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학 - 인도수학의 특징 및 인도의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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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도의 수학 - 인도수학의 특징 및 인도의 수학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인도수학의 특징

Ⅲ. 인도의 수학자

본문내용

다. 음수의 사용은 2차방정식을 세가지로 분류하고, 음과 양의 두 근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부라마굽타는 헤론 및 디오판투스의 법칙에 의하여 2차방정식을 풀고, 이에 관해 일반적인 설명을 하였다. 바스카라는 특별한 방법을 써서 3, 4차방정식의 몇가지 경우에 관해 해를 구하였다.
다른 한편, 인도에서는 부정방정식의 이론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분야에 있어서의 인도인의 업적은 기하학에 있어서의 그리스인의 그것에 견줄 수 있다. 그들은 1차의 부정방정식 의 이론을 창조하였으며, 이 방정식의 해를 오늘날의 연분수(連分數)의 방법으로 정수해를 얻고 있다. 이 1차의 디오판투스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한 사람은 브라마굽타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방정식이 정수해를 갖기 위해서는 와 의 최대공약수가 의 약수이어야 한다. 나아가 브라마굽타는 와 가 소로 소이면, 위의 방정식의 모든 해는 (단, 은 임의의 정수)에 의하여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와 같은 형의 2차방정식에 관해서도 연구하여 일반적인 방법을 수립하였다.
그 밖에 수학자로, 19세기에 등장한 천재 라마누잔을 들 수 있다. 20세기 인도의 천재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이 산술과 대수에 관해서 바스카라와 거의 비슷한 초인적인 연산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일찍이 영국 수학자 하디가 푸트니 병원을 방문하여, 입원하고 있던 라마누잔에게 1729라는 하찮은 번호의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 수가 실제로 재미있는 수로서 두 쌍의 세제곱수의 합으로 되는 최소의 정수 임을 그 자리에서 지적했다고 한다. 분할함수의 성질에 대한 선구적 발견을 포함하여 정수론에 공헌했다. 그의 비범한 재능은, 15세 때 G. S. 카의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의 기초 결과 개요』 사본을 읽으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6,000개의 정리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는 이러한 정리들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자신의 정리와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1911년 그는 <인도수학회지>에 첫 논문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1914년 영국으로 건너간 라마누잔은 하디의 개인 지도를 받으며 몇 가지 공동 연구를 하였다.
라마누잔은 수학의 발전 과정에는 거의 무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분수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수학자보다 통달해 있었다. 그는 리만 급수, 타원적분, 초기하급수, 제타 함수의 함수방정식, 발산급수 이론 등을 연구했다. 특히 수의 분할연구에서 많은 진보를 이루었는데, 이로 인해 그의 논문들이 영국과 유럽의 학술지에 실리게 되었고, 1918년에는 인도인으로는 최초로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결핵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인도로 돌아왔으나 이듬해에 사망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학자들 사이에서 레온하르트 오일러와 캬를 야코비 이래 필적할 상대가 없는 천재로 인식되고 있다.
인도의 수학은 사원(寺院)의 명상적인 생활 속에서 태어난 천문학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용상의 필요 특히, 상거래나 무역 등에 의해서도 크게 자극을 받았다. 결국 이 두 요인이 상승적으로 작용하여, 인도에서는 수량과 관련있는 대수학이 발달하였다. 반면, 기하학에 관해서는 논리적인 증명이라든지 계통적인 체계 등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요컨대 인도의 수학은 계량을 바탕으로 하는 계산이나 공식을 주된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 이집트의 기하학관과 엇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집트가 측량이라는 입장에서 ‘면적’에 중점을 두었다면, 인도에서는 계산이라는 입장에서 ‘수량’에 치중하였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이 수량에 중점을 둔 관점이 인도수학으로 하여금 10진위치적 기수법을 발명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수법은 이미 기원 700년 쯤 인도의 무역업자들 사이에 널리 쓰이고 있었는데, 수 개념에 대한 그들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뛰어난 계산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0진 기수법의 사용은 오늘날 상용되고 있지만, 이 편리하고도 효과적인 수의 표현법은 거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터득되는 것은 결코 아니고, 또 직관이나 경험으로부터 쉽사리 고안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 유럽이나 소아시아, 이집트 등 어디에도 당시에 10집법을 사용하였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아리비아에서는 이 기수법이 기원 773년 쯤에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있는데, 인도로부터 수입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인도에서는 당시에 이미 영(零)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으며, 이것이 아라비아로 전파되었으며 일정한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유럽까지 전달되었다.
수학에 대한 관심의 방향이나 수학을 다루는 자세에 있어서, 인도인은 그리스인과는 판이하였으며 오히려 중국인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천원술(天元術)을 발명한 중국인처럼 정확한 근사치를 얻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수학은 인도수학으로부터 적어도 두 가지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 그 하나는 인도아라비아식 10진기수법이고, 또 하나는 사인함수에 의한 삼각법이다. 한편, 현대수학은 해석기하학과 미적분학 분야를 그 발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인도에서 발달한 부정해석학(不定解析學)이 인도 자체에서는 해석기하학이나 미적분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인도의 수학사에는 아직도 불분명한 점이 많다. 특히 수학자나 저술의 연대를 결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저자를 밝힐 수 없는 수학책 등을 수록한 중요한 문헌인 <바크샤리 사본>에 관해서조차 그 내용이 3내지 4세기로 추정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8내지 9세기의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앞에서 소개한 아리아바티아도 그 저술 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아리아바타라는 이름의 인도 수학자는 두 사람이 있었으며, 그 때문에 우리의 추측대로 아리아바티아가 연장자인 아리아바타의 저술인지에 대하여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의 수학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이러한 연대 상의 불확실성은 앞으로의 극복되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도수학을 바라보는 서양 중심의 편협한 시각은 배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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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29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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