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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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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의 필요성

Ⅲ.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의 전개과정

Ⅳ.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의 연극적 재현

Ⅴ.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의 미술운동

Ⅵ.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의 노래작품

Ⅶ.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의 인권담론

Ⅷ.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의 피해보상정책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208-209쪽).
1990년 7월 14일 제정된 광주법에 의거, 피해자 보상근거가 마련됨으로서, 1990년 8월 17일부터 9월 15일까지(30일간) 5·18 관련자들의 신청을 접수하였던 바, 총 2,690명이 신청하였으나 그 중 2,227명을 지급 대상자로 결정하였다. 1992년 12월 말 현재, 보상금 지급 대상자의 99.8%인 2,224명이 보상금 등을 지급받았고, 미지급자는 3명(고아 2명, 소송제기자 1명)이다. 참고로 보상관련 위원회는 중앙정부에는 보상지원위원회(국무총리 위원장, 15인 이내, 현재 14명), 광주에는 보상심의위원회(15인 이내, 현재 15인), 그리고 보상 심의위원회 산하에 장애등급 판정분과 위원회와 관련여부 심사 분과 위원회가 있다.
5월과 관련하여 제2단계인 회유기는 노태우 정권이 광주문제를 근원적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아니라, 금전적 유인을 통하여 5월 관련 당사자들을 회유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보상금 지급을 둘러싸고, 이를 거절하는 관련 당사자도 상당 수 있었다. 한편 광주광역시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5월 문제 처리를 위하여, 5월 문제를 담당하는 전담부서를 설치하였고, 이들 조직을 통하여 5월 관련 보상 및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Ⅸ. 결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이 진행되는 분위기에서 이 시기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좀더 사실성을 추구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의 재구성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또한 518에 대한 수정된 인식이 어느 정도 확산됐다는 판단 아래, 이전의 단순 ‘폭로성 다큐멘터리’를 지양하고 대신 해결책과 역사적 기억에 대한 의미 복원에 무게를 둔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1995년의 MBC 내부 사정은 KBS와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이 시기의 자기반성 과정을 비교적 빨리 마무리한 편이었다. 그 결과가 1996년 5월 14일, 50분간 방송된 MBC PD수첩: 80년 5월 그때의 언론은 죽었다였다. 이 텍스트는 일종의 언론의 자기비판 프로그램이었다.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에서는 관련자 인터뷰, 사진 및 관련 영상물이 해설자의 나레이션에 첨부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80년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광주의 언론기관을 찾아가 당시 신군부에 의해 기사가 압류당했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간략 기사만 기재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언론사의 각성을 촉구하는 자기반성의 목소리였다.
MBC 교양제작국에서 제작하는 뉴스 매거진 형태인 MBC PD수첩에서는 1990년부터 광주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었다. 90년 5월 14일에서 19일까지의 광주 모습을 취재하여 90년 5월 22일 방송된 37분 분량의 MBC PD수첩: 90년 5월 광주는 일년에 한 번씩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5월 광주가 남아 있음을 시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같은 해 방송된 MBC 리포트, 광주는 치유되었는가?는 광주항쟁 희생자에 대한 최초 보상이 이루어진 90년 당시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희생자에 대해 최초의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이에 따라 “광주의 한, 아들의 죽음이 돈으로 흥정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따라서 이 텍스트는 광주문제의 해결이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 아픔을 같이 하고 나눔으로써 화해와 단결을 이룩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1996년 5월에 KBS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망월동은 이 시기의 변화된 양상을 잘 반영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전 다큐멘터리들과는 달리 당시 사건의 영상자료는 최대한 줄이는 대신 2개월 동안 망월동을 찾은 참배객들과 유족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는 518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함께 다룸으로써, 망월동의 의미를 투쟁의 구심점으로 부여한다. 그래서 망월동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여전히 “산 자”의 문제임을 보여줌으로써 “아직 광주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변화된 양상은 지역방송국에서 다양한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는 점이다. 광주MBC에서 1996년과 1997년에 각각 제작한 시민군 윤상원과 밀항 탈출은 인물 탐구 형식을 취한 ‘다큐드라마’이다. 이 두 다큐멘터리는 최후까지 도청을 사수한 시민군을 대표하는 윤상원과 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이라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518에 참여한 항쟁 주체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동시에 이들의 삶을 기리려는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두 편의 다큐드라마 대본은 당시 항쟁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으며 극단 ‘토박이’ 대표였던 박효선 씨가 맡았는데, 시민군 윤상원에서는 주연인 윤상원 역까지 직접 맡아 메시지 전달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
새롭게 개국한 광주방송(KBC)은 1996년 5월 17일에 창사특집극 2부작 아 광주여를 처음으로 방송한다. 제1부 “16년만의 만남”은 1980년 당시 광주 진압에 동원됐던 이성우 씨가 제대 후 대인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10년 동안 정신적 갈등을 겪어오다 눈물로 참회하는 내용이다. 제2부는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학회의 518분과에서 논의된 교수들의 시각을 들어보고, 당시에 관심을 모았던 미국측에 대한 공개사과 요구 주장 등도 보도했다. 또한 광주전남과 타 지역 주민 1,4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그리고 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518에 대한 시각 등을 살펴보고 있다.
참고문헌
박경석(2008), 5·18 민주화운동 기록의 정보서비스 연구, 목포대학교
신일섭(2005), 광주민주화운동 보상법의 정치·사회적 의미,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윤선자(2001),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종교계의 역할, 한국역사연구회
이보영(2007), 5·18민주화운동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형사법적 평가, 한국법학회
조재구(1993),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최준영(1998), 여론조사에 나타난 5·18 민주화운동과 지역감정, 한국지역사회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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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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