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언
2. 근대 관찬 사서의 변천
3. 조선사편수회의 성립과 발전
4. 조선사편수회의 역사편찬
5. 결어
2. 근대 관찬 사서의 변천
3. 조선사편수회의 성립과 발전
4. 조선사편수회의 역사편찬
5. 결어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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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침략을 촉진하고 이것이 한국 침탈(1910년)로 일단 성공하자, 어용학자를 한국에 파견, 조작한 일본역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의 사료를 불태우고 삼국이전의 고대사를 말살하려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중국의 기자로부터 피지배국으로 출발한 한국은 일본의 영향하에 있었으며 결국 일본의 한국 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옛날의 종속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며 왕권에 시달리는 한국인을 보호하려는 은혜'라고 호도하는 것이다. 喜田貞吉은 일제의 한국침탈 후 펴낸 <조선의 병합과 국사>라는 저서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일제가 한국 고대사 말살에 이처럼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물론 한국 침략의 '정당성'을 양국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일본 역사의 위대성을 확립하기 위함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고대사를 공백화(空白化)하고 조작함으로써 일본의 고대 '남한경영론'을 비판할 수 있는 반증들을 말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5. 결어
결어에서는 본문에서 살펴본 내용을 간단히 정리, 보충하면서 이 글에 대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다.
조선사편수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조선 역사를 편찬하기 위하여 설치한 한국사 연구기관으로,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일본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1922년에 창설되었다. 기관의 구성 인사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하고 일본한국의 학자 몇 명을 위원 또는 고문으로 하였다. 23년 사료수집편찬방법 등을 심의하고, 방침에 따라 《조선사》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보다 완벽을 기하고 권위있는 기관을 설치할 필요를 느껴 25년 조선사편수회관제를 공포하여 조선사편수회가 설치되었다. 이 회는 회장고문위원간사로 조직하고 수사관(修史官) 3명, 수사관보 4명, 서기 2명을 두어 32년부터 38년까지 《조선사》 37책, 《조선사료총간》 20종, 《조선사료집진》 3책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 책들은 식민사관에 입각한 내용들로서 한국인을 우민화(愚民化)하고 자기비하시키는 등 역사의식이 왜곡된 악서였으며 이러한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던 조선사편수회는 광복 후 자연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참고문헌-
1. 조동걸 외 공저,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
2. 조동걸, 《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 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3.
3. 편집부역,《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 시인사, 1986.
이들은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침략을 촉진하고 이것이 한국 침탈(1910년)로 일단 성공하자, 어용학자를 한국에 파견, 조작한 일본역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의 사료를 불태우고 삼국이전의 고대사를 말살하려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중국의 기자로부터 피지배국으로 출발한 한국은 일본의 영향하에 있었으며 결국 일본의 한국 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옛날의 종속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며 왕권에 시달리는 한국인을 보호하려는 은혜'라고 호도하는 것이다. 喜田貞吉은 일제의 한국침탈 후 펴낸 <조선의 병합과 국사>라는 저서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일제가 한국 고대사 말살에 이처럼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물론 한국 침략의 '정당성'을 양국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일본 역사의 위대성을 확립하기 위함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고대사를 공백화(空白化)하고 조작함으로써 일본의 고대 '남한경영론'을 비판할 수 있는 반증들을 말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5. 결어
결어에서는 본문에서 살펴본 내용을 간단히 정리, 보충하면서 이 글에 대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다.
조선사편수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조선 역사를 편찬하기 위하여 설치한 한국사 연구기관으로,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일본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1922년에 창설되었다. 기관의 구성 인사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하고 일본한국의 학자 몇 명을 위원 또는 고문으로 하였다. 23년 사료수집편찬방법 등을 심의하고, 방침에 따라 《조선사》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보다 완벽을 기하고 권위있는 기관을 설치할 필요를 느껴 25년 조선사편수회관제를 공포하여 조선사편수회가 설치되었다. 이 회는 회장고문위원간사로 조직하고 수사관(修史官) 3명, 수사관보 4명, 서기 2명을 두어 32년부터 38년까지 《조선사》 37책, 《조선사료총간》 20종, 《조선사료집진》 3책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 책들은 식민사관에 입각한 내용들로서 한국인을 우민화(愚民化)하고 자기비하시키는 등 역사의식이 왜곡된 악서였으며 이러한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던 조선사편수회는 광복 후 자연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참고문헌-
1. 조동걸 외 공저,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
2. 조동걸, 《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 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3.
3. 편집부역,《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 시인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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