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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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치원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특히, 유교와 불교의 조화에 노력한 면이 〈난랑비서문 鸞郎碑序文〉을 비롯한 그의 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2. 평가
그런데 이러한 사상적인 복합화가 중앙의 진골귀족들의 독점적인 지배체제와 그들의 고대적인 사유방식에 반발하던 6두품 출신의 최치원에 의하여 추진되었다는 사실은 신라고대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사상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말년에 와서의 소극적이며 은둔적인 생활은 시대적인 제약성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신라말 고려초의 사회적인 전환기에서 중세적 지성의 선구자로 머물다 간 아쉬움을 남겼다.
1020년(현종 11) 현종에 의하여 내사령(內史令)에 추증, 다음해에 문창후(文昌候)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조선시대에 태인(泰仁)의 무성서원(武成書院), 경주의 서악서원(西嶽書院), 함양의 백연서원(柏淵書院), 영평(永平)의 고운영당(孤雲影堂), 대구 해안현(解顔縣)의 계림사(桂林祠) 등에 제향되었다.
13. 저술
저술로는 시문집으로 《계원필경》 20권, 《금체시》 5수 1권, 《오언칠언금체시》 100수 1권, 《잡시부》 30수 1권, 《중산복궤집》 1부 5권, 《사륙집 四六集》 1권, 문집 30권 등이 있었고, 사서(史書)로는 《제왕연대력》이 있었으며, 불교에 관계되는 저술로는 《부석존자전》 1권, 《법장화상전》 1권과 《석이정전》《석순응전》《사산비명 四山碑銘》 등이 있었으나 오늘날 전하는 것은 《계원필경》《법장화상전》《사상비명》뿐이고, 그 외는 《동문선》에 시문 약간, 사기(寺記) 등에 기(記)원문(願文)찬(讚) 등 그 편린만이 전할 뿐이다.
<계원필경집>이 당나라 유학 시절의 대표 저술이라면, 번역 출간된 <사산비명>은 그가 귀국한 뒤에 지은 대표작이다. <사산비명>은 숭엄산 성주사 대랑혜화상,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 휘양산 봉엄사 지증대사 등 세 명의 스님에 대한 비명과, 신라 왕실에서 세운 초월산 대숭복사의 비명을 모은 것이다. 대숭복사비를 제외하고는 세 비명을 비문이나 탁본으로 확인할 수 있어 금석문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다. 비문을 통해 신라시기 불교는 물론,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와 최치원의 유불도 삼교 융합 사상까지 엿볼 수 있다. 그는 도(道)란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란 나라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방 사람들이 불교도 받아들이고 유교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글씨도 잘 썼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것으로는 쌍계사의 〈진감선사비문〉이 유명하다.
그리고 많은 설화가 전해오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선시대 김집(金集)의 《신독재전집 愼獨齋全集》에 실린 〈최문헌전 崔文獻傳〉이 있다.
디지털 한국학 자료
http://www.koreandb.net/
▨ 의성 고운사(孤雲寺)
고운사로 들어가는 길은 두갈래다. 중앙고속도로 의성IC에서 나와 안동쪽으로 가다가 단촌면 소 재지에서 오른쪽 다리를 건너는 것과, 남안동IC를 통해 대구쪽으로 다시 올라오다 의성읍 조금 못미쳐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해 들어가는 것이다.
확포장 공사로 주위가 어지러운 국도변을 벗어나 고운사로 향하는 길에는 굽이굽이 응달진 산자 락마다 겨우내 고스란히 쌓인 흰눈이 우선 반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는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해발 4백25m의 등운산(騰雲山) 기슭에 동안거(冬安居)에 잠긴듯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하얀 눈밭으로 변한 일주문앞 노송 숲길에서 부터 겨울 산사는 그 특유의 정취를 자아낸다. 꽁 꽁 얼어붙은 개울위로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 걸린 가운루(駕雲樓)가 고색창연한 자태를 드러낸다. 나말(羅末)의 유학자 고운(孤雲) 최치원의 체취가 묻어있는 건물이다.
의상조사가 창건한 고운사(高雲寺)가 오늘의 고운사(孤雲寺)로 불리게 된 것도 바로 이절에 은거 했던 최치원과의 필연적인 인연을 말해준다.
사찰경내로 들어서면 눈을 쓸기위해 정갈하게 비질이 된 돌계단을 따라 오른쪽 산기슭에 나한전 이 있고, 그앞에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고찰 고운사 와 영욕을 함께 하며, 자그마한 몸집으로 감당해 왔을 천년의 풍상이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한다.
관광지화된 여느 유명사찰과는 달리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긴 겨울 산사는 찌든 속진을 털어 내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마음을 가다듬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출처: http://www.m2000.co.kr/news/week/htm/970131-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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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9.02.03
  • 저작시기201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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