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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민중이었음을 믿고 싶지만, 역사는 이긴 자만을 기억한다. 로마는 기억되었다. 그리고 패자였지만 위대한 한니발도 기억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과 노예로 전락한 민중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관행이 서양에서 발달한 것도 실제로는 동양의 지배자가 직접 전쟁터에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전쟁 비용을 부담했을 뿐 아니라 평민보다 먼저 전장에 나가 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발적 참전은 개인적 용기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신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던 로마 사회 분위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로마 최고의 권력자인 카이사르가 험난한 갈리아 정복에 나선 것도 전장에서 세운 공로가 적다는 ‘결격사유’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중국의 한제국과 로마제국이 가장 달랐던 것은 중앙권력의 힘이었다. 중국의 천자는 ‘하늘의 아들’로서 천하를 소유했지만 시민과 원로원의 지지로 권위를 유지하는 로마의 황제는 제국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에 앞서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진시황이 중원을 평정한 뒤 쌓은 만리장성은 ‘중화세계의 문을 걸어 닫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명대(明代) 초기만 해도 엇비슷했던 두 문명의 힘은 유럽이 르네상스와 국민국가 시대를 거치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은 유럽에서는 각종 동력기계들이 발명됐지만 중국에서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킨 동력은 여전히 인력과 축력(畜力)이었다.”
역사란 아이러니의 연속이기도 하다. 13세기 의회주의가 처음 싹을 틔운 곳도 유럽의 변방인 잉글랜드였다. 그나마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와 활자는 종교개혁의 바람을 가속화시켰다. 현생 인류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아프리카에서는 4000만 명의 흑인 노예가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사운드인 비틀스가 노래를 시작한 영국의 리버풀은 노예무역을 통해 번성한 곳이다. 동일한 사실이라도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완전하게 달라질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지은 E.H. 카도 “역사적 사실보다 사관과 해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역사란 이를 평가하는 사람의 문제란 얘기다. 한번쯤은 역사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면서 읽어볼만한 ‘로마인의 이야기’ 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관행이 서양에서 발달한 것도 실제로는 동양의 지배자가 직접 전쟁터에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전쟁 비용을 부담했을 뿐 아니라 평민보다 먼저 전장에 나가 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발적 참전은 개인적 용기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신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던 로마 사회 분위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로마 최고의 권력자인 카이사르가 험난한 갈리아 정복에 나선 것도 전장에서 세운 공로가 적다는 ‘결격사유’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중국의 한제국과 로마제국이 가장 달랐던 것은 중앙권력의 힘이었다. 중국의 천자는 ‘하늘의 아들’로서 천하를 소유했지만 시민과 원로원의 지지로 권위를 유지하는 로마의 황제는 제국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에 앞서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진시황이 중원을 평정한 뒤 쌓은 만리장성은 ‘중화세계의 문을 걸어 닫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명대(明代) 초기만 해도 엇비슷했던 두 문명의 힘은 유럽이 르네상스와 국민국가 시대를 거치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은 유럽에서는 각종 동력기계들이 발명됐지만 중국에서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킨 동력은 여전히 인력과 축력(畜力)이었다.”
역사란 아이러니의 연속이기도 하다. 13세기 의회주의가 처음 싹을 틔운 곳도 유럽의 변방인 잉글랜드였다. 그나마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와 활자는 종교개혁의 바람을 가속화시켰다. 현생 인류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아프리카에서는 4000만 명의 흑인 노예가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사운드인 비틀스가 노래를 시작한 영국의 리버풀은 노예무역을 통해 번성한 곳이다. 동일한 사실이라도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완전하게 달라질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지은 E.H. 카도 “역사적 사실보다 사관과 해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역사란 이를 평가하는 사람의 문제란 얘기다. 한번쯤은 역사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면서 읽어볼만한 ‘로마인의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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