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고인돌의 의미
Ⅲ. 고인돌의 형태
Ⅳ. 고인돌의 분류
1. 북방식 고인돌
2. 남방식 고인돌
3. 개석식 고인돌
Ⅴ. 고인돌의 가치
Ⅵ. 고인돌과 한국고인돌
1. 충북 청원 아득이 고인돌
2. 경북 영일군 칠포리 고인돌
3. 함안 군복면 동촌리 고인돌
4. 기타
Ⅶ. 고인돌과 덕은리 고인돌
Ⅷ. 고인돌과 북방식 고인돌
Ⅸ. 고인돌과 황석리 고인돌
참고문헌
Ⅱ. 고인돌의 의미
Ⅲ. 고인돌의 형태
Ⅳ. 고인돌의 분류
1. 북방식 고인돌
2. 남방식 고인돌
3. 개석식 고인돌
Ⅴ. 고인돌의 가치
Ⅵ. 고인돌과 한국고인돌
1. 충북 청원 아득이 고인돌
2. 경북 영일군 칠포리 고인돌
3. 함안 군복면 동촌리 고인돌
4. 기타
Ⅶ. 고인돌과 덕은리 고인돌
Ⅷ. 고인돌과 북방식 고인돌
Ⅸ. 고인돌과 황석리 고인돌
참고문헌
본문내용
국립박물관팀에 의해 2차례에 걸쳐 발굴되었다. 그 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1982년 재발굴하여 8기의 고인돌이 추가로 보고 되었다. 46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으나 땅속에 묻힌 것과 파괴된 것을 제외하면 총 26기만이 남아있다. 이 가운데 인골이 발견된 고인돌은 충6호, 충7호, 충13호, 충17호 고인돌이다. 한반도의 토질은 산성이 강해 인골이 보존되는 경우가 드문데 반해 황석리 고인돌에서는 다수의 인골이 출토되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청동기인들의 매장방식(葬法)과 청동기인들의 인류학적 수치 등이 새롭게 밝혀졌다.
충6호 고인돌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충6호의 덮개돌은 편암으로 길이 260cm, 폭 160cm, 두께 25cm에 달한다. 덮개돌이 남쪽으로 15°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장축방향은 강물의 흐름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덮개돌 상면에 12개의 성혈이 파여져 있다.
하부구조로는 네 벽을 얇은 판자돌 5~6매를 잇대어 세운 무덤방이 발견 되었다. 현재는 서쪽 끝 일부가 경작으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다. 무덤방의 바닥은 사방에 세운 벽보다 7~10cm 높게 깔아 들린바닥을 하였는데, 뚜껑돌은 없다. 특이한 점은 매장부의 남쪽과 북쪽 면에 15~30cm의 사이를 두고 편암과 판자돌을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반면 동쪽 면은 전혀 사이를 두지 않고 바로 판자들을 세워 놓았다. 훼손된 서쪽도 동쪽과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방 전체의 크기는 길이 195cm, 폭 130cm, 두께 40cm에 달한다.
무덤방 동벽 쪽에서 옆머리뼈와 왼쪽 아래턱, 이빨 4개 그리고 서벽 쪽으로 향하여 오른쪽 왼쪽 위팔뼈, 왼쪽 뒤팔뼈, 빗장뼈, 갈비뼈, 엉덩이뼈, 허벅지뼈, 정강이뼈, 종아리뼈 등이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골의 주인은 20살 미만으로 추정된다. 뼈 일부분에서 설치류에 의한 훼손 흔적이 발견되었다.
층7호 고인돌은 충6호에서 동쪽으로 4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은 석회질 셰일로 만들어 졌는데, 규모는 길이 120cm, 폭 120cm, 두께 20cm에 달한다. 무덤방은 돌널형식으로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네 벽을 편편한 편암으로 잇대어 세운 뒤 길쭉한 모양의 활석 6매를 뚜껑삼아 덮어 놓았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160cm, 폭 40cm, 두께 25cm이다.
무덤방 내부에서는 40~5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발견되었다. 머리뼈 일부분이 덮개돌의 무게로 인해 파손되었으나 나머지는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피장자의 신장은 145~150cm로 측정되었다. 머리는 남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턱뼈가 바로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위를 향한 채 누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장자의 양팔은 모두 꺾어 손끝이 머리 쪽을 향하도록 하였으며 정강이뼈가 굽어져 있던 것으로 보아 발목을 붙여서 묻었던 것 같다. 목과 가슴부분에서는 대롱옥 여러 점이 출토되었다.
충13호 고인돌은 석회질 편암으로 발굴 당시 덮개돌은 세워진 채 밭둑에 기대어 있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134cm, 폭 109cm, 두께 10cm에 달한다. 덮개돌이 서 있던 바로 앞 지표 아래에서 길이 104cm, 폭 28cm, 두께 25cm 규모의 무덤방이 발견되었다. 특이하게도 남벽과 북벽에는 편암과 규암질을 판자들을 1매씩 놓았는데 세워놓지 않고 눕혀 놓았다. 동벽은 길쭉한 역삼각형의 석영편암 판자돌 1매를 깊숙이 박아 남벽과 높이를 같게 하였으며 서벽도 석회질 편암의 판석 1매를 8cm 깊이로 박아 놓았다. 무덤방 내부에서는 뼈 조각 3개가 발견되었다.
충17호 고인돌에서는 남자의 인골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훼손되어 두 조각으로 잘려져 있는데, 합친 것의 규모는 길이 380cm, 폭 130cm, 두께 45cm에 달한다.
무덤방은 충13호과 같은 형식으로 남벽과 북벽의 판석을 세우지 않고 눕혀 놓았다. 무덤방 내부에서 뒷머리 뼈와 옆머리뼈 오른쪽이 출토되었는데 머리뼈의 봉함으로 보아 나이는 30대 전후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김문자, 한국 고인돌 사회 복식 고증, 한복문화학회, 2009
◎ 김월선, 고인돌의 현대적 해석, 성신여자대학교, 1995
◎ 임세권, 한반도 고인돌의 종합적 검토, 백산학보, 1976
◎ 조영일, 고인돌 형태를 재구성한 도자조형 연구, 경기대학교, 2006
◎ 지건길, 호남지방 고인돌의 형식과 구조, 한국고고학회, 1990
◎ 최민정, 임진강유역의 고인돌 연구, 세종대학교, 2005
충6호 고인돌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충6호의 덮개돌은 편암으로 길이 260cm, 폭 160cm, 두께 25cm에 달한다. 덮개돌이 남쪽으로 15°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장축방향은 강물의 흐름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덮개돌 상면에 12개의 성혈이 파여져 있다.
하부구조로는 네 벽을 얇은 판자돌 5~6매를 잇대어 세운 무덤방이 발견 되었다. 현재는 서쪽 끝 일부가 경작으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다. 무덤방의 바닥은 사방에 세운 벽보다 7~10cm 높게 깔아 들린바닥을 하였는데, 뚜껑돌은 없다. 특이한 점은 매장부의 남쪽과 북쪽 면에 15~30cm의 사이를 두고 편암과 판자돌을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반면 동쪽 면은 전혀 사이를 두지 않고 바로 판자들을 세워 놓았다. 훼손된 서쪽도 동쪽과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방 전체의 크기는 길이 195cm, 폭 130cm, 두께 40cm에 달한다.
무덤방 동벽 쪽에서 옆머리뼈와 왼쪽 아래턱, 이빨 4개 그리고 서벽 쪽으로 향하여 오른쪽 왼쪽 위팔뼈, 왼쪽 뒤팔뼈, 빗장뼈, 갈비뼈, 엉덩이뼈, 허벅지뼈, 정강이뼈, 종아리뼈 등이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골의 주인은 20살 미만으로 추정된다. 뼈 일부분에서 설치류에 의한 훼손 흔적이 발견되었다.
층7호 고인돌은 충6호에서 동쪽으로 4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은 석회질 셰일로 만들어 졌는데, 규모는 길이 120cm, 폭 120cm, 두께 20cm에 달한다. 무덤방은 돌널형식으로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네 벽을 편편한 편암으로 잇대어 세운 뒤 길쭉한 모양의 활석 6매를 뚜껑삼아 덮어 놓았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160cm, 폭 40cm, 두께 25cm이다.
무덤방 내부에서는 40~5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발견되었다. 머리뼈 일부분이 덮개돌의 무게로 인해 파손되었으나 나머지는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피장자의 신장은 145~150cm로 측정되었다. 머리는 남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턱뼈가 바로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위를 향한 채 누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장자의 양팔은 모두 꺾어 손끝이 머리 쪽을 향하도록 하였으며 정강이뼈가 굽어져 있던 것으로 보아 발목을 붙여서 묻었던 것 같다. 목과 가슴부분에서는 대롱옥 여러 점이 출토되었다.
충13호 고인돌은 석회질 편암으로 발굴 당시 덮개돌은 세워진 채 밭둑에 기대어 있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134cm, 폭 109cm, 두께 10cm에 달한다. 덮개돌이 서 있던 바로 앞 지표 아래에서 길이 104cm, 폭 28cm, 두께 25cm 규모의 무덤방이 발견되었다. 특이하게도 남벽과 북벽에는 편암과 규암질을 판자들을 1매씩 놓았는데 세워놓지 않고 눕혀 놓았다. 동벽은 길쭉한 역삼각형의 석영편암 판자돌 1매를 깊숙이 박아 남벽과 높이를 같게 하였으며 서벽도 석회질 편암의 판석 1매를 8cm 깊이로 박아 놓았다. 무덤방 내부에서는 뼈 조각 3개가 발견되었다.
충17호 고인돌에서는 남자의 인골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훼손되어 두 조각으로 잘려져 있는데, 합친 것의 규모는 길이 380cm, 폭 130cm, 두께 45cm에 달한다.
무덤방은 충13호과 같은 형식으로 남벽과 북벽의 판석을 세우지 않고 눕혀 놓았다. 무덤방 내부에서 뒷머리 뼈와 옆머리뼈 오른쪽이 출토되었는데 머리뼈의 봉함으로 보아 나이는 30대 전후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김문자, 한국 고인돌 사회 복식 고증, 한복문화학회, 2009
◎ 김월선, 고인돌의 현대적 해석, 성신여자대학교, 1995
◎ 임세권, 한반도 고인돌의 종합적 검토, 백산학보, 1976
◎ 조영일, 고인돌 형태를 재구성한 도자조형 연구, 경기대학교, 2006
◎ 지건길, 호남지방 고인돌의 형식과 구조, 한국고고학회, 1990
◎ 최민정, 임진강유역의 고인돌 연구, 세종대학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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