‘내셔널리즘’과의 관련성은 당연히 그의 초기의 행보와 관련이 깊은 것인데 이인범의, ‘정작 우리의 주목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야나기의 초기 입장이 아니’ 이인범, 앞의 글 p.87
라는 주장은 다분히 그의 내셔널리즘과의 관련성을 삭제하려는 의지로 읽히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카미 마리의 경우에도 야나기의 전전의 초기행보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연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야나기를 평화주의자로 규정하는데에는 그의 전전의 행보와 그 이후의 입장간의 고리가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느낌이다. 또한 야나기와 내셔널리즘간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분명한 태도를 취한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최원식의 의문 가라타니 고진, ‘미와 지배’
은 필자에게는 그 자체가 의문거리로 들린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야나기 무네요시의 예술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해 보자’ 물론 이 말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난 몇 십년 동안 야나기는 ‘충분히’ 읽혀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야나기는 읽히기만 하고 이제는 잊혀진 그런 사람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 야나기는 충분히 읽혔고 또 충분히 연구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야나기의 예술 자체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에게 그런 주장은 다음과 같이 들린다. ‘야나기와 내셔널리즘과의 관계는 이제 말하지 말자’. 그렇다. 사실 현재의 야나기 연구가 공회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계속된 이 회피, 혹은 기억의 삭제와 관련된 것이다.
야나기와 관련해서 필자에게 여러모로 복잡한 상념을 불러 일으킨 장면은 ‘광화문’ 앞 동아일보 사옥에서 열린 나카미 마리의 강연이다.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 강연회(2006.11.10. 동아일보사)
전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야나기의 민예품이라는 선전과 함께 야나기의 민예품 전시회에 앞서 열린 강연회에 초대된 나카미 마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당일 배포된 강연 원고에는 없는 발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그토록 살릴려고 했던 광화문과 야나기와도 인연이 깊은 광화문 바로 앞에 자리잡은 동아일보사옥에서 이런 강연을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물론 이 말은 강연에 초대받은 사람이 의례적으로 건네는 인사말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그의 발언에 다소 복잡한 심기가 일었던 것은 단지 민족주의적인 감상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야나기=광화문이라는 기이한 등식과 그 등식이 가져다 주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 필자는 바로 그것이 두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야나기는 싫든 좋든 ‘여전히’ 민족=국가라는 무의식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문제는 야나기를 평화주의자로 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연구들이 무언가 야나기에 대한 균형잡힌 충분한 연구를 거치지 않고 나온 것이 아닌가라는 데에 있다.
필자는 야나기 연구에 있어서 무언가 감추고 싶어하는 일종의 ‘상처’가 바로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나기에 있어서 ‘내셔널리즘’과의 관련성은 당연히 그의 초기의 행보와 관련이 깊은 것인데 이인범의, ‘정작 우리의 주목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야나기의 초기 입장이 아니’ 이인범, 앞의 글 p.87
라는 주장은 다분히 그의 내셔널리즘과의 관련성을 삭제하려는 의지로 읽히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카미 마리의 경우에도 야나기의 전전의 초기행보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연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야나기를 평화주의자로 규정하는데에는 그의 전전의 행보와 그 이후의 입장간의 고리가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느낌이다. 또한 야나기와 내셔널리즘간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분명한 태도를 취한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최원식의 의문 가라타니 고진, ‘미와 지배’
은 필자에게는 그 자체가 의문거리로 들린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야나기 무네요시의 예술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해 보자’ 물론 이 말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난 몇 십년 동안 야나기는 ‘충분히’ 읽혀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야나기는 읽히기만 하고 이제는 잊혀진 그런 사람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 야나기는 충분히 읽혔고 또 충분히 연구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야나기의 예술 자체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에게 그런 주장은 다음과 같이 들린다. ‘야나기와 내셔널리즘과의 관계는 이제 말하지 말자’. 그렇다. 사실 현재의 야나기 연구가 공회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계속된 이 회피, 혹은 기억의 삭제와 관련된 것이다.
야나기와 관련해서 필자에게 여러모로 복잡한 상념을 불러 일으킨 장면은 ‘광화문’ 앞 동아일보 사옥에서 열린 나카미 마리의 강연이다.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 강연회(2006.11.10. 동아일보사)
전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야나기의 민예품이라는 선전과 함께 야나기의 민예품 전시회에 앞서 열린 강연회에 초대된 나카미 마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당일 배포된 강연 원고에는 없는 발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그토록 살릴려고 했던 광화문과 야나기와도 인연이 깊은 광화문 바로 앞에 자리잡은 동아일보사옥에서 이런 강연을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물론 이 말은 강연에 초대받은 사람이 의례적으로 건네는 인사말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그의 발언에 다소 복잡한 심기가 일었던 것은 단지 민족주의적인 감상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야나기=광화문이라는 기이한 등식과 그 등식이 가져다 주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 필자는 바로 그것이 두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야나기는 싫든 좋든 ‘여전히’ 민족=국가라는 무의식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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