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화의 이해 레포트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주문화의 이해 레포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제주삼양 선사유적지

2.제주 연북정

3.법화사지

4.하원동 탐라왕자묘

5.존자암지

본문내용

구조는 7량으로 기둥의 배열로써 모두 제주도 주택과 비슷하며 지붕은 합각지붕으로 물매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 -느낀점-
연북정은 관덕정과 같은 제주도의 관문이며 특히 망루의 모습마저 갖추었고 제주도의 조천 주민들에게 꼭 필요했으며 또한 유배 온 사람들이 연북정에서 임금의 대한 충정을 나타낸 곳이었다. 연북정은 우리 제주도의 희소한 망루였기 때문에 또 한번 제주인의 생활에 대하여 근접할 기회가 되었다.
3.법화사지
위 사진은 법화사지이며 법화사지는 서귀포시 하원동 1071 번지에 위치해 있다. 법화사지는 1971년 8월 26일 제주도 기념물 제 13호로 지정되었으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1269년 (원종 10년)부터 1279(충렬왕 5년)까지 중창하였다는 지록이 남아 있다. <탐라지>에 따르면 1653년 이전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법화사는 비보사찰로서 한때는 노비가 280명에 이르었으나 1408년에 30명으로 감축되는 등 쇠퇴하기 시작하엿으며, 1406년(태종 6) 6월에는 중국 명의 요구로 원에서 제작한 미타삼존불상이 중국의 명으로 강제 이송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83년 발굴조사를 할때 현 대웅전 자리에서 법당지로 보이는 건물터를 발견하였으며 규모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로 기단면적이 약 330㎡며 엄청 큰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과 기와조각들을 보면 10~12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제주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던 곳이다.
◆ -느낀점-
법화사지는 제주도의 불교 명맥을 유지하던 아주 고귀한 곳이었다. 처음 법화사지를 방문하였을 때는 흔적이 대부분 소실 되어있었으며 몇 남지 않아있자 조금 실망하였으나 법화사지를 돌아볼수록 고유한 매력이 있었으며 왜 사람들이 제주불교는 법화사지라 하는지 알았으며 법화사지란 이곳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주도 불교문화가 이렇게 발전을 하였으며 이곳이 제주 불교의 시초, 맥을 이어나가는 곳 이며 앞으로 세월이 지나더라도 옛 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변하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하원동 탐라왕자묘
위의 사진이 하원동 탐라왕자묘이다. 탐라왕자묘는 서귀포시 하원동 21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2000년 6월 21일 제주도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었다. 하원동 탐라왕자묘는 모두 3기이며 이곳의 대한 기록은 이원조 제주목사가 지은 탐라지초본에 기록되어져있다. 또한 이 묘지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일반적인 묘제 형태인 계단식 네모돌널무덤 3기이며 잘 다듬은 4~8단의 판석과 할석으로 축조한 분묘이며 방형석곽묘로서 목관을 사용하였다. 축조는 고려말 조선초기(13~1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대의 자기편과 소옥 혼유석 석재향료 문인석 등이 출토되어 당 시대의 고위층 무덤으로 추정되어지며 제주도 묘제사 변천과정에 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문화제이다 하원동 탐라왕자묘 제 1,2,3호는 1910 년 여러차례 도굴되었으나 2001년도에 복원하였다.
가장 남쪽에 있는 제1호분은 3기중 가장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분묘이며 좌우에 문인석이 있으며 점판악 판석을 받침돌로받치고 현무암 관석을 세로로 맞춰 세워 곽을 만들었다.
제 2호분은 3기중 가운데에 위치해있으며 1호분과는 달리 점판암 화석을 7~8단을 수평쌓기하여 곽을 만들었다. 제 3호분은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3기중 가장먼저 축조되었고 현무암 판석을 세로로 맞춰 곽을 만들었다.
◆ -느낀점-
하원동 탐라왕자묘를 처음 갔을때 나의 생각은 참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다. 이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옛날의 묘의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였으며 옛날 탐라국의 사람들의 삶의 지혜중 장례제도에 대하여 다시 생각이 들었으며 옛 선인시대 고인돌 외의 묘제사를 처음 본 것이라 제주도의 묘제사에 대하여 더욱 자세하게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묘를 보고난 뒤 탐라국 시대에 왕족이 아니더라도 고위 계층이면 묘지를 건설하고 그 묘지에서 장례를 지낼수 있으며 지금과 비슷하게 사람을 장례제도 했다는 사실도 또한 놀라운 사실이었으며 그 시대의 사람들도 다 자신들만의 지위와 그 사람의 계층을 이런 묘제사까지 나타낸 부분이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하고 웅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제주도의 묘제사에 대하여 부족하던 생각이 한번 더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5.존자암지
위 사진은 존자암지로 존자암지는 서귀포시 하원동 산 1-1 1200m블래오름 기슭에 위치해 있다. 존자암지는 1995년 7월 13일 제주도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800㎡이다. 나한도량으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탐라지) 등 옛 문헌에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로 기록되어 있으며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특히 (대장경)과 (고려대장경)(법주기)에 “석가모니 제자 열여섯 존자 중 여섯 번째 발타리존자가 탐몰라주에서 불도를 전파하였다”는 기록되어 있었다.
1993∼1994년까지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건물지, 부도, 배수시설, 기와편, 분청사기편, 백자편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건물지 북쪽에 있는 부도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던 것으로 전하며, (탐라지)에는 “본래의 존자암지는 영실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 -느낀점-
처음 존자암지가 산기슭에있고 또한 마지막 탐방지라 매우 가기 힘들고 지쳤었다. 그러나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맑은 공기와 새소리 그리고 산 내음을 맡으며 올라가는 어느새 존자암지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약수를 마신 뒤 존자암지를 살펴보는데 발타리존자가 탐몰라주에서 불도를 전파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조용하였고 성스러운 곳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으며 이 자그마한 성지가 불교계의 엄청난 곳 이란 생각을 하니 또 한번 엄숙하게 생각이 되었다.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마치 신의 손길만 닿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으며 진짜 마치 내가 불교의 신선세계의 온것 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바쁜 일상에 지쳐 주변을 못보면서 가기보다는 쉬엄쉬엄 마치 그냥 일상의 여유처럼 주변의 자연 만물도 살펴보며 존자암지를 가서 한번 관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마치 내 자신이 부처의 마음을 가진다는 편안한 생각이 들었던 곳이었다.
  • 가격9,66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3.12.16
  • 저작시기2013.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9807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