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천상병 작가소개
2. 천상병의 시세계
3. 일상적 현실인식
2. 천상병의 시세계
3. 일상적 현실인식
본문내용
게로 가서
사탕을 한 봉지
사줬더니 좋아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
<난 어린애가 좋다>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천상병 후기 시에 드러나는 특징중의 하나인 동심 지향성을 엿볼 수 있는 시편이 다. 환갑의 나이에도 어린이와 사탕 한 봉지로 친구가 되어 서슴없이 요놈이라 불 러대며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건, 그건 그만큼 시인이 맑고 천진하다는 것이다. 천상병 시에서 동심 지향성은 그대로 선 지향성의 표상이자 천진성의 시학에 원천 이 되며, 휴머니즘 정신의 실질적 기반이 된다. 이것은 현실도피나 패배의식에서 비 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천상병 특유의 생래적 선 지향성과 휴머니즘의 자연스런 유도 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외에도 그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시에 많이 담았다. 아내, 장모님, 조카 영진, 아이들을 비롯한 주변인물과 똘똘이, 복실이 등의 강아지들이 다.
이처럼 천상병의 후기시는 전기시 와는 사뭇 다르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친 근한 일상의 소재들을 바탕으로 시적 변용이나, 수사 또는 상징적 의미를 배제한 채 일상적인 관찰을 투명하게 표현해낸다.
귀천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순명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이러한 태도는 ‘하늘’이 자기 존재가 비롯된 곳이며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이슬'과 '노을빛'은 모두 잠깐 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말한 것은 삶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시인의 소망을 말하기 위한 것임에 주목해야한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문자 그대로 무욕(無慾)과 무사심(無私心)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무욕과 무사심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굳이 삶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처럼 담담하게 삶과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자신을 소풍 나왔다가 천상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맑고 깨끗한 삶에 대한 자족감을 보여 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움'의 주체는 이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가난과 슬픔과 고통의 연속인 삶이요, 그에게 오욕(汚辱)과 가난을 강요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시인이 세속적인 욕망이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영혼의 소요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자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
세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매 첫 행에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죽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말 대신에 하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사람의 말투다. 두고 가야할 세상에 대해 미련도 집착도 없는 무욕(無慾)의 경지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하늘로 돌아가면서 그가 동반할 것이라고는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과 '노을빛'밖에 없다는 말에서도 이 세상의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운 자의 달관을 보게 된다. 이승에서의 삶을 하나의 '소풍'에 견줄 수 있다면, 화자는 마치 하늘에서 잠시 귀양살러 온 신선과도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를 신선 같은 삶을 산 자의 노래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의 삶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어지간히 괴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다음에 놓인 말없음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라. 아름다웠다는 말은 괴로웠다는 말의 역설처럼 들리지는 않는가. 그러나 괴롭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괴로웠다고 말하지 않는 데 이 시인의 미덕이 있다.
사탕을 한 봉지
사줬더니 좋아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
<난 어린애가 좋다>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천상병 후기 시에 드러나는 특징중의 하나인 동심 지향성을 엿볼 수 있는 시편이 다. 환갑의 나이에도 어린이와 사탕 한 봉지로 친구가 되어 서슴없이 요놈이라 불 러대며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건, 그건 그만큼 시인이 맑고 천진하다는 것이다. 천상병 시에서 동심 지향성은 그대로 선 지향성의 표상이자 천진성의 시학에 원천 이 되며, 휴머니즘 정신의 실질적 기반이 된다. 이것은 현실도피나 패배의식에서 비 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천상병 특유의 생래적 선 지향성과 휴머니즘의 자연스런 유도 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외에도 그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시에 많이 담았다. 아내, 장모님, 조카 영진, 아이들을 비롯한 주변인물과 똘똘이, 복실이 등의 강아지들이 다.
이처럼 천상병의 후기시는 전기시 와는 사뭇 다르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친 근한 일상의 소재들을 바탕으로 시적 변용이나, 수사 또는 상징적 의미를 배제한 채 일상적인 관찰을 투명하게 표현해낸다.
귀천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순명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이러한 태도는 ‘하늘’이 자기 존재가 비롯된 곳이며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이슬'과 '노을빛'은 모두 잠깐 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말한 것은 삶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시인의 소망을 말하기 위한 것임에 주목해야한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문자 그대로 무욕(無慾)과 무사심(無私心)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무욕과 무사심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굳이 삶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처럼 담담하게 삶과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자신을 소풍 나왔다가 천상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맑고 깨끗한 삶에 대한 자족감을 보여 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움'의 주체는 이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가난과 슬픔과 고통의 연속인 삶이요, 그에게 오욕(汚辱)과 가난을 강요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시인이 세속적인 욕망이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영혼의 소요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자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
세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매 첫 행에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죽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말 대신에 하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사람의 말투다. 두고 가야할 세상에 대해 미련도 집착도 없는 무욕(無慾)의 경지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하늘로 돌아가면서 그가 동반할 것이라고는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과 '노을빛'밖에 없다는 말에서도 이 세상의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운 자의 달관을 보게 된다. 이승에서의 삶을 하나의 '소풍'에 견줄 수 있다면, 화자는 마치 하늘에서 잠시 귀양살러 온 신선과도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를 신선 같은 삶을 산 자의 노래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의 삶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어지간히 괴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다음에 놓인 말없음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라. 아름다웠다는 말은 괴로웠다는 말의 역설처럼 들리지는 않는가. 그러나 괴롭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괴로웠다고 말하지 않는 데 이 시인의 미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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