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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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 않은 남계친족제의 관심이 반영되었다고 짐작된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그 법은 무시되거나 우회되어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웠으며, 그 규정마저 기원전 40년의 다른법(lex Falcidia)에 의해 완화되고만다.
여성 상속 및 유증권에 관련하여 더 주목할 변화는 제정 초에 나타났다. 그것은 아우구스투스의 혼인관련법들, 그리고 기원 후 2세기 후반에 나온 두 개의 ‘원로원의 결의들’ - 즉 Senatus Consultum Tertullianum과 Senatus Consultum Orphitianum - 이다. 제정초의 이 두가지 변화는 역시 실제적인 혈연관계와 가족정서를 더 중시해가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비 수권 혼인제 하에서의 여성은 원칙적으로 그 친족적 유대와 상속 관계에 있어서 친정 식구 쪽에 속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한적이지만 여성과 남편 및 자녀들 사이의 상호 상속권이 인정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상속제도의 변화는 다른 사회상황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M.Humbert는, 특히 Senatus Consultum Orphitianum은 재혼이 빈번해진 상황에서, 어머니의 재혼으로 상속상의 불이익을 보게될 전 남편의 자녀들에 대한 배려로서 나온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어머니에게 자녀의 재산에 대한 상속 기회를 부여한 Senatus Consultum Tertullianum은, 권리와 의무의 형평이라는 원리에 입각해, 앞의 원로원 결의에 대한 평형추의 의미를 갖고있었다 할 것이다. 요컨대 여성의 상속 기회의 확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가족정서의 변화나 재혼의 빈발과 같은 사회변화에 따른 결과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혼인 중 부부간의 증여금지, 아내의 남편을 위한 채무보증금지, 그리고 남편이 정당한 근거없이 지참금을 손훼할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안전장치들의 배후에서도, 우리는 우선 자녀들의 권익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련의 규정들에서 확인해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은 여성에 대한 보호주의적인 전제들이다.
이상에서 검토한 바의 결론은 자명하다. 민법상 여성의 해방이 있었다면, 그것은 여성 후견제에서 일어난 결코 의도치 않았던 변화였다. 그 밖에 여성의 재산 취득, 유지 및 처분에 관한 민법규정들에서의 변화는, 대개 여성이 재혼해야 했던 현실에 조응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여성의 자립성 보다는 불완전함의 관념을 전제로한 보호주의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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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2.24
  • 저작시기2007.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4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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