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식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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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식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1


Ⅱ. 본론...........................................................................................2

1.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애와 사상.................................................2

1)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애.............................................................2
2) 야나기 무네요시의 사상과 ‘민예’...............................................5

2. 조선과 야나기 무네요시...........................................................10

1) 조선예술과의 만남...................................................................10
2) 조선예술에서 발견한 아름다움................................................13

3 ‘비애의 미’ 이론이 내포한 이중적 견해...................................17

1) ‘비애의 미’의 의미...................................................................17
2) 긍정적 견해..............................................................................19
3) 부정적 견해..............................................................................23

Ⅲ. 결론.........................................................................................25

본문내용

의식 없이 무심하게 반복해서 작품을 만들면 신의 은총과 같은 ‘타력(他力)’에 의해 작품에 올바르고 지고한 아름다움이 깃들인다는 표현이다. 그 경우 공인이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작가의 작품을 흉내 내 물건을 만들다 우연한 기회에 걸작을 탄생시키고, 그 소박하고 평범한 미를 야나기 같은 인물이 찾아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서양미학에서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가치를 등가적인 것으로 판단하지만, 조선공예는 조선시대 장인과 공예작품의 가치를 등가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민처럼 민중적이고 지식적이지 못한 기술자와 그 기술자의 아름다운 공예작품을 같은 것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개개인의 장인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기반으로 조선 민예를 만들어낸 것으로 해석한다. 즉, 야나기의 주장은 조선시대 장인은 자력(自力)이 아닌 타력(他力)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것으로 해석되며, 이는 곧 조선의 ‘타력(他力)의 미’가 일본의 ‘자력(自力)의 미’에 미치지 못한다는 미적인 위계질서와 서구식 오리엔탈리즘의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제국주의의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보여 진다.
Ⅲ. 결론
일제 강점기,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조선미술 공예품에 아낌없는 애정과 열정으로 조선미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조선미술에 대한 시각은 이후 조선미술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서 넘어야 할 하나의 산이었다. 그에 대하여 주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조선 예술의 특징을 백의 미와 선의 미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슬픔이 묻어나오는 비애의 미로 볼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조선예술에서 읽어 내는 슬프고 비애스러운 느낌은 ‘온갖 원한과 슬픔’으로 얼룩졌다는 그의 조선 식민사관과 맞물리면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예술에서 ‘비애’를 발견한 것은 동양예술의 일반성으로 포괄할 수 없는 조선예술의 ‘차이’에 주목한 행위였다. 식민사관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정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발견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효과를 불러 일으켰고 이것이 ‘조선적인 것’에 대한 광범한 관심과 모색으로 진행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가 제시한 ‘비애의 미’는 이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의 저서ㅈ『조선인을 생각한다(朝鮮人を想う)』에서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일본의 정치적 폭력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있으며 조선인이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다. 또한 계속해서 일본 지식인들의 각성과 성찰을 요구한다.
그러나 야나기 무네요시의 반성은 언제나 ‘좀 더 나은 일본이 조선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식 안에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시대의 일본인들이 그러했듯이 일본이 조선에 많은 돈과 정치조직과 교육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동조했던 조선은 현실로서의 조선이라기보다는 미의식을 지닌 조선, 즉 예술품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조선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애정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의한 반성과 경계는 마치 석굴암의 입구를 콘크리트로 훼손시키거나, 일본이 조선예술품을 전쟁 중에 불로 다 태워버리는 것이 두려운 것과 같이 ‘조선의 미를 손상시키는 일본’에 대한 경계이지, ‘조선의 현실을 외면하는 일본’ 즉, ‘제국주의의 일본’에 대한 경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나기가 조선 미술사의 형성기를 점검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이유는 ‘조선의 미’가 지닌 미적 특질과 고유성을 밝히고, 더 나아가 한민족이라는 존재의 독자성을 입증해내고자 하는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예술에 대한 열망을 일깨웠다는 점에 있다. 그간 야나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타당성 논란이 미학, 예술학, 미술사학 등의 학문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적인 것’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조선인들을 위로하는 지식인으로서, 조선예술의 독자적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그 보존에 힘쓴 훌륭한 예술 비평가로서, 또한 민예운동을 통해 새로운 미학을 정립한 이론가로서 우리는 그를 다시금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자연과 역사에 근거하여 조선의 예술을 소개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긴 야나기 무네요시. 우리는 그가 설정해 놓은 이론과 사상을 바탕으로 그의 초국가적이고 예술적인 안목과 시대적 사고의 한계의 모순을 동시에 담은 그의 두 시선을 재해석하여 분별적으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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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宗悅, 민병산 역『工藝文化(1941)』岩波文庫, 『공예문화』1993, 신구문화사
柳宗脫, 최재목 역『美の法門(1948)』岩波文庫, 『미의 법문』2005,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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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옥배 (2007) 「야나기 무네요시를 다시 생각한다」 『크라트』 2007년 02월호
김도형(2007)「조선의 민예와 도자기, 그리고 조선인을 사랑한 일본인 형제」『크라트』 200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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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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