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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군단을 거느리고 참전하였던 모용수는 부상한 부견을 지켜 그를 낙양으로 철수할 수 있게 하였다. 도중 부견의 허가를 받아 옛 도읍지인 업을 찾았을 때, 때마침 업도에 반란이 일어나자 모용수는 이 틈을 타서 하북 각지의 호족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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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 서울:풀빛
솔 [편] (2002),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 서울 : 솔
이봉춘 “興輪寺와 異次頓의 순교” 신라문화 제20집 (2002. 8) pp.57-77
이기백 “신라 초기 불교와 귀족세력” 震檀學報 1975년 40호 p.23-40
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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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의 본거지로 이곳에서 일어난 북주·수·당 정권의 건국자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선비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들 관롱집단은 남조의 한인집단과는 민족적 성격이 다르고, 또한 북위정권이 낙양으로 천도한 이후의 한화 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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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들에게 저항과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불만요소로써만 작용하였다. 즉, 효문제는 자신이 시행한 복식개혁을 포함한 한화개혁에 대한 실시범위를 대개 낙양으로 옮긴 선비족 관료들에게만 한정시킬 뿐, 일반 백성들까지는 포괄시키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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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수의 전투 - 전진의 부견 남정을 시도, 동진군에 패배.(97만-8만)
384 선비족 모용수 연왕을 자칭 - 후연. 강족 요장 진왕을 자칭 - 후진.
서연 건국.
386 선비족 척발규 국호를 위라 고침 -북위. 후량 건국.
398 북위 탁발규(도무제), 평성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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