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이규보 희대의 아부꾼인가 한문학의 대가인가 - 생애 문학작품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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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사] 이규보 희대의 아부꾼인가 한문학의 대가인가 - 생애 문학작품의 연관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이규보의 삶과 문학

1. 관직에 오르기 이전 (1168-1198,31세)
2. 관직에 오른 이후 (1199-1237,70세)
3.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1241,74세)

Ⅲ. 나가며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있다.
Ⅲ. 나가며
이로써 이규보의 삶과 문학을 서로 연관 지어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이규보의 삶을 관직에 오르기 이전, 관직에 오른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총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시기별로 이규보의 생애와 함께 그의 삶과 관련된 문학들을 골라 분석해보았다. 이 과정에서 현재 이규보를 바라보는 평가에 대해 재검토해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결론을 보기에 앞서 그의 생애 분기마다 나타난 문학적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관직에 오르기 이전의 이규보의 문학세계는 어떠했을까. 이 당시 그의 문학 세계에는 관직에 대한 열망과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이라는 모순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를 정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향을 보였는데 그의 이상향은 구름과도 같이 자유롭고 순수한 세계를 선망하였다. 이는 곧 그가 새하얀 깨끗함을 지키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내고자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즉, 이규보의 이상향은 투명한 모습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전원생활에 대한 예찬과 전원을 그리는 시들을 썼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자아는 관직에 대한 열망을 보였다. 그는 평소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강한 믿음을 보인 인물이다. 이에 관직에 오르기를 쉽게 여겼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상태가 유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원생활을 동경하고 있으나 실상은 벼슬에 오르기 위해 개성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보였다. 더하여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처세술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데 그는 이를 잘 활용하여 끝내 최충헌에게 인정받는 모습이 나타난다.
최충헌에게 시를 바친 이후로 이규보는 벼슬아치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어렵사리 관직을 얻게 되지만 동료의 모함과 면직, 탄핵 등을 경험하며 굴곡진 관직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파직되거나 좌천되었던 그가 다시 벼슬을 얻기 위해 최충헌과 최우에게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이에 따라 그를 아부꾼 혹은 입신출세주의자로 평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이 시기는 그의 처세술이 돋보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시기는 이규보의 일생 중 고난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의 문학적 우수성을 높여준 시기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관직에서 내려온 이후의 삶을 살펴보았다. 이 시기에는 이규보의 시를 향한 변함없는 시심(詩心)이 돋보였으며 늙고 병든 자신의 모습과 죽음 앞에서 대처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죽음 앞에 시인으로서의 삶도 함께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그의 문학을 향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자신과 한 평생을 함께 한 시에 대한 예우를 세워주는 모습으로 그의 문학 대가다운 면모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이규보의 생애와 문학작품의 연관성을 통하여 그의 삶에 공감해보는 시도를 가져보았다. 이때 우리는 현대에서 이규보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에 대하여 고루 살펴보았다. 그는 분명 관직에 오르기 이전과 관직에 오른 이후에도 입신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였다. 이에 당시 최고의 권력가인 최충헌과 최우에게 자신의 시를 바치면서 벼슬을 받거나 더 높은 관직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런 그의 모습을 두고 입신출세주의자나 보신주의자, 희대의 아부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가 붙게 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이규보가 누구보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인 인재(人才)임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에 기회가 올 때마다 그에 부응할 수 있는, 그러한 기회에 부응하는 것도 모자라 차고 넘치던 그를 아부꾼이라고 평하기에는 심한 감이 있다고 파악하였다. 더불어 그가 한 평생을 보낸 시기가 무인정권이었으며 이에 사회가 혼란스러웠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보인 행동을 아부가 아닌 훌륭한 처세술 정도로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규보를 단순히 관직에만 관심을 둔 벼슬아치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그는 여러 고난을 통해 생활의 곤궁함도 경험해 보았으며 직접 반란을 제지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더하여 백성을 가엾고 안타깝게 여기는 애민정신을 갖춘 인물에 능력 또한 뛰어났으니 그가 관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고서야 누가 관직에 오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규보에게 입신만을 바란 희대의 아부꾼이라는 평보다는 처세술이 좋았던 능력 있는 벼슬아치 정도로 평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이규보. 그는 누구인가. 그는 희대의 아부꾼인가 한문학의 대가인가. 본 연구자는 그의 생애와 문학작품의 연관성을 통해 그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관직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 인물이었으며 이는 그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까지도 계속 관직에 올랐던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그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문학적 재능’ 덕분이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가 현대에 와서 무인정권의 아부(阿附)꾼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인 최씨 정권과의 우호적 관계의 시작이 바로 그의 시 한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즉, 문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관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규보라는 인물을 이해한다면 그를 단순히 입신출세주의자로 평가할 수 는 없다.
Ⅳ. 참고문헌
-<이규보 선집. 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김하라 편역. 돌베개. 2006.11.27
-<동명왕의 노래>
김상훈, 류희정 옮김. 보리. 2005.06.01.
-<봄 술이나 한잔하세>
서정화 옮김. 태학사. 2009.09.25.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제1부. 한문학의 대가들과 그 유산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
정병헌, 이지영 지음. 돌베개. 2005.09.10.
-<이규보의 삶과 문학>
이규보의 삶과 문학. 전형대 지음. 홍성사. 1983.07.10.
-<李奎報의 문학이론과 작품세계>
하강진 지음. 世宗出版社. 2001.02.03.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동명왕편 [東明王篇] - 우리 민족의 영웅서사시
2006.9.18, 휴머니스트
-<고려사열전> 「15. 무신 집권기의 최고 시인 이규보」
권순형. 타임기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규보.
  • 가격3,000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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