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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권기옥은 중국 운남항공학교 1기 졸업(1925년)으로 한국인 최초의 여류 비행사이며 중일 전쟁 참가, 총 7000시간을 비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초창기 여자 비행사로 권기옥-이정희-김경오를 기록하고 있고, 박경원은 아예 기록에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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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류비행사로 복무하였다. 이후 1927년장개석(蔣介石)이 북벌(北伐)할 때 동로항공사령부(東路航空司令部)에 최용덕(崔用德)과 함께 가담하는 등 10여 년 동안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였다. 1928년 5월난징(南京)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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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박경원이 친일파였다는 것이다. 영화 개봉 전 까지만 해도 최초라 하다가 “최초 민간 여류비행사”로 갑자기 바꿨다. 먼저 중국에서 중국군 소속으로 비행을 했던 권기옥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과 민간을 통틀자면 권기옥이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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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제일 좋아,
거기엔 남자도 여자도 일본인도 조선인도 없잖아.”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 경 원
인물 선정 이유
영화 “청연” 개봉
박경원의 친일 논란으로 인해 영화 흥행 실패
'친일 문제에 가려져 '박경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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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군위문 일만연락비행에 박경원은 스스로 <나고야신문>에 일만연락비행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러나 애초 신청 자격은 1등 비행사인 남자로 제한되어 있었고, 게다가 일본부인항공협회에서는 여류비행사에 의한 일만연락비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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