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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에게 신라위주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3. 반란을 핑계로 문적 정지상을 제거
앞서 말했듯이 김부식은 1126년 어사대부 추밀원부사가 되었고, 이듬해 사신으로 송나라에 가게 김부식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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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청에 따라 개경에 있던 정지상·김안·백수한 등을 제거하고 묘청을 토벌하도록 함. 서경인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묘청의 난은 1136년(인종 14) 2월에 가서야 진압. 이 묘청 난은 중앙문벌귀족 대 지방신진관료세력(서경천도파)과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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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이 여러 대신들과 의논하기를, “서경의 반란에 정지상·김안·백수한 등이 공모하였으므로 우선 이자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서경을 평정할 수 없다”하니 여러 대신들도 그의 말에 깊이 찬동하였다. 그래서 정지상 등 세 사람을 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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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기구
을 통한 권력 행사
정방의 설치 - 자택에 설치, 인사권의 장악
정국의 안정 - 문학적 소양과 행정 실무 능력을 갖춘 문신들을 등용
최씨의 집권은 안정화 BUT 국가통치질서는 약화
권력유지를 위한 체제 정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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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척준경 축출→이자겸 세력의 멸망
다. 의의
- 중앙 지배층 사이의 분열 노출→ 문벌 귀족 사회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
3.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1135년)
가. 성격
구분
개경파
서경파
중심세력
김부식중심,
보수적 관리
묘청정지상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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