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학] 성경해석학 핵심정리 서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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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경해석학] 성경해석학 핵심정리 서브노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장 계몽시대의 성경

제2장 낭만주의와 성경

제3장 자유주의: 진보와 도전

제4장 20세기 영국신학에서의 성경

제5장 신정통주의 축소 성경관

제6장 니버의 상대주의.관계주의.상황화 및 계시

제7장 실존주의 신학의 계시와 성경

본문내용

거룩한 것을 우리에게 재생시켜 주는 것이다. 성경 영감은 원초 계시를 다시금 가지고 와서 그것을 다시 제시하여 우리의 현재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이런 영감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 생활 전체의 맥락 속에서 제시될 때에만 성경에 속하는 것이다.
성경을 경시하는 위험보다 더 큰 위험은 성경을 신학의 요소로 절대화하는 위험이라고 하였다. 성경 자체는 계시가 아니다. 기독교 계시는 책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인격에서 온다.
(멕커리는 사본상의 차이가 불오한 책이란 옛 과념을 무너뜨린다고 하였다.) 성경을 절대화시키는 성경의 오용을 비판하였다.
그는 성경을 비판하는 것이 성경 교훈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다고 하였다.
(왜 그는 이렇게 악평하였는가?)
①계산적 사고와 객관적 지식 -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그들 밖에 있고 그들과 대치되어 존재하는 객체를 생각한다. 주체가 객체를 다루고 사용한다. 인식하는 주체가 인식하는 객체를 초월한다.
(하이덱거와 멕커리에 의하면 헬라인들로부터 헤겔까지 서구 철학의 계산적 사고와 객관적 지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서구 사상에 지배적인 이런 사고방식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 실존주의 신학자들의 복음주의 성경관을 거부하고 성경의불오와 무오를 과격하게 거부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②실존적 사고와 인격적 지식 - 실존적 사고는 '주체-주체'관계가 있다. 다른 주체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 생각하는 것은 두 주체가 같은 종류의 존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해를 하려면 우리가 그 속으로 생각해 들어가서 관련자나 저자와 함께 다시 생각해야 한다.(이런 관점은 슐라이엘마허에서 넘어온 것) 지식은 상호 관계와 상호 작용의 기초 위에서 만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불트만의 계시관
그는 신약해석에 양식비평과 비신화화 방법을 도입했다. 그는 현대 화학 때문에 성경 메시지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에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에 눈을 돌렸다.
오늘날 현대 과학의 발달에 의해서 서경을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보았다. 오늘날의 자연과학이 신약의 사회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신약의 우주관은 본질적으로 신화적이라는 것이다.(3층구조 세계관) 이런 세계관 때문에 현대인들은 케리그마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신화를 버릴 것이 아니라 <재해석>해야 한다. 신약의 메시지 속에 있는 지닐의 알맹이들을 신화적 배경의 껍질을 골라 내어 <비신화화>함으로써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원시 기독교가 역사적 인물 예수를 신화로 바꾸었다고 주장했다.(부활 사건은 실제적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이었다)
계시는 나의 특수한 현재 속에서 발생하며, 설교를 통해서, 그것을 연설의 형태로 제시하는데 있다. 믿음 안에서만 신앙의 대상이 계시된다. 따라서 믿음 자체가 계시에 속한다. 신약 자체는 계시가 아니다. 그것은 들려질 때 계시가 된다.
틸리히의 계시관
그는 성경이 신학의 한 원천은 되지만, 절대적 원천은 아니라고 하였다. 성경이 계시의 매개체가 아니라, 경험이 계시의 매개체라는 것이다. 그는 성경이 유일한 원천이라고 하는 신정통주의 성서주의의 주장을 거부했다. 교회가 각개 기독교인의 체험적 참여가 없었다면 성경의 메시지는 신학자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메시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틸리히는 계시표지를 <신비, 기적, 황홀상태>로 보았다. 계시는 항상 본질적이며 필연적으로 신비한 것에 관한 계시이다. 폴 틸리히는 황홀경을 계시의 표지로 삼았다. 이것은 전통적 기독교 성경 영감론에 대한 비판이다. 계시는 기적을 포함한다. 그러나 기적은 여하한 초자연적인 의미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계시경험의 객관적 측면(기적)과 주관적 측면(황홀경)은 상관관계가 있다.
틸리히는 자연, 역사, 집단들, 그리고 개인들이 어떻게 계시의 매개체가 되는지 논했다. 그는 존재가 말보다 선행한다고 했다. 그리고 계시 실재가 계시 언어보다 선행하고 그것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 자체, 심지어 십계명이나 예수님의 말슴도 그 자체는 계시적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원 계시와 의존계시
원계시는 기적과 황홀의 계시체가 최초로 발생한 경우의 계시다.(베드로가 예수를 만났을 때, 예수는 그 만남의 사건에서 그리스도가 되었던 것) 이 원계시가 우리를 위한 의존 계시가 될 수 있으나 그것은 계시 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 역사는 계속적인 의존 계시의 자리이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됨으로써, 즉 자기를 희생시킴으로써 최종 계시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그가 최종 계시를 가진 자라고 주장했다. 교회 없는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최종 계시는 상관적이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계시 역사와 구원 역사는 하나이다.
평가와 비판
(슐라이엘마허의 맥)
슐라이엘마허는 계시라는 용어를 독창적이고 새로운 직관에 적용함으로써 계시를 재정의했다. 그는 또한 영감을 전적으로 인간적 활동에 적용시켰다. 실존주의 계시관은 실존주의라는 사상의 형태의 틀 속에 갇힌 것으로서 이와 같은 슐라이엘마허의 계몽주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실존주의 영감관과 아울러 실존주의 계시관도 슐라엘마허의 자유주의와 주관주의 의 맥을 잇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 천사들, 사단, 귀신들 등에 대한 언급을 신화의 증거로 본다면 불오와 무오를 급진적으로 거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자유주의의 아버지 슐라이엘마허는 감정을 강조했으나 신자유주의의 실존주의자들은 의지와 결단을 강조했다. 틸리히가 신비, 기적, 황홀경이란 용어들을 계시의 표지로 사용했을 때 그는 이러한 용어들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초자연적인 것은 무엇이나 제외되었다. 그들의 구원론도 수평적이다. 불트만, 틸리히, 멕커리의 신학에서 우리는 펠라기우스적인 인간이 진정한 존재를 위해 결단을 내리도록 재촉받는 것을 보게 된다. - 그러나 그것을 복음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복음을 세속화하는 것이다. 불트만, 티리히, 멕커리의 실존주의 신학은 전혀 참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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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9.29
  • 저작시기2008.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8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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