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흥덕왕을 아시나요?』
〈들어가며〉
Thema Ⅰ
흥덕왕은 愛妻家
Thema Ⅱ
신라 하대의 分水嶺(분수령) 위에 선 흥덕왕
▶헌창, 반란을 일으키다◀
▶수종, 진가를 드러내다◀
▶흥덕왕의 등극◀
▶개혁을 위한 몸부림◀
1.귀족 연대성 회복
2. 율령체제 강화
▶ 흥덕왕의 개혁은 과연 실패한 개혁인가? ◀
Thema Ⅲ
흥덕왕대의 신라 패션의 경향
1. 幞頭(복두)
2. 梳(빗)과 釵(비녀)
3. 表衣(표의)
4. 內衣(내의)
5.半臂(반비)
Thema Ⅳ
흥덕왕과 茶(차)이야기
<전남 보성 차밭>
<차 마신 후 읊음(茶後小詠>
<나오며>
※참고문헌
〈들어가며〉
Thema Ⅰ
흥덕왕은 愛妻家
Thema Ⅱ
신라 하대의 分水嶺(분수령) 위에 선 흥덕왕
▶헌창, 반란을 일으키다◀
▶수종, 진가를 드러내다◀
▶흥덕왕의 등극◀
▶개혁을 위한 몸부림◀
1.귀족 연대성 회복
2. 율령체제 강화
▶ 흥덕왕의 개혁은 과연 실패한 개혁인가? ◀
Thema Ⅲ
흥덕왕대의 신라 패션의 경향
1. 幞頭(복두)
2. 梳(빗)과 釵(비녀)
3. 表衣(표의)
4. 內衣(내의)
5.半臂(반비)
Thema Ⅳ
흥덕왕과 茶(차)이야기
<전남 보성 차밭>
<차 마신 후 읊음(茶後小詠>
<나오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는데, 그때부터 차 마시는 풍속이 성행했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으로 많은 물품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 도래한 차는 일부 귀족층과 왕족들의 향유물이었을 것이다. 신라에서 차를 마신 계층은 왕과 귀족, 선비층인 학자와 화랑, 승려, 그리고 백성들도 포함되어 상당히 폭 넓은 다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민족 고유의 덕목인 世俗五戒(세속오계) 이외에도 유학을 공부하였다. 茶人(다인) 유학자로는, 문묘에 배향된 설총과 최치원이 기록에 남아 전한다. 설총은 <花王戒(화왕계)>에서 할미꽃을 빌어 왕에게 말하기를 “차와 술로써 정신을 깨끗하게 하십시오(茶酒以淸神)”라고 충간하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있으며, 최치원은 <햇차에 감사하는 글>에서, 당시에도 차는 승려나 신선, 그리고 유생이 몹시 귀히 여기고 좋아하는 음료이며, 갈증을 풀고 근심을 없애주는 효능이 있음을 기록하였다.
가야 수로왕때부터 기록이 남아있는 차가 흥덕왕때 성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흥덕왕 개인의 기호와 성격으로부터 생각해 볼 수 있다. 흥덕왕 9년(834)의 교서에서 볼 수 있듯이 왕은 節儉(절검)을 숭상하고 勤政(근정)과 개혁에 남다른 열의를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장화부인에 대한 사랑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은 평소 다정다감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한 왕은 어지러운 정국을 통치하면서 차가 가지는 여러 가지 효능과 풍류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옛 중국의 남북조시대(439-589)에 이르러 생겨난 茶菓(다과)라는 말과 함께 손님에게 대접하고, 스스로 즐기는 다문화는 이 시기 더욱 발전하였음이 틀림없다.
【향기로운 차는 육청보다 좋아 芳茶冠六淸
그 맛이 천하에 넘치네 溢味播九區
인생살이 즐기려 한다면 人生苟安樂
이곳도 노닐 만하리 玆土聊可娛 】
3세기 西晉(서진)의 시인 張載(장재)가 당시 차의 최대 산지인 촉나라의 서울 청두(成都)의 한 누각에 올라 읊은 시구이다.
또한 당시 신라는 신문왕2년(682)에 국학이 설치되면서 유교사상을 왕권의 전제화 실현에 밑바탕으로 두려했다. 이후 신라하대의 왕들은 개혁을 할 때마다 국학을 정비 개편하면서 유교적이념에 입각한 정치를 위해 애썼다. 그러한 유교적 이념과 차문화의 어울림은 당시 유교를 공부하는 육두품학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시대를 앞서기는 하나 李穡(이색1328-1396)의 한편의 시를 통해 느껴 보고자 한다.
<차 마신 후 읊음(茶後小詠>
【작은 병에 샘물을 길어
깨어진 노구솥에 노아차를 달이네
귓뿌리가 갑자기 밝아지고
코로는 차향을 맡네
별안간 눈에 가리운 편견이 없어지니
밖으로 보이는 데에 티끌이 없구나
혀로 맛본 후 목으로 내려가니
살과 뼈가 똑발라 비뚤어짐이 없도다
마음은 한 뙤기 좁은 밭
밝고 깨끗하니 생각에 그릇됨이 없네
어느 겨를에 천하 다스리는 일에 생각이 미치겠는가
군자는 마땅히 집안을 바르게 해야 하리】
위의 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손수 물을 길어옴→ 차를 끓임→ 귀와 코가 즐거움→ 눈이 밝아짐→ 사물을 바로 봄→ 혀로 차를 맛봄→ 살과 뼈가 똑바름→ 마음이 밝고 깨끗함→ 바른 성정→ 집안을 바로 다스림→.....→ 천하를 생각함
즉 손수 차를 끓여 마시니 사물을 바로 보게 되며, 바른성정을 하여 齊家(제가)하는 수양 공부가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大學(대학)』에서 말하는 儒學(유학)의 道(도)이자 군자가 추구하는 인격수양의 완성의 길을 말한다.
이처럼 신하여 치국평천하를 말하는 유학과 정신을 바르게 하는 차의 성행은 당시 분열하여 기득권만을 챙기려는 진골귀족들과의 알력 속에서 새로운 왕권을 탄생시키려는 흥덕왕이 외적으로, 내적으로 기대를 걸었던 정신적 돌파구였을지도 모른다.
【빗장을 잠그고 책을 읽고 잡스럽게 사귀지 않으며
名僧高士(명승고사)와 담론하고 마시기를 종일,
항시 작은 배를 타고 山寺(산사)를 왕래한다
몸에 걸치는 것이라고는 오직 해를 가리는 두건과 나막신에
粗服(조복)과 내복뿐, 왕왕 홀로 뜰을 갈고 불경을 암송하고 옛시를 읊는다
지팡이로 숲속 나무를 치고 흐르는 물을 손에 떠내고 놀며
평탄하면 더욱 배회하고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해가 지고 흥이 다하면
소리 높여 울며 돌아온다 】
재위 11년(834) 한 겨울에 못다한 회한을 안고 생을 마친 흥덕왕의 영정앞에 茶聖(다성) 육우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오며>
네 가지 주제별로 흥덕왕의 인생에 대해 살펴보았다. 흥덕왕의 사랑과, 정치인생, 그리고 흥덕왕이 펼쳤던 개혁정치의 일부인 의복의 변화와 더불어 흥덕왕이 즐겨했을 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흥덕왕이라는 인물의 인생의 일부분을 살펴보았다. 역사는 흥덕왕을 어지러웠던 신라 하대의 분수령 위에서 역대의 왕들을 이어 개혁정치를 펼치려 했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 왕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한 삶을 살았는가? 사료들을 보면 왕들의 일생은 가엾기 짝이 없다. 귀족들과 싸워야하고, 왕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도 없었다. 흥덕왕 또한 그러한 왕족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는 흥덕왕의 일생을 조금이나마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흥덕왕이 주는 정치적 교훈도 아니요, 역사적 교훈도 아닌, 김수종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물론 위의 4가지 주제로는 한계가 있어 이것으로 흥덕왕이라는 인물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못다한 흥덕왕에 대한 평가는 각자에 맡겨두며 발표를 마친다.
※참고문헌
李基東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 /歷史學報/ 역사학회/ 1980
李基東 新羅 興德王代의 政治와 社會/ 국사관논총/ 국사편찬위원회/ 1991
李基東 新羅 奈勿王系의 血緣意識/ 一然과 三國遺事/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학연구소/1995
金昌謙 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京仁文化史/ 200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11 /1996
金貞振/ 신라시대의 복식(삼국사기를 중심으로)/경주문화/경주문화원/2001
이광주/ 東과西의 茶이야기/한길사/2002
정영선/ 茶道哲學/ 너럭바위/ 1996
디지털 한국학 사이트(http://www.koreandb.net/) - 삼국사기 원문 참고
중국과의 교역으로 많은 물품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 도래한 차는 일부 귀족층과 왕족들의 향유물이었을 것이다. 신라에서 차를 마신 계층은 왕과 귀족, 선비층인 학자와 화랑, 승려, 그리고 백성들도 포함되어 상당히 폭 넓은 다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민족 고유의 덕목인 世俗五戒(세속오계) 이외에도 유학을 공부하였다. 茶人(다인) 유학자로는, 문묘에 배향된 설총과 최치원이 기록에 남아 전한다. 설총은 <花王戒(화왕계)>에서 할미꽃을 빌어 왕에게 말하기를 “차와 술로써 정신을 깨끗하게 하십시오(茶酒以淸神)”라고 충간하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있으며, 최치원은 <햇차에 감사하는 글>에서, 당시에도 차는 승려나 신선, 그리고 유생이 몹시 귀히 여기고 좋아하는 음료이며, 갈증을 풀고 근심을 없애주는 효능이 있음을 기록하였다.
가야 수로왕때부터 기록이 남아있는 차가 흥덕왕때 성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흥덕왕 개인의 기호와 성격으로부터 생각해 볼 수 있다. 흥덕왕 9년(834)의 교서에서 볼 수 있듯이 왕은 節儉(절검)을 숭상하고 勤政(근정)과 개혁에 남다른 열의를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장화부인에 대한 사랑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은 평소 다정다감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한 왕은 어지러운 정국을 통치하면서 차가 가지는 여러 가지 효능과 풍류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옛 중국의 남북조시대(439-589)에 이르러 생겨난 茶菓(다과)라는 말과 함께 손님에게 대접하고, 스스로 즐기는 다문화는 이 시기 더욱 발전하였음이 틀림없다.
【향기로운 차는 육청보다 좋아 芳茶冠六淸
그 맛이 천하에 넘치네 溢味播九區
인생살이 즐기려 한다면 人生苟安樂
이곳도 노닐 만하리 玆土聊可娛 】
3세기 西晉(서진)의 시인 張載(장재)가 당시 차의 최대 산지인 촉나라의 서울 청두(成都)의 한 누각에 올라 읊은 시구이다.
또한 당시 신라는 신문왕2년(682)에 국학이 설치되면서 유교사상을 왕권의 전제화 실현에 밑바탕으로 두려했다. 이후 신라하대의 왕들은 개혁을 할 때마다 국학을 정비 개편하면서 유교적이념에 입각한 정치를 위해 애썼다. 그러한 유교적 이념과 차문화의 어울림은 당시 유교를 공부하는 육두품학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시대를 앞서기는 하나 李穡(이색1328-1396)의 한편의 시를 통해 느껴 보고자 한다.
<차 마신 후 읊음(茶後小詠>
【작은 병에 샘물을 길어
깨어진 노구솥에 노아차를 달이네
귓뿌리가 갑자기 밝아지고
코로는 차향을 맡네
별안간 눈에 가리운 편견이 없어지니
밖으로 보이는 데에 티끌이 없구나
혀로 맛본 후 목으로 내려가니
살과 뼈가 똑발라 비뚤어짐이 없도다
마음은 한 뙤기 좁은 밭
밝고 깨끗하니 생각에 그릇됨이 없네
어느 겨를에 천하 다스리는 일에 생각이 미치겠는가
군자는 마땅히 집안을 바르게 해야 하리】
위의 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손수 물을 길어옴→ 차를 끓임→ 귀와 코가 즐거움→ 눈이 밝아짐→ 사물을 바로 봄→ 혀로 차를 맛봄→ 살과 뼈가 똑바름→ 마음이 밝고 깨끗함→ 바른 성정→ 집안을 바로 다스림→.....→ 천하를 생각함
즉 손수 차를 끓여 마시니 사물을 바로 보게 되며, 바른성정을 하여 齊家(제가)하는 수양 공부가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大學(대학)』에서 말하는 儒學(유학)의 道(도)이자 군자가 추구하는 인격수양의 완성의 길을 말한다.
이처럼 신하여 치국평천하를 말하는 유학과 정신을 바르게 하는 차의 성행은 당시 분열하여 기득권만을 챙기려는 진골귀족들과의 알력 속에서 새로운 왕권을 탄생시키려는 흥덕왕이 외적으로, 내적으로 기대를 걸었던 정신적 돌파구였을지도 모른다.
【빗장을 잠그고 책을 읽고 잡스럽게 사귀지 않으며
名僧高士(명승고사)와 담론하고 마시기를 종일,
항시 작은 배를 타고 山寺(산사)를 왕래한다
몸에 걸치는 것이라고는 오직 해를 가리는 두건과 나막신에
粗服(조복)과 내복뿐, 왕왕 홀로 뜰을 갈고 불경을 암송하고 옛시를 읊는다
지팡이로 숲속 나무를 치고 흐르는 물을 손에 떠내고 놀며
평탄하면 더욱 배회하고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해가 지고 흥이 다하면
소리 높여 울며 돌아온다 】
재위 11년(834) 한 겨울에 못다한 회한을 안고 생을 마친 흥덕왕의 영정앞에 茶聖(다성) 육우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오며>
네 가지 주제별로 흥덕왕의 인생에 대해 살펴보았다. 흥덕왕의 사랑과, 정치인생, 그리고 흥덕왕이 펼쳤던 개혁정치의 일부인 의복의 변화와 더불어 흥덕왕이 즐겨했을 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흥덕왕이라는 인물의 인생의 일부분을 살펴보았다. 역사는 흥덕왕을 어지러웠던 신라 하대의 분수령 위에서 역대의 왕들을 이어 개혁정치를 펼치려 했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 왕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한 삶을 살았는가? 사료들을 보면 왕들의 일생은 가엾기 짝이 없다. 귀족들과 싸워야하고, 왕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도 없었다. 흥덕왕 또한 그러한 왕족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는 흥덕왕의 일생을 조금이나마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흥덕왕이 주는 정치적 교훈도 아니요, 역사적 교훈도 아닌, 김수종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물론 위의 4가지 주제로는 한계가 있어 이것으로 흥덕왕이라는 인물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못다한 흥덕왕에 대한 평가는 각자에 맡겨두며 발표를 마친다.
※참고문헌
李基東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 /歷史學報/ 역사학회/ 1980
李基東 新羅 興德王代의 政治와 社會/ 국사관논총/ 국사편찬위원회/ 1991
李基東 新羅 奈勿王系의 血緣意識/ 一然과 三國遺事/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학연구소/1995
金昌謙 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京仁文化史/ 200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11 /1996
金貞振/ 신라시대의 복식(삼국사기를 중심으로)/경주문화/경주문화원/2001
이광주/ 東과西의 茶이야기/한길사/2002
정영선/ 茶道哲學/ 너럭바위/ 1996
디지털 한국학 사이트(http://www.koreandb.net/) - 삼국사기 원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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