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절에서 요한이 본 영혼들을 한 그룹 (순교자만)으로 이해하는 주석가들은 나머지 죽은 자 가운데 나머지 신자들을 포함시키고 있으나 우리가 이미 본 계 20장의 주요 관심사에 따라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23). Robert H. Mounce, The Book of Revelation (NICONT series, Grand Rapids: Eerdmans, 1977), pp. 354, 365, 367.
3.3. 셋째 부분 C: 7-10절
이 부분은 첫 번째 부분과 주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제적으로는 사탄의 운명과 관계되어 있고, 시간적으로 천년 후에 있을 사건으로 연결되어있다. 상징적인 천년이란 오랜 기간(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부터 재림이전까지 땅에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이요, 하늘에서 승리한 성도들이 중간기적 통치의 기간임)이 지나자 무저갱에 갇혔던 사탄은 잠시 풀려난다 (7절). 풀려나자 그는 천년 기간 동안 하지 못했던 만국을 속이는 일을 개시하여 곡과 마곡으로 상징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을 세계각체에서 모아 (8절),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자 하나님의 백성을 둘러싸 마지막 공격을 (여기서 싸움은 계 16:24; 19:19에 언급된 전쟁과 동일함)23). Hendriksen은 세 곳에서 언급된 전쟁은 동일한 전쟁을 말하는 것으로 지적하면서 계시록 20장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일한 싸움의 결과로 사탄에게 일어나는 운명이라고 바로 보았다 (More Than Conquerers, p.234).
하고자 하다 (9절 상반절) 하나님의 최종 심판으로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게 된다. 이 부분은 별로 주해 상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간단하게 한 두 가지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 가겠다. 8절에 겔 38-39에 있는 용어를 빌려 상징적으로 사용된 곡과 마곡은 어떤 특정한 지역의 군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주님의 재림 시까지 주님을 믿지 아니한 자들의 세계적인 집단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또 하나는 9절에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을 가리켜 지역적인 것으로 예루살렘이라고 하거나 어떤 일정한 지역으로 보기 보다는 주의 재림 시까지 살아 있는 주의 백성들의 교회 공동체로 봄이 옳을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10절이 마치 불과 유황 못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사탄이 최종적으로 거기에 던져지기 전에 적어도 천년 이전에 던져 진 것과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고 이미 19장에 묘사되었기 때문에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뿐이다. 기술의 관점에서는 먼저 19장에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먼저 다루어졌고, 20장에서는 사탄의 운명에 관하여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시간적인 관점에서는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이 어찌 그의 정치적인 대변자인 짐승과 종교적인 대변자인 거짓 선지가의 도움 없이 그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3.4. 넷째 부분 D: 11-15절
이 마지막 부분은 주제적인 면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죽은 성도들의 천상적인 천년기적인 복 (4-6절) 과 반대가 되는 죽은 불신자들의 마지막 운명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간단히 말하여 죽은 성도의 천년기적인 복과 불신 가운데 죽은 모든 죽은 자들의 영원한 심판으로 대조가 된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5절에 잠간 소개된 나머지 죽은 자들에 대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주해라고 볼 수가 있겠다.
먼저 11절에 하나님의 심판의 의로움과 순결성을 상징하는 백보좌가 나온다. 보좌에 앉으신 분은 분명하게 언급되지 아니했지만 아마도 계시록에 강조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계 4:2, 9; 5:1, 7, 13; 6:16; 7:10, 15; 19:4; 21:5). 이 백보좌 심판의 시기는 하늘과 땅이 (옛 하늘과 옛 땅) 없어 진 것을 보니 이것들이 없어진 직후 신천 신지의 도래 직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탄을 불과 유황 못에 집어넣은 후일 것이다.
12절은 앞에서 소개된 백보좌 심판대 사람들이 받을 심판의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심판의 기준을 알려주는 두 가지 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은 하나님의 백성인가의 여부를 밝혀주는 생명책이고, 나머지 하나는 각 사람의 행위를 모두 기록한 책이다.
13절은 옛 하늘과 땅이 사라지기 직전에 세상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죽었든지 모든 죽은 자가 백보좌 심판대에 서게 됨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망과 음부 (무덤 또는 죽음의 세계)가 의인화 되었다. 바로 이렇게 심판대 앞에 선 모든 불신 죽은 자들이 각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 결과에 따라 심판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음을 확인하고 둘째 사망인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 (14-15절).
우리는 여기서 이 백보좌 앞에 선 자들이 모두가 불신자 이겠느냐는 문제를 제기 할 수 있다. 모든 신자, 불신자가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 앞에 서리라는 것이 신약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 (마 25:46; 행 17:31; 롬 14:10; 고후 5:10; 딤후 4:1) 이지만 사도 요한은 여기서 신자들의 심판에 관하여 분명하게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의 관심은 복된 첫째 부활에 참예한 이미 죽은 성도들과는 반대로 둘째 사망의 저주에 참여하는 나머지 죽은 불신자들에 대하여 초점을 두고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살아있는 신자와 살아있는 불신자들이 이 심판의 자리에 있었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위에 열거된 성경 귀절들에 따라) 그는 그들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은 요한이 묘사하는 데로 죽은 자중에 한 사람도 (물론 죽은 불신자) 둘째 사망의 해를 피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언급만 있다. 반면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둘째 사망에 던져지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이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요한이 그려주는 백보좌 심판의 광경은 백보좌 심판에 관한 전부를 진술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불신자들의 운명의 관점에서 일 부분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21장에 가서 비로소 백보좌 심판 때 까지 살아 있던 자의 운명에 대하여 기록이 나온다 (1-7절은 신자들에 관하여, 8절은 불신자에 관하여).
3.3. 셋째 부분 C: 7-10절
이 부분은 첫 번째 부분과 주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제적으로는 사탄의 운명과 관계되어 있고, 시간적으로 천년 후에 있을 사건으로 연결되어있다. 상징적인 천년이란 오랜 기간(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부터 재림이전까지 땅에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이요, 하늘에서 승리한 성도들이 중간기적 통치의 기간임)이 지나자 무저갱에 갇혔던 사탄은 잠시 풀려난다 (7절). 풀려나자 그는 천년 기간 동안 하지 못했던 만국을 속이는 일을 개시하여 곡과 마곡으로 상징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을 세계각체에서 모아 (8절),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자 하나님의 백성을 둘러싸 마지막 공격을 (여기서 싸움은 계 16:24; 19:19에 언급된 전쟁과 동일함)23). Hendriksen은 세 곳에서 언급된 전쟁은 동일한 전쟁을 말하는 것으로 지적하면서 계시록 20장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일한 싸움의 결과로 사탄에게 일어나는 운명이라고 바로 보았다 (More Than Conquerers, p.234).
하고자 하다 (9절 상반절) 하나님의 최종 심판으로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게 된다. 이 부분은 별로 주해 상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간단하게 한 두 가지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 가겠다. 8절에 겔 38-39에 있는 용어를 빌려 상징적으로 사용된 곡과 마곡은 어떤 특정한 지역의 군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주님의 재림 시까지 주님을 믿지 아니한 자들의 세계적인 집단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또 하나는 9절에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을 가리켜 지역적인 것으로 예루살렘이라고 하거나 어떤 일정한 지역으로 보기 보다는 주의 재림 시까지 살아 있는 주의 백성들의 교회 공동체로 봄이 옳을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10절이 마치 불과 유황 못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사탄이 최종적으로 거기에 던져지기 전에 적어도 천년 이전에 던져 진 것과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고 이미 19장에 묘사되었기 때문에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뿐이다. 기술의 관점에서는 먼저 19장에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먼저 다루어졌고, 20장에서는 사탄의 운명에 관하여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시간적인 관점에서는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이 어찌 그의 정치적인 대변자인 짐승과 종교적인 대변자인 거짓 선지가의 도움 없이 그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3.4. 넷째 부분 D: 11-15절
이 마지막 부분은 주제적인 면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죽은 성도들의 천상적인 천년기적인 복 (4-6절) 과 반대가 되는 죽은 불신자들의 마지막 운명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간단히 말하여 죽은 성도의 천년기적인 복과 불신 가운데 죽은 모든 죽은 자들의 영원한 심판으로 대조가 된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5절에 잠간 소개된 나머지 죽은 자들에 대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주해라고 볼 수가 있겠다.
먼저 11절에 하나님의 심판의 의로움과 순결성을 상징하는 백보좌가 나온다. 보좌에 앉으신 분은 분명하게 언급되지 아니했지만 아마도 계시록에 강조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계 4:2, 9; 5:1, 7, 13; 6:16; 7:10, 15; 19:4; 21:5). 이 백보좌 심판의 시기는 하늘과 땅이 (옛 하늘과 옛 땅) 없어 진 것을 보니 이것들이 없어진 직후 신천 신지의 도래 직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탄을 불과 유황 못에 집어넣은 후일 것이다.
12절은 앞에서 소개된 백보좌 심판대 사람들이 받을 심판의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심판의 기준을 알려주는 두 가지 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은 하나님의 백성인가의 여부를 밝혀주는 생명책이고, 나머지 하나는 각 사람의 행위를 모두 기록한 책이다.
13절은 옛 하늘과 땅이 사라지기 직전에 세상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죽었든지 모든 죽은 자가 백보좌 심판대에 서게 됨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망과 음부 (무덤 또는 죽음의 세계)가 의인화 되었다. 바로 이렇게 심판대 앞에 선 모든 불신 죽은 자들이 각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 결과에 따라 심판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음을 확인하고 둘째 사망인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 (14-15절).
우리는 여기서 이 백보좌 앞에 선 자들이 모두가 불신자 이겠느냐는 문제를 제기 할 수 있다. 모든 신자, 불신자가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 앞에 서리라는 것이 신약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 (마 25:46; 행 17:31; 롬 14:10; 고후 5:10; 딤후 4:1) 이지만 사도 요한은 여기서 신자들의 심판에 관하여 분명하게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의 관심은 복된 첫째 부활에 참예한 이미 죽은 성도들과는 반대로 둘째 사망의 저주에 참여하는 나머지 죽은 불신자들에 대하여 초점을 두고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살아있는 신자와 살아있는 불신자들이 이 심판의 자리에 있었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위에 열거된 성경 귀절들에 따라) 그는 그들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은 요한이 묘사하는 데로 죽은 자중에 한 사람도 (물론 죽은 불신자) 둘째 사망의 해를 피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언급만 있다. 반면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둘째 사망에 던져지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이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요한이 그려주는 백보좌 심판의 광경은 백보좌 심판에 관한 전부를 진술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불신자들의 운명의 관점에서 일 부분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21장에 가서 비로소 백보좌 심판 때 까지 살아 있던 자의 운명에 대하여 기록이 나온다 (1-7절은 신자들에 관하여, 8절은 불신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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