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찬송설교의 개념적 이해
2. 찬송설교의 작성
3. 찬송설교의 실제
제목: 그대 평생의 길!
본문: 찬송가 470장
2. 찬송설교의 작성
3. 찬송설교의 실제
제목: 그대 평생의 길!
본문: 찬송가 470장
본문내용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서 다 씻으사 힌 눈보다 더 정하겠네”
믿음이 무어냐 하면 불 신앙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에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영적인 전쟁을 보게 합니다.
우는 사자 같이 광명한 천사같이 간교한 뱀처럼 사탄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합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자가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음을 믿음은 우리로 보게 합니다. 목욕하면 깨끗하다! 이런 상식 속에 사는 사람은 자기에게서 얼마나 지독한 죄의 냄새가 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마는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은 일년 365일 목욕탕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외치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이 땅의 지혜 있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어려움이 올 때 그들이 하는 일들을 보십시오! 그 똑똑한 사람들이 운수와 재수 일진을 믿을 지언정 사탄은 믿지 않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치욕입니다. 오히려 고난의 순간이 오면 다른데서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갖고,... 사는 것은 전쟁이려니... 이기는 게 승리임을 신앙처럼 믿으며 눈에 불을 켜고 삽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절대 양보하면 안된다. 옆사람을 타고 누르더라도 어떻하든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 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쌓아놓고는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이리 말합 니다. “이리 살아야 평안한 거야!”(2번) -
물론 그것들이 가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핍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정한 평안일까요? 싸워서 쟁취하는 풍요가 진정한 행복일까요? 그렇다면 스스로 모든 것을 내놓고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자초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일까요? 악을 밥먹듯 행하는 사람이 아무런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 해서 그것을 진정한 평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님이 포기하고 악한 사탄이 장담한 평안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그 누군가가 내 무덤엘 와서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꽃 한송이 바치도록 삶을 사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 영혼의 마지막 안식처가 하나님 없는 곳이라면 그 평안 역시 진정한 평안일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거룩한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땅의 그 어느 누구도 이 땅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영생으로 인도하는 평안을 보장할 수는 없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영원한 평안으로 인도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날, 그분 앞에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그것이 진정한 평안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이 진리 위에 서있던 스패포드는 그래서 ‘내 영혼이 평안하다’(2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한다면 여러분 들 역시 스패포드가 했던 고백을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피아노 반주 및 낭송)
‘내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제는 더 이상 담당할게 없다는 것, 아,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고 찬양하라 주여 내 믿음을 보게 될 날을 서두르소서 두루마리처럼 구름을 접으시고 나팔소리 울려 퍼질 때 주께서 강림하시리니 그렇다해도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 -
우리 마음을 모아 3-4절을 함께 찬송하겠습니다: (함께 찬송)
믿음이 무어냐 하면 불 신앙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에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영적인 전쟁을 보게 합니다.
우는 사자 같이 광명한 천사같이 간교한 뱀처럼 사탄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합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자가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음을 믿음은 우리로 보게 합니다. 목욕하면 깨끗하다! 이런 상식 속에 사는 사람은 자기에게서 얼마나 지독한 죄의 냄새가 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마는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은 일년 365일 목욕탕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외치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이 땅의 지혜 있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어려움이 올 때 그들이 하는 일들을 보십시오! 그 똑똑한 사람들이 운수와 재수 일진을 믿을 지언정 사탄은 믿지 않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치욕입니다. 오히려 고난의 순간이 오면 다른데서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갖고,... 사는 것은 전쟁이려니... 이기는 게 승리임을 신앙처럼 믿으며 눈에 불을 켜고 삽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절대 양보하면 안된다. 옆사람을 타고 누르더라도 어떻하든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 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쌓아놓고는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이리 말합 니다. “이리 살아야 평안한 거야!”(2번) -
물론 그것들이 가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핍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정한 평안일까요? 싸워서 쟁취하는 풍요가 진정한 행복일까요? 그렇다면 스스로 모든 것을 내놓고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자초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일까요? 악을 밥먹듯 행하는 사람이 아무런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 해서 그것을 진정한 평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님이 포기하고 악한 사탄이 장담한 평안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그 누군가가 내 무덤엘 와서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꽃 한송이 바치도록 삶을 사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 영혼의 마지막 안식처가 하나님 없는 곳이라면 그 평안 역시 진정한 평안일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거룩한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땅의 그 어느 누구도 이 땅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영생으로 인도하는 평안을 보장할 수는 없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영원한 평안으로 인도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날, 그분 앞에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그것이 진정한 평안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이 진리 위에 서있던 스패포드는 그래서 ‘내 영혼이 평안하다’(2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한다면 여러분 들 역시 스패포드가 했던 고백을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피아노 반주 및 낭송)
‘내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제는 더 이상 담당할게 없다는 것, 아,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고 찬양하라 주여 내 믿음을 보게 될 날을 서두르소서 두루마리처럼 구름을 접으시고 나팔소리 울려 퍼질 때 주께서 강림하시리니 그렇다해도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 -
우리 마음을 모아 3-4절을 함께 찬송하겠습니다: (함께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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