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산주의 운동사 2 해방후 편 4~6장 (1945-1953) - 남북한의 공산주의 과정 배경 한국전쟁
본 자료는 미리보기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2 해방후 편 4~6장 (1945-1953) - 남북한의 공산주의 과정 배경 한국전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강독한 저작의 주요 내용 및 논지 요약
2.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및 그 이유
3. 강독내용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이해되지 않는 내용, 의문점
4.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본인의 평가
5. 새로운 문제 제기

본문내용

러나 미국은 이승만을 매우 껄끄럽고 상대하기 힘든 지도자로 여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이 대일간첩으로 파견된 뒤 전향한 한재덕은 그의 책 \'김일성을 고백한다\', (서울, 1965)에서 김일성에게 \'장군\'의 칭호를 처음 쓴 사람이 자신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칭호를 써야 할지 몰라서\"였다고 말했다. 당시 몇몇 자료를 보면 김일성이 소련군과 함께 처음 북한에 왔을 때 그의 옷에는 \'소좌\', 우리나라로 치면 소령 계급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소령에게 장군이란 계급이 가당치 않지만, 당시 얼떨결에 김일성을 장군이라고 부른 것이 지금까지도 북한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3) 「당시 제주와 여수, 순천에서 군 내부에 침투해 있던 공산주의자들의 규모는 미군정과 남한의 정치인들에게 깊은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후에 남한에서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 조차 이 기간 중에 공산주의자라는 깊은 의혹을 받고 있었으며 공산주의자들에의 가담 및 정부에 대한 반역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가까스로 중벌만은 면할 수 있었다.」 (한국공산주의운동사2, 서울, p. 394.)
------------------------
당시 군은 공산주의자와의 접촉사례만 있어도 파면 또는 총살을 감행했었다. 박정희가 남로당원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부터 함께 어울렸던 군장교들이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봤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그를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4.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본인의 평가
(연구 주제, 연구 방법, 자료, 분석의 시각 및 해석 등 해당 저작의 성과와 한계)
(1) 이 책은 70년대 후반에 발간된 책으로서 제한된 사료와 자료를 바탕으로 씌여졌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시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활동을 파노라마와 같이 그려낼 수 있도록 서술했다. 무엇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주요한 사료와 실존인물과의 인터뷰 등의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2) 그러나 몇몇 인터뷰는 당시 실증자료를 찾을 수 없기에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자료지만 20여년 이상 지난 인터뷰를 최소 2인 이상을 통해 상호 확인할 수 있는 장치 없이 서술한 것은 자료의 신뢰도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3) 당시 사건 및 시대상에 대한 서술 없이 인물 위주의 권력쟁취 및 정치적 행위를 주로 서술했다. 이것은 자칫 역사적 편견을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있으며 인물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5. 새로운 문제 제기
(해당 저자작의 강독을 통해 관련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연구 주제나 영역 등)
(1)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과에 대해서 신탁통치를 극렬히 반대하며 미국과 대치했던 이승만과 소련의 결정에 따라 의견을 달리한 박헌영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이승만의 반탁주장은 민족주의에 대한 국내 지지기반을 확고히 해주었지만 박헌영의 찬탁주장은 공산당의 대중적 지지를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주체적인 인물로, 박헌영은 소련에 의해 수동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존재로 인식되는 오류를 범했다고 본다. ‘이승만과 박헌영의 판단 기제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2) 무명의 김일성이 지도자로 등장하기까지 소련의 후견은 절대적였다. 그렇다면 김일성이 소련에 가 있던 4년의 시간동안 김일성이 소련에 각인시킨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본 책에서는 ‘국내파 공산주의자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로 서술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소련이 북한의 지도자로서 눈여겨 본 김일성 본인에 대한 역량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3) 저자는 신탁통치를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던 민족주의자들이 미소공위의 결렬 구실이 됐고 이것이 한국을 통일하는 기회마저 막아버린 것이라고 서술했다.(p. 432.) 그렇다면 중도파 및 우익측이 반탁의사를 철회하였다면 통일한국의 기회가 유효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제시되고 있지 않다. 더불어 미국과 소련이 애초부터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고자 하였다는 점과 신탁통치에 대한 반발이 발생했을 때 유화책이 아닌 강경책을 선택했다는 점이야 말로 한국의 통일을 막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가격1,8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390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