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없음.
본문내용
일 시민병원에서 사망. 주소 83구역 람가세 6번지. 무덤번호 0-0-1]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사후에도 정부로부터 완벽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고 있다.
스페인의 장례문화
王家전통을 이어받은 아파트식 묘실이 특징
수도 마드리드의 집단묘지에 가보면 4-5m높이의 니초(Nicho)가 길게 뻗어 있다. 지상에 아파트처럼 세워진 콘크리트 묘실인데, 집단 묘지의 크기에 따라 길게는 1백m 이상 된 것도 있어 멀리서 보면 얼핏 아파트로 착각하나 가까이 가보면 가로 세로 각 50cm에 깊이 2m가량의 칸막이(Nicho)가 벌집처럼 설치되어 있다.
이것에는 관이 앞뒤 양쪽으로 각각 1개식 들어가거나 또는 한쪽으로만 들어갈 수 있으며 3층짜리에서부터 6층짜리 까지 다양한 구조를 가지며, 이 같은 아파트식 묘실로 지상면적 1평에 시신이 평균 15구나 안치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는 묘지난을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시민의 선택에 따라 땅에 묻힐 수도 있는데, 공설묘지이건 교회가 운영하는 사설묘지이건 간에 니초와 땅에 설치된 전통분묘가 함께 있어 망자나 유족의 희망으로 유택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니초가 매장분묘보다 싼 사용료를 내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시립묘지의 경우 10년 사용조건의 분양가격이 매자의 경우 한화 60만 원가량이나 니초 한 칸을 차지하는 것은 15만원에 불과하면서도 99년간 임대가 가능하여 니초가 가격 면에서 훨씬 저렴하다.
스페인의 독특한 니초형 장묘법의 유래는 포르투갈을 합병하고 중남미를 식민화 하면서 스페인을 대제국으로 키운 합스부르크 왕가의 국왕부처 묘소가 16세기에 니초형으로 설치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국왕부부의 묘소는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국왕의 가을별장 엘에스코리알 궁전의 지하 원형묘실에 집단 설치되어 있으며, 1584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시가 안치된 금속관이 맨 밑에 자리 잡은 이래 현재의 부르봉 왕가에 이르기까지 12명의 국왕과 그 부인 등 24명의 유해가 원형묘실의 4층으로된 니초형 칸마다에 숨진 연대순으로 모셔져 있다.
이처럼 왕가의 전통이 서린 니초식 묘소를 사용하는 추세는 도시의 묘지난과 경제성이 겹쳐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큰 시립묘지인 알부데나 묘지(1.2평방km)의 경우 1945년에는 매장과 니초 이용비율이 9:1이던 것이 지금은 45:55로 오히려 니초가 앞서고 있다. 스페인의 이러한 개성적인 장묘법은 최근 파리 등 유럽의 대도시에서 도입을 추진 중이며 남미 등지에서도 일부 유행하고 있다.
가나의 장례문화
대서양에 면한 이 나라는 열대성 기후에 속하여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의 건기(乾期)와 4월부터 9월까지의 우기(雨期)로나 누어져 있다.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57년에 아프리카의 식민지로서는 제일먼저 독립되어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있으며 주민은 아깡족이나 엘베족등 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유지하며 각각의 족장(族長)이 생활상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부족마다 각기 다른 언어나 풍속을 가지고 있으나 공용어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민의 반 이상이 기독교나 가톨릭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나 토착종교를 신봉하는 부족들도 있다. 현지인이 사망했을 경우 수도 아크라 등 도시에서는 사망계를 제출하여야 하나 지방에서는 반드시 의무화 되어 있지 않는 곳도 있다.
거의 토장(土葬)이며 화장설비는 없다. 토착주민 가운데 최대의 부족인 아깡족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근친자들에 의하여 수시작업이 거행된다. 근친자는 적어도 9일간은 상복을 입어야하며 이 기간에는 단식까지 하고 있다.
이 나라는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들과는 달리 매장하는 날 장의를 거행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들의 결정에 따라 매장 후 수일 혹은 수주간 때로는 5년이 지난 뒤에도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적으로 월요일이나 목요일이 신(神)과의 화해가 되는 날로 관습화되어 있고 토요일에도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다. 장의 당일의 아침에는 큰북이 울려 퍼지고 조가를 부른다.
말리공화국의 장례문화
중앙아프리카 내륙국인 이 나라는 니젤강 유역에 넓은 평원이 있고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빈곤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흑인의 반바라족으로 이슬람교나 토착종교를 신봉하고 있으나 생활수준이 낮고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文盲)으로 되어 있다.
말리공화국은 남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역의 요지이며 그중에서도 니젤강변의 "도부크타"는 교역의 중심지로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낙타를 이용한 장사꾼들이 소금이나 식료, 일용품 등을 북으로부터 실어오고 있다. 이들 장사꾼들의 종교가 이슬람교이기 때문에 토착민들도 일찍부터 이슬람교로 개종되어 왔었다. 현지인이 사망했을 경우 그 지역 주민이 총 출동하여 성대한 장례를 거행한다.
유체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 매장시키고 정령숭배(精靈崇拜)가 성행되며 부족단위의 장례가 행하여진다.
장례는 수일간 계속되기도 하며 죽은 영혼에 대한 공포로 주술사에 의한 기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일부 소수민족인 "도알그"족은 푸른 색깔의 옷을 좋아하며 사막의 용사임을 자랑하면서 여기저기로 이동생활을 하다가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사막에 묻어 버리기도 한다.
또한 "드공"족들의 장례는 참석자들에게 장엄한 가면을 씌워 군무(群舞)를 추는 피로연까지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사후에 고인의 영혼과 활력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불안정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이를 고인의 집안에 그대로 묵혀둘 필요가 있기 때문에 부락의 남자들이 무장까지 하고 고인의 집 주위와 부락의 광장에서 모의 전투를 하기도 하며,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다시 성대하게 가면무도회를 거행하고 고인의 영혼과 활력을 다시 결합시켜 저승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여기에 살펴볼 것은 이들의 장례가 일반적으로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에 공동체로부터 격리시켜 다른 세계로 보내는 제1단계의 장례와 죽은 이를 조령(祖靈)으로 전화(轉化)시켜 죽은 이와의 사회적 관계를 확립시키는 제2단계의 장례와 구별되어 있다는데 있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사후에도 정부로부터 완벽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고 있다.
스페인의 장례문화
王家전통을 이어받은 아파트식 묘실이 특징
수도 마드리드의 집단묘지에 가보면 4-5m높이의 니초(Nicho)가 길게 뻗어 있다. 지상에 아파트처럼 세워진 콘크리트 묘실인데, 집단 묘지의 크기에 따라 길게는 1백m 이상 된 것도 있어 멀리서 보면 얼핏 아파트로 착각하나 가까이 가보면 가로 세로 각 50cm에 깊이 2m가량의 칸막이(Nicho)가 벌집처럼 설치되어 있다.
이것에는 관이 앞뒤 양쪽으로 각각 1개식 들어가거나 또는 한쪽으로만 들어갈 수 있으며 3층짜리에서부터 6층짜리 까지 다양한 구조를 가지며, 이 같은 아파트식 묘실로 지상면적 1평에 시신이 평균 15구나 안치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는 묘지난을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시민의 선택에 따라 땅에 묻힐 수도 있는데, 공설묘지이건 교회가 운영하는 사설묘지이건 간에 니초와 땅에 설치된 전통분묘가 함께 있어 망자나 유족의 희망으로 유택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니초가 매장분묘보다 싼 사용료를 내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시립묘지의 경우 10년 사용조건의 분양가격이 매자의 경우 한화 60만 원가량이나 니초 한 칸을 차지하는 것은 15만원에 불과하면서도 99년간 임대가 가능하여 니초가 가격 면에서 훨씬 저렴하다.
스페인의 독특한 니초형 장묘법의 유래는 포르투갈을 합병하고 중남미를 식민화 하면서 스페인을 대제국으로 키운 합스부르크 왕가의 국왕부처 묘소가 16세기에 니초형으로 설치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국왕부부의 묘소는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국왕의 가을별장 엘에스코리알 궁전의 지하 원형묘실에 집단 설치되어 있으며, 1584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시가 안치된 금속관이 맨 밑에 자리 잡은 이래 현재의 부르봉 왕가에 이르기까지 12명의 국왕과 그 부인 등 24명의 유해가 원형묘실의 4층으로된 니초형 칸마다에 숨진 연대순으로 모셔져 있다.
이처럼 왕가의 전통이 서린 니초식 묘소를 사용하는 추세는 도시의 묘지난과 경제성이 겹쳐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큰 시립묘지인 알부데나 묘지(1.2평방km)의 경우 1945년에는 매장과 니초 이용비율이 9:1이던 것이 지금은 45:55로 오히려 니초가 앞서고 있다. 스페인의 이러한 개성적인 장묘법은 최근 파리 등 유럽의 대도시에서 도입을 추진 중이며 남미 등지에서도 일부 유행하고 있다.
가나의 장례문화
대서양에 면한 이 나라는 열대성 기후에 속하여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의 건기(乾期)와 4월부터 9월까지의 우기(雨期)로나 누어져 있다.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57년에 아프리카의 식민지로서는 제일먼저 독립되어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있으며 주민은 아깡족이나 엘베족등 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유지하며 각각의 족장(族長)이 생활상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부족마다 각기 다른 언어나 풍속을 가지고 있으나 공용어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민의 반 이상이 기독교나 가톨릭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나 토착종교를 신봉하는 부족들도 있다. 현지인이 사망했을 경우 수도 아크라 등 도시에서는 사망계를 제출하여야 하나 지방에서는 반드시 의무화 되어 있지 않는 곳도 있다.
거의 토장(土葬)이며 화장설비는 없다. 토착주민 가운데 최대의 부족인 아깡족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근친자들에 의하여 수시작업이 거행된다. 근친자는 적어도 9일간은 상복을 입어야하며 이 기간에는 단식까지 하고 있다.
이 나라는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들과는 달리 매장하는 날 장의를 거행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들의 결정에 따라 매장 후 수일 혹은 수주간 때로는 5년이 지난 뒤에도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적으로 월요일이나 목요일이 신(神)과의 화해가 되는 날로 관습화되어 있고 토요일에도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다. 장의 당일의 아침에는 큰북이 울려 퍼지고 조가를 부른다.
말리공화국의 장례문화
중앙아프리카 내륙국인 이 나라는 니젤강 유역에 넓은 평원이 있고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빈곤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흑인의 반바라족으로 이슬람교나 토착종교를 신봉하고 있으나 생활수준이 낮고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文盲)으로 되어 있다.
말리공화국은 남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역의 요지이며 그중에서도 니젤강변의 "도부크타"는 교역의 중심지로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낙타를 이용한 장사꾼들이 소금이나 식료, 일용품 등을 북으로부터 실어오고 있다. 이들 장사꾼들의 종교가 이슬람교이기 때문에 토착민들도 일찍부터 이슬람교로 개종되어 왔었다. 현지인이 사망했을 경우 그 지역 주민이 총 출동하여 성대한 장례를 거행한다.
유체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 매장시키고 정령숭배(精靈崇拜)가 성행되며 부족단위의 장례가 행하여진다.
장례는 수일간 계속되기도 하며 죽은 영혼에 대한 공포로 주술사에 의한 기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일부 소수민족인 "도알그"족은 푸른 색깔의 옷을 좋아하며 사막의 용사임을 자랑하면서 여기저기로 이동생활을 하다가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사막에 묻어 버리기도 한다.
또한 "드공"족들의 장례는 참석자들에게 장엄한 가면을 씌워 군무(群舞)를 추는 피로연까지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사후에 고인의 영혼과 활력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불안정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이를 고인의 집안에 그대로 묵혀둘 필요가 있기 때문에 부락의 남자들이 무장까지 하고 고인의 집 주위와 부락의 광장에서 모의 전투를 하기도 하며,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다시 성대하게 가면무도회를 거행하고 고인의 영혼과 활력을 다시 결합시켜 저승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여기에 살펴볼 것은 이들의 장례가 일반적으로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에 공동체로부터 격리시켜 다른 세계로 보내는 제1단계의 장례와 죽은 이를 조령(祖靈)으로 전화(轉化)시켜 죽은 이와의 사회적 관계를 확립시키는 제2단계의 장례와 구별되어 있다는데 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